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촌만필] 기록이 역사다
[선비촌만필] 기록이 역사다
  • 김도 한민족공동체재단 부총재
  • 승인 2019.01.15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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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 한민족공동체재단 부총재
김도 한민족공동체재단 부총재

“천재의 기억보다 바보의 기록이 좋다”는 말이 있다. 시·공을 뛰어넘어 소통할 수 있는 기록의 소중함을 일컫는 말이다. 인류가 문자를 사용하면서 인류 문명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고 한다.

인류가 구축한 지식과 정보를 문자라는 수단을 통해 기록으로 저장하고 전달할 수 있었기에 오늘날의 문명시대를 열었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의 경험이나 지식정보들을 기록하여 인류문명 진화에 기여한 수많은 기록물들, 종교의 경전이나 사마천의 사기(史記), 조선왕조실록 같은 역사서를 비롯한 각종 학술 기록물들이 오늘날 현대문명의 바탕이 됐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소통할 수 있는 수단이 기록이다. 인류 문명사는 기록의 역사이고 기록의 결과가 문명이라 할 수 있다.

어떤 기록은 당사자에게 고통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당사자에게 재앙이 됐던 기록일지라도 역사의 관점에서 보면 후일 역사적 평가의 근거가 되기에 기록의 가치를 담보해 주는 또 다른 자료가 된다.

조선 실록에 기록된 김종직의 조의제문(弔義帝文) 사초에서 비롯된 무오사화나 진시황의 분서갱유(焚書坑儒), 또 친일 매국노들의 훈작(勳爵) 조서가 해방 후 친일행각의 증거가 되고 군사 반란 주역들의 훈, 포장 기록들이 역사적 단죄의 근거가 되는 것 역시 이런 사례라 할 수 있다.

근자에 청와대 수석들의 수첩 기록이나 휴대폰 문자 기록들이 국정 농단의 증거가 되어 기록자나 관련자가 단죄되는 사태를 보면서 기록의 힘이 당사자에겐 ‘기록참화’가 되는 아이러니를 보게 된다.

윗사람의 일방적 지시를 열심히 따라 적는 풍경에서 ‘적자생존’이라는 비아냥거림이 ‘적자망신’으로 돌아왔던 것이다.

또 신념이나 사실을 자유롭게 기록할 수 없었던 시대도 있었다. 독재국가의 저항 지식인들은 기록을 남기지 않거나 있던 기록도 폐기해야 했다. 기록이 화근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일제 식민지 시대 독립운동가들 또한 같은 이유로 어떠한 기록도 남길 수 없었다. 의식 있는 식민지 지식인들은 기록으로 남긴 정보가 때에 따라 나를 해치는 칼이 될 수 있는 시대를 살아가기 위해 기록하지도, 기록하는 자를 가까이 할 수 도 없었다.

암울했던 정보, 공작정치시대에 반체제 인사나 야당 인사들은 자신의 일상은 물론 관계자들의 주소나 전화번호 등 신변정보들 조차도 기록하지 못하고 암기해야만 했던 시대도 있었다. 어떤 사실이나 경험을 기록하는 것의 위험을 알았기에 좀처럼 주변의 상황들을 기록으로 남기지 못하고 오히려 기록하는 사람을 위험인물로 의심하기까지 했던 야만의 시대를 살았던 것이다.

자신이나 자신이 속한 단체의 생존을 위해 기록을 포기해야 했던 시대!

그 시대 역사를 기록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극히 일부이고 관계자나 주변 인사들의 기억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기록문명의 암흑기였다. 하지만 기록이야 말로 인류 문명사에 축복이었다.

사마천의 사기나 우리가 자랑하는 팔만대장경,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하여 훈민정음, 승정원일기, 일성록 같은 인류 문화유산은 물론 각 문중의 자랑거리인 조선 선비들의 문집류, 서지류들은 세계 인문학자들의 경탄을 자아낸 문화유산들이다.

특히 조선은 세계 어느 왕조에서도 볼 수 없는 기록대국이자 기록문화의 정수를 보여준 나라였다. 그런 기록대국 조선왕조가 일제 식민지가 된 20세기 이후 기록 공포시대가 되고 말았지만...

이제 디지털문명이 심화되어 가면서 사이버 공간에 영상이나 음성 기록물이 범람하고 무차별적으로 유포되는 현상이 기록문화의 진보인지 퇴영인지 혼란스럽다.

나는 기록을 기피하고 생략하는 것보다는 조선의 사관처럼 객관적 정보나 사실을 투명하고 공정하게 독립적으로 기록한 조선왕조 사관(史官)들의 치열한 기록정신을 존중한다. 오늘날의 디지털 방식의 각종 기록물을 체계적으로 관리 보존하는 거시적 안목과 관심이 절실하다. 인류 문명의 진화가 기록의 축복에서 비롯됐다는 굳은 믿음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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