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 있는 한인들은 어떤 꿈을 꾸고, 이루면서 살고 있을까? 어떤 집을 짓고, 어떤 정원을 가꾸며 살아가고 있을까? 해외 한인들의 꿈과 정원 이야기를 모아서 연재한다. <편집자>
바야흐로 1977년, 내 평생 잊지 못할 두 가지 사건이 일어났다. 일명 ‘포도와 앵두 사건’이다. 41년 전 일이라 기억 저편 깊숙이 자리 잡았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정원을 새로 단장하느라 석류나무를 옮기면서 상기하게 된 기억이다.
어느 날 햇살 좋은 따뜻한 봄날이었다. 친구가 자기 집에 놀러 오라고 해서 갔는데 친구 집은 수색이었던 것 같다. 친구 집 대문을 열고 들어서니 앞마당에 있는 앵두나무 한그루에 싱그럽고 시큼 달콤한 빨간 앵두가 주렁주렁 달려있었다.
많이 따서 먹겠구나 싶었는데 친구는 오로지 앵두 몇 알만 따서 내게 넘겨줬을 뿐이었다. 몇 알 밖에 못 먹은 게 서운하면서도 어린 마음에 자존심이 있어서 더 달란 말은 못했다. 앵두 몇 알은 입에 넣으니 살살 녹는 듯했고, 그 맛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그날 밤 앵두나무가 눈에 아른거리고 그 많은 것 가운데 쪼잔하게 몇 개만 따준 친구가 얄미워 잠을 설치면서 결심을 했다.
“그래 나는 너보다 더 많은 앵두나무를 심을 거야. 친구들을 불러서 그 애들이 질릴 때까지 따서 먹으라고 할 거야.”
그리고 한참 지나 여름의 끝 무렵이었던 것 같다. 또 한 친구가 자기 집에 놀러 오라고 해서 갔는데, 글쎄 이 친구 집 정자나무 아래 싱그럽고 탐스러운 포도가 주렁주렁 열려있는 게 아닌가?
와우! 감탄사를 연발할 정도였다. 너무 멋있었다. 그날 내가 지른 탄성이 아직도 내 귓가를 맴도는 것 같다. 가냘픈 포도 줄기에 어떻게 저렇게 많은 포도가 달려있을까 싶다. 주렁주렁 달린 포도나무 가지는 축 늘어져 있었다.
친구의 아버지는 친구와 나에게 한 바구니를 바로 따서 안겨주셨다. 그때의 신났던 기억과 달콤한 포도 맛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그날 밤도 친구네 집 포도가 눈에 아른거려 잠을 설쳐야 했고, 나는 그 친구가 너무 부러웠다.
중학교 때 학교에서 담임선생님이 “TV 있는 사람 손들어, 냉장고 있는 사람 손들어, 피아노 있는 사람 손들어, 자동차 있는 사람 손들어” 할 때 나도 잘난 체 하고 싶은 어린 마음에 몇 번 손을 번쩍 번쩍 들기도 했지만, 나는 그때 손을 안든 과일 나무집 친구들이 훨씬 부러웠다.
당시 ‘나의 소원은 과일 나무’였다. 우리 집 정원에도 친구들이 배불이 따먹을 과일 나무가 있는 것이 꿈이었고, 그 꿈이 나중에 이역만리 타국 그것도 아프리카 말라위에서 이뤄졌다.
지금 우리 집 정원에는 오디, 망고, 석류, 레몬, 오렌지, 파파야, 아보카도, 구아바, 포도, 패션 푸르트 등 과일 나무들이 철마다 주렁주렁 열린다.
레몬과 오디를 제외한 다른 과일들은 직원들이 너도 나도 알아서 서로 가져가 내 몫은 거의 없어 주로 사서 먹지만 과일나무에 달린 풍요로운 열매들을 보는 재미만 해도 쏠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