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승의 붓을 따라] 현암사의 하룻밤 우정
[이영승의 붓을 따라] 현암사의 하룻밤 우정
  • 이영승(영가경전연구회 회원)
  • 승인 2018.08.28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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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동창 모임에 갔다가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마음속으로 늘 그리던 단짝 친구의 소식을 39년 만에 알게 된 것이다. 그는 나와 한마을에서 살지는 않았지만 공부도 잘하고 정이 많아 각별히 지냈다. 6학년 때 어린이회장에 출마하여 그 친구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당선 된 것이 더욱 가까워진 계기가 되었다. 긴 세월 소식을 알려고도 하지 않은 내 자신이 너무 원망스러웠다. 그는 지금 현암사(懸岩寺) 주지로 기거 중이란다.

66년도 졸업 후 9년 뒤 우연히 그를 한번 만난 적이 있었다. 군 입대를 위해 소집된 신체검사장에서다. 길게 늘어선 인파 속에 애티 나는 스님 한분이 서 있었다. 분명 낯익은 사람 같아 가만히 찾아가 나를 알겠느냐고 물었더니 말없이 합장하며 고개만 끄덕였다. 해맑고 청아하던 그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신체검사는 다음날까지 계속되었다. 숙박 계획을 물으니 여관에서 잘 예정이라 했다. 내 하숙집으로 가자고 제의하여 함께 갔다. 

우리는 밤이 늦도록 많은 얘기를 나눴다. 그는 부산상고를 다녔는데 암으로 위를 완전 절단했다고 하였다. 당시만 해도 위암은 완치 확률이 낮았으며, 위를 절단하고서는 정상적인 생활이 어려울 때이다. 살기위해 최선의 길을 선택한 것이 출가였다. 수판이 4단이라 서울 조계사에서 회계 업무를 맡고 있으며, 승려 생활에 만족한다고 했다. 법명은 도공(道空)이었다. 

소식을 안 이상 하루도 더 지체할 수가 없었다. 현암사를 내비게이션에 치니 충북 청원군 현도면으로 대청댐 바로 인근이었다. 인터넷으로 조회하니 절경을 극찬하는 방문자들의 많은 후기가 떴다. 하룻밤 잘 준비를 갖춰 도공스님을 찾아 나섰다. 혹시 나를 기억하지 못할까 걱정했는데 한눈에 알아보고 반겨주었다. 

그 옛날 앳된 모습은 없지만 곱고 평화로운 자태는 여전했다. 스님이 손수 끓여 주는 차 맛은 참으로 감미로웠다. 스님과 함께 절 경내를 돌아보고 뒷산에 올라 대청댐을 비롯한 주변 경관도 구경했다. 스님과 겸상한 저녁 공양은 그야말로 별미였다. 출가하여 겪었던 지난 세월의 많은 얘기들을 들었으며, 내가 살아온 얘기도 틈틈이 했다.

스님은 동국대학 불교학과를 졸업하고 해외 유학을 다녀온 후 법주사 주지를 역임했으며, 청주불교방송 사장도 맡고 있었다. 법주사 주지를 물러난 후 현암사로 처음 왔을 때는 신도 10여명의 작은 암자였는데 그동안 불사를 일으켜 신도 5천명이 넘는 큰 사찰로 변모시켰다. 법주사 주지 시 노후한 대웅전을 새로 짓고, 현암사 대웅전까지 지음으로써 대웅전을 2채 지은 유일한 스님이 되셨단다. 

그 과정에 겪은 온갖 난관과 승려 생활의 고락 등 많은 얘기로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밤이 깊어지자 스님은 내일을 위해 이만 자자며 내 방의 이부자리를 직접 돌봐줬다. 혹시 밤에 소변이라도 볼 때 어려움을 겪을까봐 손을 잡고 화장실을 안내해주며, 오늘 밤에는 전등불을 켜놓을 테니 걱정 말라고 했다. 

내가 잘 방으로 건너가 누웠으나 잠은 오지 않고 지붕 끝에서 울리는 풍경 소리만이 내 귓전을 간지럽혔다. 그 옛날 불심(佛心)에 빠져 내 인생 가장 심각하게 고뇌했던 추억이 불현 듯 생각났다. 고교 1학년 때이다. 전교생을 대상으로 당시 유명했던 동화사 홍원(弘元)스님의 특강이 있었다. 그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평소 불교에 관심이 많던 나는 강의에 감명 받아 깊은 고민에 빠졌다. 

나도 저 스님처럼 자연 속에서 평생 수도자의 길을 걷고 싶다는 욕망 때문이었다. 당시 나는 춘원 전집에 심취하여 그분의 저서라면 가리지 않고 읽었으며, 저서 바탕에 흐르는 불교 사상에 도취되어 길을 가다가도 스님을 만나거나 목탁 소리를 들으면 발길을 멈추곤 했다. 긴 번민 끝에 출가 결심을 최종 굳히고 비장한 각오로 홍원스님을 찾아갔다. 

