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균 회장 “가난과 싸우면서 독일에 정착했지요”
김시균 회장 “가난과 싸우면서 독일에 정착했지요”
  • 정인식 기자
  • 승인 2015.09.23 15:0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월남전 참전과 시멘트회사 일용직, 광부 등 온갖 궂은 일 겪어
▲ 김시균 도르트문트 한인회장.

‘먼 길을 돌아온 인생의 마지막 노을’

김시균 도르트문트 한인회장은 자신이 살아온 인생을 이렇게 표현했다.

1948년 강원도 삼척 태생인 김 회장은 어린 시절부터 가난과 싸우는 게 일상이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에 1969년 맹호부대에 입대한 김 회장은 1970년 기갑연대 8중대로 월남전에 참전하여 2년 가까운 기간을 전쟁터에서 보냈다. 그리고 전역한 뒤 1977년 파독 광부 모집에 응하여 광부로 살다가 식당을 경영했고, 현재까지 38년째 독일에서 살고 있다.

현지 한인사회의 활동들로 김 회장은 세계문화 페스티벌, 8.15 광복절 기념식 및 체육대회, 한인회 정기총회를 꼽았고 현재 한인들 상호간의 친목을 도모하고자 카페를 운영하여 고국 문화와 독일관련 정보들을 공유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인회장직은 2013년부터 맡아오고 있으며, 올해 9월 말에 임기를 마무리할 예정이다.

도르트문트는 석탄과 철이 많이 매장된 곳으로, 라인강의 기적의 중심에 있던 도시였다. 지금도 철강 및 기계공업은 유명하지만, 최근에는 버려진 공장, 탄광 등을 광고 디자이너, 예술가 등이 작업장으로 재활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한다.

김 회장의 말에 의하면, 이곳 한인들은 1989년 도르트문트 세계 탁구 선수권 대회에서 유남규·현정화 선수가 금메달을 딴 것을 아직도 자랑거리로 잊지 않고 있다고 한다. 또, 바이에른 뮌헨과 양강체제를 구축하고 있는 축구클럽 BV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도 지역의 자랑거리라고 김 회장은 전했다.

▲ 김 회장(왼쪽 두번째)이 부인, 아들, 딸, 사위 등 가족들과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우측 하단의 작은 아기사진은 2015년에 태어난 손주의 모습을 합성한 듯...!

김 회장은 38년간 독일에서 수많은 한인 관련 직책들을 맡아왔다. 1981년부터 2년간 독일 아헨지방 한인회장을 맡았고 재독 한인연합회 사무총장을 1985년, 1992년 두 번이나 맡았으며, 재독 강원도민회 감사 등 다른 직책들까지 더하면 수두룩하다.

현재는 한인회장 외에 월남전참전자회 독일지회 수석부회장도 겸하고 있다. 독일에서 한인사회 발전을 위한 그간의 노고를 인정받아 김영삼·노무현 두 대통령과 대한체육회, 월남전우회의 표창에 이어 재외동포재단 이사장 최우수상까지 수상했다.

김 회장은 “한인회장 임기가 끝나는 대로 다음 세대의 청년들에게 자리를 물려줄 것이며, 앞으로 개인은 국가유공자로서 월남전 참전 경험을 살려 대한민국 안보에 집중적으로 봉사하고 싶다”며 인터뷰를 마쳤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송파구 올림픽로35가길 11(한신잠실코아오피스텔) 1214호
  • 대표전화 : 070-7803-5353 / 02-6160-5353
  • 팩스 : 070-4009-2903
  • 명칭 : 월드코리안신문(주)
  • 제호 : 월드코리안뉴스
  • 등록번호 : 서울특별시 다 10036
  • 등록일 : 2010-06-30
  • 발행일 : 2010-06-30
  • 발행·편집인 : 이종환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석호
  • 파인데일리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월드코리안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k@worldkorean.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