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문기] '죽었던' 공자(孔子)의 화려한 부활
[방문기] '죽었던' 공자(孔子)의 화려한 부활
  • 최동전 (사)푸른한국 이사장
  • 승인 2011.04.26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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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의 고향, 산동성 곡부 방문기

최동전 <사단법인 푸른한국 이사장>

최동전 이사장
평소 공자와 공자의 학문을 좀 더 열심히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을 항상 갖고 있었는데 게으름 때문에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 때마침 공자를 좋아하는 모임에서 곡부를 방문한다는 소식을 듣고 무턱대고 따라나섰다.

곡부에 도착하여 궐리빈사 호텔에 들어서니‘ 有朋自遠方來 不亦樂呼’라고 액자에 크게 쓰여 있었다. 이글은 논어 제1장 <학이편> 제1절에 나오는 말이다. ‘친구가 먼곳에서 왔는데 어찌 반가워하지 아니하리오’라는 뜻이다.

곡부 시는 인구 70만인데 공자의 공씨(孔氏)가 60%를 차지한다고 한다. 가옥이며 담장이며 거리며 모두가 공자의 고향임을 확연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더군다나 곡부시 중앙에 공씨 자손들 묘 10만기를 둘러보면서 깜짝 놀랐다. 과연 곡부시가 공자시임을 증언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공자는 참으로 열정적인 인간이었다. 고뇌와 절망을 반복하면서 자기의 꿈을 세상의 꿈으로 바꾸고자 평생 방황했던 인물이다. 기원전 497년 54세의 공자는 안회, 재아, 자로, 자공 등 4명의 제자와 함께 세상을 바로 잡아 보고자 14년간 기나긴 유랑생활을 했다. 공자는 수천 킬로미터를 걸어 다녔으며 무려 일곱 나라를 두루 돌아다녔다.

공자는 3천여 명의 제자를 거느렸는데 그의 명성은 제자를 잘 두어서 그의 행적과 가르침을 후대에 전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장자의 글 속에서 공자와 안회의 관계를 이렇게 서술하고 있다.

선생님이 걸으시면 저도 걷습니다. 선생님이 뛰시면 저도 뜁니다. 선생님이 달리시면 저도 달립니다. 그러나 선생님이 티끌 하나 일으키지 않고 화살처럼 멀어져갈 때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선생님의 뒷모습을 멍하니 쳐다보는것 뿐입니다.

공자를 관념주의자나 현실을 모르는 사람으로 치부하는 것은 잘못된 평가다. 공자는 권력이 실천의 동력이라는 것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던 현실주의자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그는 정치활동을 통해 천하를 바로 잡고자 계층을 가리지 않고 수많은 대화를 나누었으며 끝없는 유랑을 했다.
공자가 현실과 정치와 민심을 얼마나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는지 판단하기 위해 <논어> 12장 안연편 7절을 소개한다.

어느 날 자공이 공자에게 여쭈었다.
“정치란 무엇입니까?”
“식량을 넉넉히 쌓고 병사를 충분히 갖고 백성의 신뢰를 얻는 것이다”
“만약 이 셋 중에 하나를 버려야 한다면 어느 것을 먼저 버려야 합니까?”
“군사를 버려라.”
“만약 나머지 두 가지 중에서 하나를 버려야 하다면 어느쪽을 버려야 합니까?”
“식량을 버려라. 백성들의 신뢰를 얻지 못하면 나라가 설 수 없는 것이니라.”

정치란 백성들의 신뢰 그 자체이며 경제나 국방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을 공자는 꽤뚫어 본 것이다. 그런데 오늘 우리나라 정치는 어떠한가? 개판 5분전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 개판이다. 국회의 폭력적 장면은 TV를 통해 전 세계에 전파되어 한국을 완전히 웃음거리로 만들고 있다.

아무리 올바른 일이라도 당리당략에 어긋하면 무조건 반대한다. 정치와 정치인은 국민들로부터 완전히 신뢰를 잊어버렸으며 개망나니 취급을 받고 있다. 이 나라 정치인은 <논어> 안연편의 일독을 읽고 대오 각성하여 국민의 신뢰를 얻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공자의 핵심사상은 인(仁)이다. 인은 무엇인가? 극기와 모심이다. 공자는 인을 따뜻하고 아름다워 고향처럼 사람을 끌어당긴다고 했다. 12세기 사상가 주희는 인을 사랑의 원리라고 했다.
공자의 철학과 핵심사상은 <논어>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논어>는 공자의 제자들이 공자와 제자들의 문답을 모아서 엮은 책이다. 2000년 이상 전해져 내려와 중국의 역사, 문화, 정치, 경제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고 있다. 위대한 철학적 저서이며 사상적 지혜서이기도 하다.

공자의 경전을 깊숙이 연구한 사람은 송나라의 주자와 정자이다. <논어>를 열심히 연구하여 핵심을 파악한 정자는 ‘不知手之舞之足之蹈之’ 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게 되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손과 발로 덩실덩실 춤을 추게 된다.’는 뜻이다. <논어>를 통해 심오한 공자의 사상과 철학을 파악한 정자는 그토록 희열을 느꼈던 것이다.