머리 깎은 어린 학생으로부터 출가하겠다는 말을 들은 스님은 기가 찼던지 단 한마디 말씀도 않으셨다. 저녁 공양 시간이 되자 동자를 불러 겸상을 차려오라 하셨다. 그러나 식사 때도, 식사 후에도 말씀은 계속 없었다. 답답한 마음으로 기다리다 밤이 깊어 스님 옆에서 잠이 들었다. 

새벽에 잠을 깨워 일어나니 4시경이었는데 새벽 예불에 가자고 하셨다. 예불이 뭔지 모르는 나는 신기한 듯 눈을 가늘게 뜨고 구경만 했다. 아침 공양을 마치자 스님께서 “대구 보현사 학생회에 강연을 가야하니 함께 가자”고 하셨다. 버스를 타고 보현사 근교에 갔을 즈음 그토록 기다리던 대답을 주셨다. “불교 공부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해도 늦지 않다. 지금은 학생 신분이니 학업에 열중하라. 출가의 길이 그렇게 즉흥적으로 결정할 일은 아니다.” 대략 그런 정도의 말씀으로 기억된다. 

스님은 특강을 마친 후 고등부학생회장을 불러 “불교에 관심이 많은 학생이니 잘 좀 지도해 주라”며 나를 소개한 후 훌쩍 떠나버리셨다. 그토록 심각하게 고민했던 나의 출가는 그렇게 대단원의 막이 내렸다. 지금 생각하니 그때의 출가 결심이 어이가 없지만 그 용기만은 가상했던 것 같다. 그 후 열심히 학생회에 다니며 반야심경, 천수경 등을 배우고 수련회에도 부지런히 다녔다. 3학년 때는 파계사에서 법명도 받았다. 그러나 직장생활 후에는 바쁜 현실에 쫓겨 절에도 거의 다니지 못했다. 지금은 누가 종교를 물으면 양심상 불자(佛子)라는 대답도 쉽게 하지를 못하고 있다. 

내가 만약 내일 아침 도공스님께 그 옛날 홍원스님을 찾아갔던 심경으로 출가를 하고 싶다면 뭐라고 대답할까? 지금은 출가하기에 너무 늦은 나이니 생각을 바꾸라고 할까? 아니면 조선 말기 대 선승(禪僧) 경허(鏡虛)스님이 시에서 말했듯이 

世與靑山何者是(속세와 청산 어느 것이 옳은가),  
春光無處不開化(봄볕 이르는 곳에 꽃피지 않는 곳 없다)

즉 ‘내가 머무는 곳이 곧 절이요 부처님 앞이니 출가가 따로 없다’고 할까? 그도 아니면 말없이 빙그레 웃기만 할까? 어째든 이번에도 내 말에 동의를 하지는 않을 것 같다. 그러나 도공스님의 소식을 듣고 한걸음에 여기까지 달려온 것을 보면 아직도 ‘내 가슴속의 불심’이 완전히 사그라지지는 않았음이 아닌가? 하지만 한 중생의 출가 여부도 인연 따라 흘러갈 뿐이지 결코 자의적으로 될 일은 아닐 성싶다.

새벽녘에 깜빡 잠이 들었나 보다. 도공스님의 기침 소리에 잠이 깼다. 아침에도 스님과 겸상으로 먹는 절밥은 꿀맛이었다. 공양을 차려준 보살님께 고마움의 표시로 준비한 소액 봉투를 합장하여 전하고 절문을 나서니 도공스님이 배웅을 하기 위해 미리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몇 차례나 그만 들어가라고 만류해도 한참이나 따라 나오더니 봉투 하나를 슬며시 내밀었다. “내가 동창회에 갈 수 없으니 친구들을 만나 내 뜻을 전하고 식사 한 끼 같이하라”고 했다. 아무리 거절해도 뜻을 굽히지 않았다. 돌아오며 봉투를 확인하니 거금 100만원이 들어있었다. 

동창회 때 이 돈을 어떻게 쓸 것인지 논의한 결과 50만원은 부처님 오신 날 동창회 이름으로 현암사에 연등을 달고, 나머지는 스님의 뜻에 따라 회식을 하기로 했다. 어린 시절 우정이 오죽 애틋했으면 속세를 떠난 몸으로 이토록 마음을 쓰실까? 아, 나의 그리운 친구여! 그리고 존경하는 스님이시여! 부디 성불하옵소서!

필자소개
​수필문학으로 등단
​전 한국전력공사 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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