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송(靑松) 박병헌(朴炳憲) 선생 영전에 올립니다
청송(靑松) 박병헌(朴炳憲) 선생 영전에 올립니다
  • 이광규 동포포럼이사장
  • 승인 2011.03.08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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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송(靑松) 박병헌(朴炳憲) 선생 영전에 올립니다

 ▷이광규 동포포럼이사장
청송 박병헌 선생님 서거를 전하는 부고에 접하여 큰 애도를 표하는 바입니다. 청송 선생님은 일본의 동포 사회에 큰 업적을 남기신 동포 사회의 지도자 이셨습니다.
청송선생님은 경남 함양에서 출생하시어 일찍이 12세의 어린 나이로 일본으로 건너가시어 형님과 같이 고생을 하시었습니다. 당시 일본은 중일전쟁을 야기하고 2차 대전에 참가하여 몹시 힘들고 어려운 때였습니다. 청년 시절 청송선생님은 일본의 차별과 편견을 몸소 체협하시면서도 그것을 뿌리치고 학업에 전념하시었습니다. 해방정국의 어려웠던 시절에도 명치대학 법학과에 입학하시어 수학하시면서 한국학생동맹을 결성하시어 일본의 차별에 항의하고 특히 조총련의 횡포에 저항하여 투쟁을 계속하시었습니다. 해방 직후에는 민단보다 조총련이 강하여 조총련이 백주에 민단 사람들을 해치는 폭행을 자행하였던 시절입니다.
한국 전쟁이 발발하자 창송선생님은 600여명에 불과한 재일청년 의용군에 참전 하시었습니다. 유엔군으로 참전한 재일 의용군은 군사훈련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소속도 분명하지 않아 실은 한국군보다 더 많은 고생을 하였던 것입니다.
청송선생님은 전후 일본으로 귀국하시어 한 평생을 민단을 위하여 헌신하신 분이십니다. 1965년 민단의 총무국장으로부터 시작하여 경제국장, 총무국장, 재정국장, 감찰위원, 부단장, 단장 등 민단의 요직을 두루 편력하시면서 민단과 더불어 반평생을 사시었으며 특히 재일동포 사회가 흔들리기 쉬운 1980년대 후반 정확하게 1986년부터 1991년까지 단장 직을 수행하시었습니다. 단장 직을 물러나신 후에도 민단의 고문으로 계속 민단을 지켜 오신 분으로 평생을 민단을 지켜 오시고 민단과 더불어 일생을 보내신 민단의 어른이시고 재일 동포 사회의 어른이십니다..
일본의 민단 단장은 일본의 차별과 편견에서 살아가는 재일 동포의 고충을 이해하고 동포를 어버이로서 감싸주어야 하는 어려운 위치인 동시에 조총련과의 관계에서 항상 긴장하고 조총련의 도전에 대응하여야 하는 어려운 사항에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민단 중앙 본부는 한국을 대표하여 일본 정부와 항시 우호관계를 유지하여야 하는 동시에 한국 정부와도 우호관계를 유지하여야 하는 어려운 조건을 갖고 있습니다.
청송선생님이 단장으로 활동하실 때가 1980년대 입니다. 한국이 전두환, 노태우 정권에서 김영삼, 김대중 시대로 이어지는 어려운 시기였습니다. 이러한 개성이 강한 정권들과 큰 과오 없이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민단이 흔들림 없이 굳건히 유지되어 온 것은 청송선생님의 부드럽고 너그러우신 성품과 탁월한 리더십 덕이라 생각합니다. 청송선생님 자서전에도 말씀하신 것과 같이 후기 군사정권과 민단이 원만한 관계를 갖는 것은 일본 사회에 거주하는 재일 동포들의 지식인들의 반발도 만만한 것이 아니 이었습니다. 그러나 청송선생님은 이것을 무마하면서 한국 정부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여 왔습니다. 이것보다 더 힘든 것은 그 이후에 단행된 민주화 과정이었습니다. 이러한 과정에 민단에 불만 인사가 없었겠습니까. 그러나 청송선생은 민단의 단결을 호소하면서 독제에서 민주화로 전환하는 시기에 민단의 분열 없이 일치단결하여 과도기를 슬기롭게 넘기고 민단의 민주화를 유도하여 갔던 것은 청송선생의 탁월한 지도력이 있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러한 청송선생님의 의지를 표현한 것이 88서울 올림픽 때 재일동포들이 5백25억 원을 모아 헌금한 것입니다. 물론 재일동포가 한국을 위하여 희사한 헌금이 이것만은 아닙니다. 한국이 힘들고 어려운 때는 문론 한국에서 국가적인 행사가 있을 때마다 재일동포들이 많은 헌금을 하였고 88 서울 올림픽 때는 청송선생님이 단장을 하시었던 시기라 이곳에 부각을 시킨 것입니다.
청송선생님은 민단에 머무르지 안이하고 전 세계의 해외 동포들을 하나로 묶어 한민족대표자 대회를 주동하시어 제1차를 동경에서 개최하시었습니다. 세계한민족대표자대회는 전 세계의 해외동포들이 힘을 합하여 단합된 힘으로 한국을 돕자는 모입이며 이것을 청송선생님의 구상으로 청송선생님이 앞장서서 추진한 것은 청송선생님이 한민족사에 남기신 큰 족적이라 하겠습니다. 한민족대표자대회는 동경대회에 이어 다음은 미국, 독일, 한국 등에서 계속하여 후배들이 청송선생임의 유지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1960년대 어려웠던 시기 일본의 자본과 기술을 도입하기 위하여 구로공단을 조성할 때 청송선생님은 한국에 일본 기술을 전수시키기 위하여 구로공단에 주식회사 대성전기를 설립하시었습니다. 오늘날에는 주식회사 대성전기가 하나의 보통 기업에 지나지 않으나 설립 당시는 한국에 필요한 전기제품을 공급하는 중요한 기울의 원천이었고 한국 공업 발전에 큰 공헌을 한 것입니다.
청송선생님은 민단 중앙본부를 이끄시고 큰 사업을 이끄시는 사업가 이면서도 옆에서 뵈면 인자하고 자상한 분입니다. 개인 적으로 이러한 일도 있었습니다. 본인이 2년 전 서울에서 재외동포포럼을 시작하여 힘들던 초기에 몇 차례 호텔로 부르시어 식사를 같이 하고 힘들고 어려운 사정을 잘 파악하시고 고생한다고 위로를 하여 주시며 회비로 보태 쓰라 하시며 후원금을 주시기도 하신 것이 마치 친 형님과도 같으셨습니다.
이제 다시 오시지 못할 곳으로 우리 곁을 떠나신 청송선생님 그리고 우리 한민족과 특히 재일 동포에게 그리고 민단에게 쏟으신 정성과 열의를 영원히 기억하며 재일동포는 물론 전 세계 동포 그리고 전 한민족의 이름으로 청송선생님의 명복을 비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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