[볼로냐, 볼로네세] 씨아모 코메 보이, 이탈리아의 지방색
[볼로냐, 볼로네세] 씨아모 코메 보이, 이탈리아의 지방색
  • 한도현(볼로냐 대학교 정치학과 교환교수)
  • 승인 2015.07.24 19: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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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바드 대학교의 로버트 퍼트남(Robert Putnam) 교수는 남부 이탈리아 사람들은 북부 이탈리아 사람들에 비해 일반적 신뢰가 낮다. 가족이나 친구, 같은 교회 사람들끼리는 서로 신뢰하지만 낯선 사람을 신뢰하지 않는다.

낯선 타인을 신뢰하는 것을 사회학에서는 일반적 신뢰(general trust)라고 한다. 일반적 신뢰 수준이 낮기 때문에 남부는 북부에 비해 정치경제적으로 낙후됐다. 퍼트남의 이 명제는 외국에서는 물론이고 북부 이탈리아 사람들도 그대로 받아들인다.

퍼트남보다 35년 전에 하바드 대학교의 에드워드 밴필드 교수가 이와 관련된 명저를 출판했다. 「낙후된 사회의 도덕적 기원」(The Moral Basis of Backward Society)]이라는 책이다.

남부 이탈리아 바질리까따(Basilicata) 주 뽀뗀짜(Potenza)의 끼아로몬떼(Chiaromonte)라는 타운의 주민생활을 분석한 인류학 고전이다. 밴 필드 교수는 남부 이탈리아인의 특징, 좁게는 끼아로몬떼 타운 사람들의 인간관계 특징을 「무도덕적 가족주의」(Amoral familism)이라고 불렀다.

이 말은 ‘파밀리스모 아모랄레’(familismo amorale)라고 이탈리아 말로도 번역돼 사용되고 있다. 나중에 근대화론자들이 한국, 중국, 베트남의 가족주의를 공격할 때도 이 단어를 즐겨 사용했다.

나는 이 단어의 출발점인 끼아로몬떼를 보고 싶었다. 볼로냐 대학에 방문학자로 오기로 결정됐을 때부터 끼아로몬떼 방문을 계획했다. 볼로냐에서 만난 이탈리아 학자들, 주민들에게 물어봐도 이곳을 안다는 사람이 없다.

방문해봤다는 사람은 더더욱 찾을 수 없었다. 제네바에 있을 때나 볼로냐에 있을 때나 남부 이탈리아에 대한 편견은 아주 자주 듣게 됐다. 그럴수록 끼아로몬떼에 가보고 싶었다. 주위의 도움을 받는 것은 결국 포기했다. 지도를 보고 연구했다.

가장 가까운 공항인 뿔리아(Puglia) 주 바리(Bari) 공항으로 가는 비행기 표를 끊고 거기서 렌트카를 빌렸다. 마떼라(Matera)에서 하루 밤을 자고 국도와 시골길을 번갈아 2시간 달려서 끼아로몬떼에 도착했다.



마침 끼아로몬떼의 성당에서 예배가 끝나 주민들이 성당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성당이 있는 가리발리 광장은 작았지만 까페, 옷가게, 쓰레기 분리수거 박스, 주차장 등이 질서 있게 모여 있다.

가리발디 광장에는 자리가 없어 조금 떨어진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주차 요금 미터기를 찾아도 안 보였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어보니, 반갑게 웃으면서 ‘이 동네에 주차는 공짜’라고 한다.

동네의 레스토랑은 언덕 높은 곳에 있는데 식사가 아주 맛있고 사람들이 친절하다. 레스토랑에서 나와서 가리발디 광장에 오니 아주 더운 대낮인데도 다섯 사람이 즐거운 모습으로 쓰레기 분리수거를 하고 있다.

한 사람이 나를 보더니 열심히 일하는 자기 동료를 가리키면서 사진을 찍으라고 한다. 마떼라의 일정 때문에 2시간 정도만 머물렀다. 짧은 시간이지만 오기를 잘 했다. 바질리까타, 뿔리아를 다니면서 본 대규모 산업시설들, 주민들의 밝은 모습, 한 낮의 가리발디 광장은 나의 편견을 흔들기 시작했다.

볼로냐에 돌아왔더니 1963년에 바질리까따 주 뽀뗀짜 시를 떠나 오스트레일리아로 이민을 간 안젤라라는 분이 손님으로 와 있었다. 남부와 북부의 신뢰 수준 차이, 인간관계의 차이에 대해 물어보았다.


답을 하지 않으려고 했다. ‘이탈리아는 지방별로 각기 다르고 다 아름답다’고 동문서답을 했다. 마침내 입을 열었다. 1860년대 이탈리아가 통일되자 통일정부가 남부 사람들에게 북부보다 더 높은 세금을 물리고 남부의 공장들을 북부로 강제로 옮겨갔기 때문에 지금 남부가 북부보다 못 산다고 했다.

북부가 진정으로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기 전에 남부사람들은 북부에 대해 좋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태었다.

볼로냐 대학교 정치학과 로베르또 까르또치(Roberto Cartoci) 교수의 말이 생각났다. 그의 제자가 끼에로몬떼를 방문해서 ‘밴필드를 아세요? 그의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라고 질문했더니 주민들 왈. “그 주장은 틀렸어요. 우리도 여러분과 같은 사람이예요!”

이탈리아 말로 씨아모 꼬메 보이(siamo come voi). 지역간 편견을 넘어서는 이 말이 아름답다. 씨아모 꼬메 보이!


필자소개

한도현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볼로냐 대학교 정치학과 교환교수, 코이카 지구촌 새마을운동 전문위원, Korean Histories 편집위원(Leiden Univ 네덜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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