10여 년 전 상명대학교 중어중문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던 김경일 교수가 < 공자가 죽어야 나라라 산다 >는 도발적 저서를 발간한 적이 있다. 그 책이 세상에 나오자 공자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문하생들은 크게 당황하여 비탄과 분개로 어찌할바를 몰라했다. 신문과 서점가는 벌집 쑤셔 놓은 듯이 떠들썩했고 대한민국 어디를 가도 지식인 사회에서 그 책 이야기가 대화의 주종을 이루었다.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이 책의 일부분을 인용해 보기로 한다.

유교는 처음부터 거짓을 안고 출발했다. 많은 사람들이 모르고 있지만 유교의 씨앗은 쿠데타로 왕권을 쟁탈한 조갑이라는 한 중국인 사내의 정치적 탐욕을 감추려는 목적 아래 뿌려진 것이었다. 기원전 1300년경 황하 유역에서 일어난 이 사건의 현장을 우리는 고대 동양 문화의 실록인 갑골문에서 발견하게 된다. 그 후 이 정치적 사건은 교묘하게 도덕적으로 위장되어 전해오다가 공자라는 한 사나이에 의해 후대에 전해졌다. 물론 그 당시 공자는 사건의 내면에 숨겨진 불순한 문화적 코드를 읽어내지 못한 채 도덕만을 외쳐댔다.

공자의 도덕은 ‘사람’을 위한 도덕이 아닌 ‘정치’를 위한 도덕이었고, ‘남성’을 위한 도덕이었고, ‘어른’을 위한 도덕이었고, ‘기득권자’를 위한 도덕이었고 , 심지어 ‘주검’을 위한 도덕이었다. 때문에 공자의 도덕을 딛고 선 유교문화는 정치적 기만과 위선, ‘남성적 우월’ ‘젊음과 창의성의 말살’ 그리고 ‘주검 숭배가 낳은 우울함’으로 가득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 이방인의 문화는 조선 왕실의 통치 이데올로기가 되어 우리의 삶 속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그것은 사농공상으로 대표되는 신분사회, 토론 부재를 낳은 가부장 의식, 위선을 부추기는 군자의 논리, 끼리끼리의 협잡을 부르는 혈연적 폐쇄성과 그로 인한 분열 본질, 여성 차별을 부른 남성우월 의식, 스승의 권위 강조로 인한 창의성 말살 교육 따위의 문제점들을 오늘날까지 지속시키고 있다. 이것들은 오늘날 우리들 삶의 공간에 필요한 투명성과 평등, 번득이는 창의력, 맑은 생명들과는 너무도 동떨어진 것들이다. 유교의 유효기간은 이제 끝난 것이다.

김경일 교수만이 아니다. 김교수가 책을 발간하던 당시 공자는 아시아의 후진성의 가장 큰 책임자로 많은 학자들로부터 뭇매를 맞았다. 공자의 교훈을 거역하고 팽개쳐야만 사회가 발전할 수 있다는 믿음이 동아시아를 휩쓸었다.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는 믿음은 한 시대의 아이콘이기도 했다.

뿐만이 아니다. 유학은 진나라 분서갱유 때 참혹한 수난을 겪었고 1919년 또 한번 만신창이가 되었다. 서구 열강의 침략으로 중국이 흔들렸을 때 지식인들은 그 원죄를 공자와 유학 사상에 돌렸다. 5.4운동 때는 ‘공자주의를 타도하자’는 구호까지 등장했다.

공자가 가장 혹독하게 비판받은 것은 문화대혁명 때였다. 홍위병들은 공자의 무덤을 파헤쳐 공자가 확실히 죽어 있음을 확인했다. 8년 후에 모택동의 후계자 임표와 함께 끌려나와 또 모욕을 당했다. 이른바 비림비공(批林批孔)운동의 표적이 되었다.

그러면 공자 앞에 비수를 들이밀었던 김경일 교수가 공자를 반신불수로 만들었는가! 모택동의 홍위병이 공자를 완전히 죽였는가! 아니다. 결코 죽이지 못했다. 죽여도 죽여도 더욱 화려하게 부활했다. 공자는 죽이면 죽일수록 불사신처럼 다시 살아났다. 어떻게 살아났을까? 작년 1월 11일 천안문 광장 옆에 높이 7.9m의 공자상이 세워졌다. 모택동의 대형 초상화와 비스듬히 마주보는 곳에 공자는 위풍당당하고 화려하게 부활했다.

거대한 동상의 건립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중국은 공자의 부활을 통해 무엇을 노리는가? 바로 중화 민족주의의 팽창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다. 동상건립 뿐만 아니라 중국은 온 세계에 공자학원을 설립하고 있다. 명목은 중국어를 가르쳐주는 곳으로 위장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은 중국의 평화적 팽창의 전위대 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 중국의 무시무시한 팽창주의를 꽤뚫어볼 필요가 있다. 중국은 아프리카를 휩쓸고 있으며 남미 파나마운하까지 접수한 상태다. 우리는 나라를 걱정하는 이 나라의 수많은 지식인들과 함께 중국의 팽창을 예의주시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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