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영의 우리詩論-4] 김남권의 족문(足紋)
[김필영의 우리詩論-4] 김남권의 족문(足紋)
  • 김필영(한국현대시인협회 사무총장)
  • 승인 2018.07.21 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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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을 주는 한국 현대시를 선정··· 시와 함께 읽는 시평

평생 기억에 남는 시가 있다. 하지만 그런 시를 찾기가 쉽지 않다. 특히 감동을 주는 시를 찾아내기란 짚단에서 바늘 찾기와 같을 수도 있다. 필자는 2014년 가을부터 감동시를 찾아내는 작업에 들어갔다. 시를 찾아 감상 평론도 썼다. 다음은 그가 찾아낸 주옥같은 한국 현대시와 그의 평론이다. 본지는 해외한인사회의 우리 문학적 감수성과 상상력을 자극하기 위해 '김필영의 우리시론'이라는 타이틀로 시와 평을 소개한다.<편집자>

족문(足紋)

언 발이 아지랑이를 붙들고 내려온다
두루미의 발바닥이 강물에 닿는 순간 
족문을 읽은 강물이 동그랗게 웃는다
물 속 물고기의 이야기를 기억하는
두루미가 한발 한발 걸음을 뗄 때
마른 갈대 몸에서 새순 돋아나고
강물의 가슴에도 꽃은 핀다
어디로 향한 발걸음이 저리 곱게 고개 숙일까
강물의 신작로를 따라
물살을 만지는 홍등이 켜진다
한 번도 들은 적 없는 두루미의 울음이
강물 위 풍경소리로 배접되고
풍경 속에 매달린 물고기의 외침이
갈대의 뿌리에 가 닿는 동안
새겨지는 바람의 족문
뭍에서 태어났지만 물결이 되어야 하는
가슴 가까이 갈대의 숨결을 데려 온 
두루미의 발이 족문 하나 내려놓고 
흰 날개를 당겨 하늘로 오른다.

“강물에 새겨지는 물무늬, 삶과 떠나감의 미학”

인체의 75%가 수분으로 이루어진 사람은 물을 섭취해야만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 지구별에서 물의 순환계는 바다에서 태양열에 의해 증발한 수증기가 공중에서 구름으로 머물다가 무거워지면 비가 되어 지상으로 내려와 산야를 적시고 다시 바다로 가는 과정에서 강(江)은 사람과 가장 가까이 존재한다.

유유히 흐르는 강물은 사람에게 필수불가결한 자원이이기도 하며 강물의 흘러간다는 것을 우리의 삶으로 비유하기도 한다. 김남권 시인이 바라본 강물과 더불어 존재하는 생명의 표정을 통해 은유한 강물을 주목해본다.

강도 계절 따라 모습이 다르다. 여름의 강과 가을의 강이 다르고, 겨울의 강과 봄의 강이 다르다. 강물은 늘 말없이 바다를 향해 한곳으로 흐르고 있지만 찾아오는 계절과 생명체들은 계절마다 다른 시를 써 내려간다. 강물에 새로운 손님이 찾아온다. 누군가 애타게 기다린 봄이 오고 있는 것이다. 남풍이 봄을 데리고 강물을 거슬러 불어오는 것이 아니라, 겨우내 꽁꽁 얼었던 강물 위로 두루미의 “언 발이 아지랑이를 붙들고 내려”와 아롱거리는 아지랑이의 손길로 강물을 어루만질 때, 봄은 강을 찾아오듯 우리의 생도 그렇게 오는 것이다.

마음이 부드러운 강물이 봄을 맞아드리는 풍경에는 두루미와 강물과 물고기와 갈대로 이어지는 생명이 공존하는 조화로움이 평화롭게 공존한다. 우리는 한 마리의 두루미를 통해 강물의 얼굴을 볼 수 있다. “두루미의 발바닥이 강물에 닿는 순간”두루미 발바닥의 주름인 “족문을 읽은 강물이 동그랗게 웃는다.” 강물에 봄이 찾아드는 풍경 묘사를 읽는 가슴이 일순간 물의 파문처럼 일렁인다. 세상이라는 강물에 한 마리 두루미처럼 우리가 자연의 훼손자가 아닌 자연과 더불어 하나가 되는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시의 행간의 조화로운 풍경에서 느끼게 된다.

봄이 오는 계절의 강물이 두루미를 맞는 이 광경은 집으로 돌아오는 나그네를 맞아들이는 따뜻한 귀로 같은 풍경이다. 먼 외출에서 돌아와 “물 속 물고기의 이야기를 기억하는 두루미가 한발 한발 걸음을 뗄 때, 마른 갈대 몸에서 새순 돋아나고 강물의 가슴에도 꽃은 핀다”는 표현에서 물고기들과도 화해하는 두루미의 발걸음이 강물에 봄이라는 씨앗을 심듯 옮겨질 때마다 강물은 거부함 없이 둥근 파문으로 웃음 지을 때, 사람도 자연 앞에 웃음으로 화답하는 존재일 때 향기로운 꽃이 될 수 있음을 알게 된다.

이제 천년을 흘러가는 강물과 더불어 사는 두루미의 생은 고요한 아름다움이다. 두루미의 머리에서 목으로 이어져 낮게 수그러드는 곡선의 겸손한 모습에서 화자는 우리의 삶도 그처럼 낮은 곡선으로 곱고 아름답게 강물처럼 흘러가기를 염원하는 듯하다. “강물의 신작로를 따라 물살을 만지는 홍등이 켜”지는 것처럼 우리도 삶도 홍등이 켜지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있다.

절창의 서경시(敍景詩) 한편이 아련한 아픔으로 느껴지는 시의 종반부는 두루미의 비상을 통해 반전을 맞는다.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두루미의 울음이 강물 위 풍경소리로 배접되”는 것처럼 우리의 생도 울음처럼 아파와 생의 강물 밑으로 뿌리내릴 때, “뭍에서 태어났지만 물결이 되어야 하는/ 가슴 가까이 갈대의 숨결을 데려 온 두루미”가 “족문 하나 내려놓고 흰 날개를 당겨 하늘로” 비상하듯, 언젠가 우리도 족문을 남기고 떠나가야 하는 존재임을 일깨워준다. 삶터로 은유된 강과 강물의 경계를 파격적인 비상으로 떠나가는 두루미처럼 우리가 언젠가 삶의 강물을 떠나가야 할 때 스스럼없이 떠날 수 있게 오늘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일깨워준다.

[필자 약력]
* 한국현대시인협회 사무총장(2017~8)
* 한국시문학문인회 차기회장(2019~2020)
* 시집 & 평론집: ‘나를 다리다’, ‘응’, ‘詩로 빚은 우리 한식’, ‘그대 가슴에 흐르는 시’
* SUN IL FCS(푸드서비스 디자인 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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