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대한민국 104] 진경산수
[아! 대한민국 104] 진경산수
  • 김정남<본지 고문>
  • 승인 2016.03.12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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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남(본지 고문, 전 청와대 사회교육문화수석).

조선시대 화가들이 사대부들의 이상적인 모델로 간주해 온 중국 문인들의 전통적인 수묵화 기법과 결별하고 눈앞에 실재하는 조선 산수를 실제 모습에 가깝게 그리기 시작함으로써 진경산수화의 시대가 열렸다.

이러한 조선 특유의 진경산수화를 개척했고 또 대표하는 이가 겸재 정선(1676~1759)이다.

조선 개국 50여년 만인 1447년에 안견의 ‘몽유도원도’가 중국풍의 동아시아 산수화의 이념과 형식을 완성한 것이었다면, 그 300년 뒤에 나온 겸재의 진경산수화는 조선 풍경에 걸맞는 새로운 회화양식의 창출이자 회화의 탈 중국, 조선화의 탄생을 알린 사건이었다.

겸재 정선과 같은 시대에 활약한 관아재 조영석(1686~1761)은 그가 쓴 구학첩에서 “원백(겸재의 자)은 백악산하에 살면서 그림을 그릴 뜻이 서면 앞산을 마주하고 그렸다.…그리고 금강산 안팎을 두루 드나들고 영남을 편력하면서 여러 경승지를 올라가서 유람하여 그 물과 산의 형태를 다 깨쳤다.…이리하여 스스로 새로운 화법을 창출하여 우리나라 산수화가들이 한결같은 방식으로 그리는 병폐와 누습을 씻어버리니 조선적인 산수화법은 원백에서 비로소 새롭게 출발하였다고 할 수 있다”고 하였다.

이와 같은 경향은 조선 후기로 오면서 퇴계, 율곡 등 걸출한 사상가들이 배출된 것과 궤를 같이 한다. 즉 중국의 유학이 조선에 들어와 이기철학(理氣哲學)을 낳는 등 독특한 한국문화와 철학이 생겨나면서 다양한 독자적인 문화현상이 나타나게 된 것이다.

여기서 진경(眞景)이란 단순히 눈에 보이는 대로 그린 그림이 아니라, 조선 산수를 실제 모습에 가깝게 그리되 과장, 생략, 압축, 부감, 시점 이동, 조합 등을 통해 대상을 변형하여 조선적인 특색을 새롭게 창출하는 것을 뜻한다.

그런 점에서 눈에 보이는 대로 그리는 실경산수화가 아니다. ‘진경’이란 ‘실재하는 경치’라는 의미도 있지만 ‘진짜 경치, 참된 경치’라는 의미도 지니고 있다. 이태호 교수에 의하면 겸재가 속했던 조선사대부, 그 중에서도 서인, 노론 집권세력의 성리학적 이상향인 ‘선경(仙景)’의 의미가 내포돼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겸재의 진경산수는 단지 조선의 실경을 감동적인 구도로 담아내는 데 머물지 않고, 우리 산하의 화강암 골산과 조선 소나무의 특징을 잡아냄으로써 우리 산천의 멋을 성공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림이 사진과 다른 점은 실제와는 다르게 그렸음에도 보는 이로 하여금 실제보다 더 생생하다고 감동을 받게 하는 데 있다. 겸재의 ‘함흥본궁송’은 소나무 줄기를 여백으로 표현하고, 솔가지 끝을 아무렇게나 처리한 것 같지만, 노송의 늠름한 자태를 이보다 더 사실적으로 전달하기는 힘들다.

겸재의 ‘박연폭’은 같은 대상을 묘사한 것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다르다. 그렇지만 묘하게도 사람들은 겸재의 ‘박연폭’이 사진보다 더 실제의 박연폭포답다고 생각한다.

이를 표암 강세황의 ‘박연’과 비교해 보면 정선의 ‘박연폭’에서는 폭포수의 굉음이 들리는 듯하지만 표암의 그림에서는 그런 맛이 덜하다. 겸재는 음양과 강약의 논리로 긴 것은 더 길게, 폭포의 길이를 실제보다 두배 가량 늘려서 표현했다.

이렇게 사람들의 간담을 서늘케 할 만큼 물줄기의 기세를 실감케 해주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진경산수의 진수요 또 묘미다. 그런 점에서 정선은 진경산수의 창시자요 완성자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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