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대한민국-112] 전형필
[아! 대한민국-112] 전형필
  • 김정남<본지 고문>
  • 승인 2016.07.16 10: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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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남(본지 고문, 전 청와대 사회교육문화수석).

한국인들에게 전형필(1906~1962)은 일제시대 자신의 전 재산을 바쳐 문화재를 지켜낸 사람으로 기억되고 있다. 더 나아가 그를 일러 문화 독립운동가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 재산만 있다고 문화재를 사들일 수 있는 것도 아니요, 애국심만 가지고 문화재를 지킬 수 있는 것도 아니라면, 그에게 재산이 있었고 문화재에 대한 남다른 사랑이 있었다는 것은 한국, 한국인에게는 천만다행한 일이었다.

여기에 더해 그는 누구보다 문화재를 알아보는 안목(眼目)이 있었다. 그러기에 국보 제70호 훈민정음 해례본, 국보 제135호 신윤복의 미인도, 국보68호 청자상감운학문매병 등 그가 지켜낸 문화재 가운데는 국보급과 보물들이 많다. 어떻게 보면 그가 있어서 우리가 한국문화의 자존심을 지킬 수 있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형필은 1906년 서울에서 손꼽히는 부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가 물려받은 논만 4만 마지기(약800만평)였고, 1년에 거둬들이는 쌀은 당시 기와집 150채를 사고도 남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는 이 재산을 문화재를 지키는데 망설임도 없이 모두 쏟아 부었다. 청자상감문학매병과 얽힌 일화가 그것을 잘 말해주고 있다.

이 상감청자는 전문 도굴꾼에 의해 파내어져 일본인 흥정꾼에게 당시 서울 기와집 한 채 값인 1000원에 팔렸다. 전형필이 그 상감청자를 사겠다고 하자 그 흥정꾼은 터무니없게도 2만원을 제시했다. 그러나 전형필은 추호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기와집 스무 채 값을 주고 이 상감청자를 구입하였다. 얼마 뒤 다른 일본인 수집가가 전형필에게 두 배 가격인 4만원을 제시하며 이 청자를 사겠다고 했지만 전형필은 단호하게 거절했다.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이 된 훈민정음 원본, 훈민정음 해례본에 얽힌 일화도 있다. 훈민정음 해례본은 연산군 때 대부분 불태워 없어져서 매우 귀했는데, 원래 소장자는 이 책을 기와집 한 채 값에 팔려고 했다. 그러나 전형필은 “이런 보물 중의 보물을 한 채 값만 줄 수 없다”면서 기와집 열 채 값을 주고 또 수고비로 한 채 값을 더 얹어줬다고 한다. 1945년 해방이 되자 전형필은 조선어학회 관계자 33인을 간송미술관의 전신인 보화각에 불러 모아 훈민정음 해례본을 공개했다. 그리고 영인본을 만들 수 있도록 귀중한 원본을 낱장으로 떼어 제공했다. 6.25전쟁 때는 훈민정음 해례본을 넣은 가방을 가슴에 품고 다녔고 밤에는 베개 속에 넣고 잤다.

전형필이 목숨을 걸고 지켜온 문화재는 일일이 소개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국보로 지정된 문화재 12점을 비롯해서 보물 10점, 서울시 지정문화재 4점 등이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지만 아직도 공개되지 않은 수많은 국보급과 보물급 문화재가 성북동의 간송미술관에 보관되어 있다. 어느날 3·1독립선언 당시 33인 중의 한 사람인 서예가 위창 오세창이 전형필에게 왜 서화나 문화재 수집에 나섰느냐고 물었을 때 전형필은 “서화전적(書畵典籍)과 골동품은 조선의 자존심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한 민간 문화재 환수단체에 따르면 일제시기 일본으로 불법 반출된 문화재만 30만점 이상이라고 한다. 만약 전형필 같은 사람이 없어서 한민족의 역사와 얼이 담긴 귀중한 문화재가 다 없어져 버렸다면 우리는 문화 없는 민족이란 수모를 당하지 않았을까, 아찔한 생각이 든다. 정부도 2012년 국외소재 문화재재단을 설립, 뒤늦게나마 해외로 반출된 문화재에 대한 연구·조사와 환수에 나섰다. 우리의 귀중한 문화재를 되찾는 일은 제2의 독립운동이자 민족의 광복운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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