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상문의 古今醉舌] 프랙탈이론과 '역사반복론'의 오류
[서상문의 古今醉舌] 프랙탈이론과 '역사반복론'의 오류
  • 서상문(환동해미래연구원장)
  • 승인 2018.06.27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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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는 불가역적...엔트로피법칙에 예외없어

역사란 시간과 공간을 축으로 일어난 과거의 사건에 대한 기록이다. 그러나 지나간 과거의 사건이 저절로 역사가 되는 건 아니다. 과거의 事象(일)들 가운데 역사가에게 선택돼 재구성되고 평가될 때 비로소 역사가 된다.

그렇다고 역사가의 손과 눈을 거쳤다고 해서 과거의 事象들이 모두 역사가 되는 것도 아니다. 다수의 역사가들이 동의하는 역사학적 방법론에 의거할 때에만 역사가 된다. 그 이면엔 인류의 보편성, 인식의 정합성이 내재돼 있다.

수많은 과거의 事象들 중에 어떤 것을 선택할지 가치 평가와 기준, 선택한 사상에 대한 사료검증을 거쳐 진위 규명과 함께,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평가 방법을 익히는 게 역사학이라는 학문이다.

그런데 과거 事實을 기록하는 역사가의 관점, 주관적 판단과 호오, 정치적 혹은 사상적, 이념적 입장 그리고 기록자를 둘러싼 사회적, 국가적 상황이 늘 동일하지 않기 때문에 기록과 평가도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다. 과거에 발생한 事實과 역사로서의 史實이 다른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역사가 반복된다고 하는 까닭은 역사가에게 선택된 史實이 아니라 事實을 두고 하는 얘기인데, 요컨대 事實과 史實을 혼동하기 때문이다.

역사연구는 방법 없이 무턱대고 하는 게 아니다. 역사연구 방법론들 중 일부를 구성하고 있는 史觀도 완벽한 이론적 틀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과거의 事實을 類別하는 유용한 수단임을 부정할 순 없다. 사관이란 한 마디로 역사의 일반화(generalization)를 추구하는 역사가의 역사관(geschichtsanschauung)이라고 보면 된다. 즉 끊임없이 역사적 사실에 대한 일반화를 통해 사실들을 판별하거나 입증하려는 프레임 혹은 작게는 대롱 같은 것이다. 

역사학이 생겨난 이유는 과거를 알아서 현재를 바로 이해해 미래를 내다보려는 의지 때문이다. 석가모니의 三世的, 윤회적 시간관, 공자가 말한 溫故知新도 그 중 하나다. 이 사유들은 "역사"가 반복된다고 보는 의식과 연계돼 존재한다. 고대의 공자, 사마천, 투키디데스(Thukydides, B.C. 460?~B.C. 400?)에서부터 20세기 현대의 호이징가(Huizinga, Johan, 1872~1945)에 이르기까지 역사가 반복된다는 입장에 선 역사가들이 적지 않았다.

반면, 역사는 되풀이 된다는 주장에 반대한 사조나 사가들도 있었다. 특히 神國과 신의 강림에 따른 최후의 심판을 믿으며 직선적인 시간관을 가지는 기독교적 역사관에는 역사가 반복된다고 보는 발상을 찾아볼 수 없다. 기독교 사관에서는 역사를 움직이거나 지배하는 것은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느님의 큰 뜻, 즉 섭리(providence)라고 보지만 그러한 섭리 역시 상황에 따라 달리 나타나는 것일뿐 완전히 동일한 것은 아니다. 

19세기에 등장한 유물사관도 역사는 미래로만 나아간다. 유물사관을 제창한 마르크스가 반복을 설정하지 않은 것이다. 유물사관에서는 원인이 있으면 반드시 결과가 있어, 역사는 원인의 결과라는 인과법칙을 중시한다. 이때문에 역사적 사건에 대해 물질과 생산수단 등의 한 면만 보는 결함이 있다.

필자는 역사는 반복되는 게 아니라고 보는 사람 중의 하나다. 과거에 일어난 事象들을 거시적, 미시적으로 고찰해보면 "역사"(즉 사람들이 혼동하는 事實)는 반복된다고 말할 수 있는 요소가 있는 듯이 보일뿐이지, 결코 똑 같이 반복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묘하게도 과거에서 현대에 이르는 사이 주기마다 비슷한 형식으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현상은 기실 자연계에서 발견되는 현상과 동일한, 이른바 ‘프랙탈’(Fractal)이론으로 실감 있게 파악할 수 있다.

프랙탈이란 ‘쪼개다’라는 의미를 지닌 그리스어 ‘fractus’에서 따온 전문용어로서 세부구조가 끊임없이 전체 구조를 되풀이하고 있는 현상을 가리킨다. 나무가 자라면서 큰 줄기에서 잔가지로 뻗는데, 이 현상은 잔가지에서도 동일하다. 즉 작은 잔가지는 자신 보다 더 작은 잔가지로 뻗어나간다. 이러한 패턴이 줄기 끝부분까지 계속적으로 되풀이되면서 생장한다. 하지만 모든 줄기와 가지는 세포는 물론 외형도 같지 아니하고, 전체적으로는 모든 나무들도 완벽하게 동일한 게 아니다. 단지 동일하게 보일 뿐이다.

또 한 가지는 모든 事象이 발생 시점에서 과거로 퇴행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는 사실이다. 사건이나 현상이든, 물질이나 물상이든 모두가 이 법칙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른바 엔트로피법칙(entropy law)이다. 예컨대 인류의 과학 기술, 정보나 지식에서부터 인구, 자연환경, 자원상황도 고정적이지 않고 부단히 변화한다.

그 변화란 늘 불가역적(irreversible)이다. 예컨대 과학 기술이나 지식은 일단 앞으로 한 발 나아가면 설령 일시적으로 어느 날 잊혀 진다고 해도 그 이전 상태로 되돌아가는 일은 없다. 인구와 자원도 마찬가지다. 일단 증가한 인구가 급감한다고 해서 원래 사회로 되돌아가는 건 아니다. 사용된 자원도 고갈되면 대체물이 마련되지 않으면 그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사회가 되어 비참한 상황이 전개될 것이다. 이 역시 불가역적인 것이다. 

이처럼 역사에서도 결코 동일한 상황이 반복되지 않는다. 상황과 조건이 다른 가운데 유사한 일이 벌어질 뿐이다. 유사성에서 역사가 현재의 정치, 경제, 법률, 행정, 사회의 운영에 참고될 뿐이다.

서양에서 ‘진정한 역사, 오직 사실에 기초한 인간의 역사를 쓴 선구자’로 평가되는 투키디데스는 자신의 저서 ‘戰史’에서 “금후에도 인간 본성으로 인해, 다른 상황에서도 서로 닮은 사건이 일어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래서 역사에서 우리가 배워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의 최대치는 인간의 본성에 토대를 둔 사유와 행위의 다양한 사례들이다.

서상문(환동해미래연구원장)
서상문(환동해미래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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