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승의 붓을 따라] 젊어서의 고생
[이영승의 붓을 따라] 젊어서의 고생
  • 이영승(영가경전연구회 회원)
  • 승인 2019.04.01 08: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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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글감의 소재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가 사랑이라고 한다. 나는 이보다 더 절절하고 애환이 넘치는 소재는 ‘돈’이 아닐까 싶다. 인터넷으로 돈과 관련된 속담을 검색하니 그 내용이 얼마나 방대하고 다양한지 책 한 권이 되고도 남을 정도다.

사람들의 돈에 대한 관념은 실로 놀라울 정도다. ‘돈만 있으면 귀신에게도 맷돌을 돌리게 할 수 있다’고 하였으니 말이다. 누군가가 이런 말도 했다. ‘돈은 퇴비와 같아서 쌓아두면 썩으나 가끔씩 주위에 뿌려주면 곡식을 자라게 한다.’ 이보다 더 리얼한 말이 또 있을까? 먼 옛날 당나라 시선 백거이(白居易)도 이런 말을 남겼다. 

憂方知酒聖(마음이 우울해야 술의 귀함을 알고)
貧始覺錢神(가난해져야 비로소 돈이 신과 같음을 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돈에 관한 속담은 ‘젊어서 고생은 돈 주고 사서도 한다’이다. ‘삼대(三代) 부자 없고 삼대 가난 없다’는 말에도 무척 매력을 느낀다. 모두 어려운 환경의 젊은이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나도 돈에 대한 쓰라린 체험을 했다. 6.25 전쟁 후 보릿고개 시대에 배고픔을 겪지 않은 사람 있으랴마는 나 역시 한 때 일시적인 고난의 시절이 있었다. 

우리 집은 시골에서 농사를 지었다. 5~60년대 농촌의 실상을 어찌 말로 다 표현하랴! 산간벽지의 농촌은 대개가 천수답이었다. 농기계가 개발되지 않아 인력과 소의 힘에만 의존했다. 아무리 뼈 빠지게 일해도 가뭄이 들거나 병충해가 돌면 일 년 농사는 물거품이 됐다. 

5.16 후 농촌에 기적이 일어났다. 관개시설이 확산되고 비료와 농약이 무제한 공급됐다. 종자개량도 급진전되고 농기계도 개발됐다. 보릿고개는 옛말이 됐다. 하지만 곡식농사만으로는 배고픔은 면할 수 있으나 자식을 도회지로 보내 교육시킬 수는 없었다. 이러할 즈음 농촌에 새바람이 불었다. 고추, 담배, 지황 등 특용작물이 재배되기 시작한 것이다. 해마다 농촌 살림이 획기적으로 향상됐다. 그 덕택에 나도 꿈에 그리던 중학교 모자를 쓰게 됐다. 집안 분위기는 마치 해외유학이라도 보내는 듯 했다.

그런데 2학년 때부터 연속 흉년이 들었다. 특용작물도 가격이 떨어졌다. 농사는 지을수록 손해라는 아우성이 자자했다. 많은 사람들이 농촌을 버리고 도회지로 떠났다. 나는 고등학교 진학은 엄두도 낼 수 없었다. 요즘 젊은이들이 이 절박한 상황을 말하면 알아듣기나 할까? 

우여곡절 끝에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됐다. ‘근로 장학생 제도’ 덕분이다. 성적우수자 중 가난한 사람을 선발, 학교에서 부여한 일을 하고 수업료를 면제받는 제도이다. 나는 온실에서 화초를 재배하다가 나중에는 교무실 청소를 담당했다. 온갖 고난 속에 무사히 졸업을 했다. 돌이켜보면 ‘돈을 주고도 할 수 없는 값진 체험’이었다.  

돈! 그 무엇보다 귀한 보배임에 틀림없다. 죽어가는 목숨도 살리니 말이다. 문제는 너무 집착한 나머지 돈의 노예가 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돈은 많이 버는 것보다 어떻게 쓰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하지만 그 누구도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

내 어릴 적 시대에 비하면 지금은 부자 아닌 사람이 거의 없다. 그런대도 세상은 자꾸만 각박해지고 있다. ‘인생은 짧고, 빈손으로 간다.’는 사실을 망각하기 때문일까? 나는 가진 것이 많지 않으나 마음만은 늘 부자인양 살고 있다. 젊어서 겪은 고생 덕분이 아닌가 싶다. 

필자소개
월간 수필문학으로 등단(2014)
수필문학추천작가회 이사
전 한국전력공사 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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