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승의 붓을 따라] 할아버지 제삿날
[이영승의 붓을 따라] 할아버지 제삿날
  • 이영승(영가경전연구회 회원)
  • 승인 2018.09.19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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닷새 후면 마흔 아홉 번째 할아버지 제삿날이다. 큰형님이 서울에 사실 때는 할아버지 제삿날에 참석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러나 십여 년 전 문경으로 이사를 간 후로는 거의 참석치 못하고 있다. 내 책상 위 달력에는 아내가 부모님 제삿날을 비롯한 집안 행사를 빽빽이 적어 놓았다. 그래도 나는 아내가 미리 말해주지 않으면 하나도 제대로 챙기지 못한다. 금년에도 할아버지 제삿날을 사전에 귀띔해 주니 고맙기 그지없다. 

할아버지는 내가 중학교 1학년 때에 향년 89세로 돌아가셨다. 당시로는 장수를 하신 편이다. 할아버지는 사십대 중반 젊은 나이에 상처를 하시어 50여년을 홀로 외롭게 사셨다. 어머니가 15세 어린 나이로 시집오셨을 때 막내 시동생은 첫돌 전의 애기로 새색시인 형수 손에서 자랐다. 그래서 할아버지는 맏며느리를 의지하여 어린 여러 자식들을 키우셨다. 

오늘따라 할아버지가 불현듯 생각난다. 당신의 팔 길이보다 긴 담뱃대를 입에 물고 언제나 단정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바깥출입을 하실 때는 물론 농작물을 둘러보러 들에 나가실 때도 담뱃대만은 손에서 놓지를 않았다. 방안에서 홀로 정좌하여 계실 때는 항상 기도 하듯이 눈을 지그시 감고 계셨다. 어릴 때 나는 그 연유를 알지 못했다. 왜 그러실까 의아하게도 생각했다. 본인이 직접 겪어봐야만 터득하는 것이 인생사이던가? 요즘 내가 눈의 피로를 부쩍 느끼면서 ‘아하! 그래서였구나.’하고 알게 됐다. 

할아버지는 기억력이 좋고 총명하기로 문중 내에서 화제가 될 정도였다. 길을 가던 과객이 물 한 모금을 얻어먹기 위해 들러도 그냥 보내지 않고 붙들어 앉혀 말을 붙였다. 생면부지의 사람이 자기 성씨만 말하면 그의 조상 내력을 본인보다 더 상세히 알고 줄줄 외듯 하셨으며, 도리어 자기 조상 내력을 배워 가는 경우도 많았다. 어쩌다 대화가 될 정도의 사람을 만나면 조상 얘기는 물론 조선사를 넘어 고려사로까지 끝없이 이어지기도 했다. 그러다 끼니때가 되면 밥상까지 차려 내오라고 하셨으니 어머니의 고충도 적지 않았을 성싶다. 

식사 때마다 할아버지는 항상 빈 그릇을 달라하여 밥을 몇 숟갈 덜고 나서 잡수셨다. 그냥 먹기 시작하면 과식하게 되기 때문이라 하셨다. 그래서 할아버지 밥상에는 아예 빈 접시가 하나 더 놓여 있었다. 이 또한 내가 어릴 적에는 이해하지 못했다. 과식과 식탐이 얼마나 어리석은 지를 체험으로 깨달은 후에야 이해하게 됐다. 할아버지는 밥 한 그릇을 잡수시는데도 이렇듯 사전에 적당량을 가늠하여 조정할 정도로 매사에 자제하고 절제하셨다. 이러한 사소한 것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 바로 ‘군자의 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학교에서 돌아와 밥상에 앉자마자 밥숟가락을 가득 채워 퍼먹기 시작하면 할아버지는 절대 그냥 지나쳐 보지 않으셨다. “밥을 먹기 전에는 꼭 물부터 한 모금 마시고, 국이나 장맛도 먼저 본 후, 밥은 적게 떠서 꼭꼭 씹어 먹으라.”고 누누이 말씀하셨다. 그러나 그 의미를 알아듣지 못한 나는 잔소리가 귀찮아 밥그릇을 들고 옆방으로 슬쩍 피신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니 이러한 모든 식생활 습관이 할아버지의 ‘장수 비결’이 아니었는가 싶다. 나도 이제 나이가 들어가기 때문인가? 그 말씀들이 새삼 이렇게 아련한 추억과 그리움이 되어 가슴을 울린다. 

할아버지와 달리 아버지는 씨름판을 돌며 힘자랑을 하고, 가끔은 노름도 마다하지 않는 한량이셨다. 젊은 시절 한때는 만주와 북해도까지 다니면서 해보지 않은 일이 없으셨단다. 그렇다 보니 할아버지의 애를 무던히도 태우셨다. 귀가가 늦어지면 들어올 때까지 주무시지 않고 기다리다가 환갑이 다된 아들을 마치 어린애 대하듯 나무라고 타일렀다. 내가 철든 후에는 그러한 할아버지가 가엽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날 밤에는 이웃 어르신 한분이 놀러와 밤늦도록 정담을 나누다 가셨다. 다음 날 아침 어머니가 밥상을 들고 가서 문을 두드리니 아무 인기척이 없었다. 황급히 들어가 깨우니 이미 주무시듯 숨을 거둔 상태였단다. “건강치 못한 몸으로 긴 세월 모셔온 맏며느리가 가여워 마지막 떠나면서 배려하신 것 같다.”고 어머니는 생전에 늘 말씀하셨다.

이번 할아버지 제삿날에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시간을 내어 다녀와야겠다. 큰형님 내외분과 제삿밥을 먹으며 할아버지에 대한 얘기를 더 많이 나누고 싶다. 나 보다 아홉 살 위인 형님은 할아버지에 대해 훨씬 더 많은 역사를 아실 터이니 말이다.

필자소개
​수필문학으로 등단
​전 한국전력공사 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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