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송칼럼] 고자질에 대하여...
[이계송칼럼] 고자질에 대하여...
  • 이계송(재미수필가)
  • 승인 2019.01.08 11: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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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그렇게 죽자 사자 다정하게 지내던 이웃이 가장 무서웠다. 앞마당 잔디를 미쳐 못 깎아 좀 길어졌을 때, 가끔씩 우리 집 옆 코너 드라이브길 STOP 사인을 안 지키고 지나쳤을 때 그들은 어김없이 구청이나 경찰에 고자질을 했다. 미국이민 초기에 가장 힘들었던 일이다. 이웃사촌끼리 그럴 수 있는가? 도저히 이해가 안 갔다. 실은 그게 공익신고였던 것이다. 그런 고자질이 이웃사촌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다는 걸 알게 된 것은 나의 이민생활이 한참 농익은 무렵이었다.

최근 내부고자질 때문에 한국사회가 들썩들썩하다. 반쯤은 미국 놈이 되어버린 내가 보기에는 들썩거리는 것 자체가 이상하다. 당연한 일이 어떻게 논란거리가 되는 걸까. 물론 이해는 간다. 그간 유교적 가족윤리를 바탕으로 한 친애의 정과 의리를 중시하는 전통이 있어 한국인들은 엄청난 격동기를 넘길 수 있었다. 특히 일제와 군사독제를 겪으면서 이 전통은 공(公)과 사(私)의 구분 없이 아름다운 인간미로까지 인식됐다. 오죽했으면 어릴 적 형제들끼리 싸우다 일러바칠 때 우리 부모님들은 남아로서 나약하고 변변치 못한 행동이라고 야단을 치셨을까.

세상이 엄청나게 바뀌었다.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적어도 공적영역에 한해서는 고자질이 필요할 정도로 세상은 복잡해졌다. 고자질을 장려하기 위한 ‘공익신고자 보호법’(公益申告者保護法)까지 제정됐다. 8년 전에 만들어진 이 법은 “공익을 침해하는 행위를 신고한 사람 등을 보호하고 지원함으로써 국민 생활의 안정과 투명하고 깨끗한 사회풍토의 확립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되어 있다. 

문제는 아무리 좋은 법이라도 입법의 취지에 대한 이해, 그리고 준법의 자율화/생활화 없이는 있으나 마나다. 미국의 경우 우리보다 35년 전에 제정된 ‘휘슬 블로워(whistle-blower 고발자) 보호법’은 그동안 휘슬 블로워가 더욱 안심하고 호르라기를 불어댈 수 있도록 보복방지에 중점을 두고 수차례 걸쳐 법을 강화해왔다. 적극적인 시행을 위해 정부와 시민사회 모두가 엄청난 노력을 해왔음도 물론이다. 직장단위의 교육과 홍보, 비영리시민단체/전문변호사들의 적극적인 활동을 통해서 고자질을 마음 놓고 하라고 고취시킨다. 신입사원이나 신입공무원들은 반드시 이 교육을 받아야 한다. 

문재인 정권은 ‘적폐청산’을 제일 국정과제로 삼고 있다. ‘공익신고자 보호법’(公益申告者保護法)이야말로 아주 좋은 자정(自淨)수단이다. 활용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고자질은 민주시민의 권리요 의무고, 또한 칭찬받을 일이라는 사고가 일상의 문화로서 정착되도록 정부가 선도할 필요가 있다. 고자질한 사람을 나쁘게 볼 게 아니라, ‘Report’ 즉 ‘그가 듣거나, 보았거나, 조사했던 것을 말이나 글로 전해주는 (단순한) 행동’으로 볼 때 새 지평이 열리게 될 것이다. 

고발자의 신분 또한 문제 삼을 거리가 아니다. 5-6급 공무원이므로 시시비비를 가릴 위치에 있지 않다? 갑의 위치에 있는 고위 공무원들만이 고발자격이 있다는 걸까? 그들이야말로 고발 대상자가 아닌가. 고발은 힘없는 을이 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고발자의 위치나 신분에 상관없이 그의 Report가 공익정보로서 가치가 있고 시정의 단초가 된다면 보호해주는 것이 마땅하다. 고발의 속셈이나 동기, 고발내용의 시시비비를 공적으로 따지는 것도 본말의 전도요, ‘공익신고자보호법’에 반하는 일일 수 있다. ‘휘슬 블로우’란 말의 유래를 살펴보면 더욱 명확해진다. 영국의 경찰관이 호루라기를 불어 위법행위를 경계하고 시민의 위험을 경고하던 데서 유래했다. 호루라기는 자주 자주 불어대는 것만으로도 예방적 가치가 있다는 말이다.

‘공익신고자 보호법’의 성공적 정착은 이번 고발자들의 처리를 어떻게 하는가에 달려있어 보인다. 무엇보다도 권력기관이 고발자의 고발 동기나 행위를 자의적으로 판단, 범죄행위로 결론을 내리게 된다면 동 보호법은 크게 후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국 사람에게는 젊은이의 순수한 정열이 있다. 옳다고 믿는 일에 목숨을 거는 도덕적 용기가 나라기틀을 바로 세우는 데 생산적으로 활용되도록 다 같이 지혜를 모아야 한다.

필자소개
이계송/재미수필가, 전 세인트루이스한인회장
광주일고, 고려대정치외교학과졸업
저서:<꽃씨 뿌리는 마음으로>(에세이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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