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로냐, 볼로네세] 다반띠 싼 귀도, 까르두치의 고향 사랑
[볼로냐, 볼로네세] 다반띠 싼 귀도, 까르두치의 고향 사랑
  • 한도현(볼로냐 대학교 정치학과 교환교수)
  • 승인 2015.09.22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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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안들이 애송하는 시 가운데 하나가 ‘다반띠 싼 귀도’(Davanti San Guido)이다. ‘싼 귀도 앞에서’라는 뜻이다. 싼 귀도는 아주 작은 성당 이름이다. 이 성당 앞에서 볼게리라는 동네까지는 씨프러스 가로수길이다.

1832년에 조성됐다고 한다. 길 양 옆으로 키다리 씨프러스 나무들이 장엄하게 줄지어 있다. 약 2,540 그루의 멋쟁이 나무들이 약 5km에 걸쳐 두 줄로 나란히 있다. 그 아름다움에 반하지 않을 수 없다.

‘다반띠 싼 귀도’는 이 가로수 길을 노래한 시이다. 국도 39번에서 시작되는 가로수 길에는 이 시의 주인공인 까르두치를 기념하는 오벨리스크가 씨프러스 나무에 둘러 쌓여있다. 까르두치(Giosue Carducci, 1835~1907)는 이탈리아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자(1906년)이다.

볼로냐 대학의 문학부 교수였으며 그의 집과 그의 박물관이 볼로냐에 있으므로 볼로냐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어린 시절을 볼게리에서 보냈다. 시인은 볼게리 마을과 이 가로수 길을 무척 사랑했다.

피렌체의 화려함과는 다른 슬로 라이프의 아름다움이 이곳에 있다. 더욱이 그의 시를 읽고 나면 그의 고향과 씨프러스 가로수 길을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히 생겨난다. 그런데 볼로냐에서 볼게리로 가는 길은 쉽지 않다. 피렌체를 지나고 리보르노(Livorno) 아니면 피자(피사,Pisa)에서 로칼 기차를 갈아타야 한다.

볼게리는 까스따녜또 까르두치(Castagneto Carducci) 타운 안에 있다. 까스따녜또 까르두치는 원래 다른 지명이 있었는데 까르두치가 죽은 해인 1907년에 까르두치라는 이름이 더해졌다. 까스따녜또 까르두치 타운은 볼게리, 까스따녜또 까르두치, 마리나 디 까스따녜또, 도노라띠꼬 등 네 개의 동네가 모인 코무네(comune, 기초행정단위)이다.


볼게리로 가려면 까쓰따녜또 까르두치라는 작은 기차역에서 택시를 타야 한다. 이탈리아 말을 잘 몰라도 ‘치프레시’(씨프러스 나무)라고 하면 알아듣는다. 내가 볼게리 마을을 찾았던 2015년 8월 15일은 마침 이탈리아 국경일이라 사람들이 많이 와 있었다.

동네 앞의 옛 성벽과 옛 성당을 지나니 멋진 까페들이 나타났다. 파리의 카페 거리 같았다. 까페, 레스토랑이 5~6곳이었는데 앉을 자리가 없었다. 이렇게 작고 유명한 마을들이 이탈리아에는 대단히 많다.

세계적으로 이름을 떨친 작곡가, 연주자, 화가, 과학자, 시인, 소설가 등이 고향을 세계적 관광지로 만든다. 한국인들에겐 잘 알려져 있지만 않지만 그의 고향 볼게리도 유명하다. 와인, 자연 경치, 해변, 역사 등을 자랑한다.

싸씨카이(Sassicai), 볼게리 로쏘(Bolgheri Rosso), 오르네랄이아(Ornellaia) 등 볼게리 특산 와인들은 이탈리아에서도 알아준다. 무엇보다도 이곳을 유명하게 만든 것은 까르두치이다. ‘아름다움은 저절로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사람의 노력에 힘입어 아름답게 드러난다’(美不自美,因人而彰)라는 당나라 시인 유종원(柳宗元))의 표현이 여기에 어울린다.


까르두치가 노래한 볼게리의 씨프러스 가로수길은 5km나 되는 큰 팔을 벌려 ‘빨리빨리’의 도시문명과 ‘속도경쟁’에 지친 현대인에게 ‘와서 쉬라’고 한다. 116줄로 된 씨프러스 나무들과 시인 사이의 대화를 조금만 엿보자.

피곤에 찌든 여정을 멈추고 왜 여기서 쉬지 않나요?
저녁은 시원하고 당신은 그 길도 아시잖아요.
여기 앉아요. 우리들의 향내 나는 나무들 아래.
바다에서 불어오는 서풍이 당신의 빰을 만져 줄거예요.
(중략)
우리가 소리쳐 부르는데도 왜 그렇게 급히 지나가나요?
나이팅게일들은 우리들의 가지들에다 아직도 둥지를 짓고 있어요;
저녁이 찾아들면 참새들이 날아다니는 것도 볼 수 있어요
우리 주위로 말예요. 오, 여기서 쉬어요.
(G.L.Bikersteth편, [Carducci],p.174)

시인 까르두치는 이들의 간청을 멀리하고 기차에 몸을 실은 채 볼로냐로 떠났다. 더 빨리, 더 높이 가려는 현대인들처럼.


필자소개
한도현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볼로냐 대학교 정치학과 교환교수, 코이카 지구촌 새마을운동 전문위원, Korean Histories 편집위원(Leiden Univ 네덜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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