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대한민국-127] 삼강주막
[아! 대한민국-127] 삼강주막
  • 김정남 본지 고문
  • 승인 2017.03.11 06: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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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남(본지 고문, 전 청와대 사회교육문화수석).
“문패도 번지수도 없는 주막집”, 흘러간 노래가사에 흔히 등장하는 주막은 서민들의 정서에 친숙하게 다가온다. 그러나 정작 주막을 실제로 체험한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 1970년대 들어 새마을운동이 전국적으로 전개되면서 그나마 남아있던 주막마저 하나 둘 흔적도 없이 사라져갔다. 그렇기 때문에 나이든 사람들의 머릿속에 아련한 추억으로만 주막은 남아있다.

주막은 주점과 다르다. 막(幕)은 비바람을 가리려 임시로 지은 가건물이다. 초기의 주막은 가볍게 술 한잔 마시는 가건물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에 문패도, 번지수도 없었다. 이덕무(1741~1793)에 의하면, 술(酒)과 숯의 발음이 비슷하여 술막이 숯막(炭幕)으로도 불렸다고 한다.

유동인구가 늘어난 17세기 후반 이후에는 공식적으로 역참을 이용할 수 없는 양민, 상인들의 수요에 맞추어 전국에 주막이 급격히 늘어났다. 간편하게 술 한잔 마시는 공간으로 시작한 주막은 점차 술 마시고 식사하고 잠도 자는 공간으로 발전하기도 했다.

지금도 옛날의 그 주막을 그대로 재현해 놓은 곳이 있다. 낙동강과 그 지류인 내성천과 금천의 세 줄기 강물이 보인다고 해서 삼강(三江)이란 이름이 붙은 경북 예천군 풍양면 삼강리의 옛 나루터에 2007년 옛 모습으로 복원된 ‘삼강주막’이 그것이다. 삼강주막은 100년전에 생긴 것으로 알려졌는데, 낙동강을 배경으로 500년 된 회화나무가 주막을 감싸 안고 그 옆으로 낙동강이 넉넉하게 휘감아 돈다. 이 낙동강을 따라가다 보면 그 유명한 회룡포가 나온다.

삼강은 대구와 서울을 잇는 교통의 요지였다. 1900년대 초까지 장날이면 하루에 30회 이상 나룻배가 다녔다고 한다. 소금배가 들어왔고, 농산물도 이곳을 통해 대구와 서울로 향했다. 상인, 보부상, 뱃사공들이 이 주막에 드나들었다. 경치가 좋다 보니 시인, 묵객의 발길도 이어졌다. 자연스레 이들을 위한 숙소까지 만들어졌다.

1960년대까지 삼강나루터와 주막은 사람들로 붐볐다고 하지만 1970년대 들어 다리가 놓여지면서 나룻배도 사라졌고, 사람들의 발길도 끊어졌다. 따라서 주막을 찾는 사람도 줄어들었다. 삼강주막은 이 나라의 마지막 주막으로 불린다. 이 주막을 끝까지 지킨 사람은 유옥련 할머니다. 열아홉 나이에 주모를 맡아 2006년 아흔의 나이로 세상을 등질 때까지 70여년 동안 주막을 지켰다. 그가 세상을 떠나고 난 뒤, 한동안 방치되었으나 2007년 옛 모습으로 복원돼 주막의 정취를 이어가고 있다.

주막 곳곳에 남아있는 옛 흔적 가운데 흥미로운 것은 외상장부다. 부엌의 안팎 흙벽을 유심히 보면 세로로 죽죽 그어놓은 선들이 있다. 부지깽이를 이용해 자신만이 알 수 있는 방식으로 만들어 놓은 외상장부다. 짧은 줄은 대포 한 잔, 긴 줄은 대포 한 주전자, 외상값을 모두 갚으면 가로로 길게 줄을 그어 외상값을 지웠다. 그와 같은 전통은 그대로 이어져 와서, 1960~70년대 서울 명동의 대포집 ‘은성’ 등에서도 자기만이 알 수 있는 방법으로 외상장부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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