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코리안장학생들, 5박6일 만주독립운동사적탐방 마쳐
월드코리안장학생들, 5박6일 만주독립운동사적탐방 마쳐
  • 이종환 기자
  • 승인 2019.07.12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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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1일부터 6일까지 심양-통화-집안-백두산-연길 여정··· “선인들의 독립정신 잊지 않겠다” 다짐

월드코리안장학생들로 이뤄진 ‘2019 만주항일독립운동사적 탐방단’이 7월1일부터 6일까지 인천공항을 출발해 심양-통화-집안-백두산-연길을 도는 5박6일간의 탐방일정을 성공리에 마쳤다.

이번 행사에는 지난해 선발된 월드코리안장학생들 외에도 신흥무관학교 후신인 경희대 졸업생 사회원로들도 참여해 ‘노소’가 함께 어울리며 ‘독립정신’을 생각한 소통의 장이었다는 평가도 받았다.

7월1일 오전 8시 대한항공편으로 인천공항을 출발한 탐방단은 심양에서 대형버스로 갈아타고 5박6일간의 여정을 시작했다.

발대식은 월드코리안신문과 함께 이 행사를 공동주최한 심양의 한중교류문화원(이사장 안청락)에서 이뤄졌다. 이날 발대식에는 한중교류문화원에서 수업을 받으며 동호회 활동을 하는 중국 전통악기 연주팀과 무용팀이 특별공연무대를 만들어 가슴을 뜨겁게 했다.

광개토대왕비 앞
광개토대왕비 앞

첫날 여정은 광개토대왕비가 있는 집안이었다. 압록강가에 있는 이 도시를 찾아 건너 북한의 만포 땅을 바라보며, 압록강물에 손을 적시기도 한 탐방단은 이튿날 오전 광개토대왕비와 태왕릉, 장군총, 환도산성 등 고구려유적을 찾아 과거 역사의 향기에 젖어 들었다. 탐방단을 안내한 안상경 한중문화컨텐츠연구소장은 집안에는 1만2천개의 고분군이 있으며, 태왕릉은 광개토대왕릉이라는 설과 고국원왕릉이라는 설이 있다고 학계의 견해를 소개하기도 했다.

32명으로 이뤄진 탐방단은 이어 오후에는 이도백하로 향했다. 집안에서 통화를 거쳐 이도백하로 가는 길은 백두산 원시림을 통과하는 밀림 속의 길이었다. 주변에는 원시림과 옥수수밭이 끊임없이 펼쳐졌으며, 송화강도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이도백하에서 여장을 푼 탐방단은 탐방 3일째인 7월3일 백두산 천지에 올랐다. 이날 아침 숙소에서 만난 절강성 영파에서 온 여행팀은 전날 천지를 용케 봤다면서, 우리팀도 오늘 활짝 열린 천지를 볼 수 있기를 기원했다.

백두산 정상
백두산 정상

원시림을 뚫고 차를 바꿔 타기를 거듭해서 백두산 천지에 올랐다. 드넓은 백두산 산자락이 한눈에 조망되는 정상으로 올랐을 때 하늘은 맑았고, 천지는 활짝 열려 있었다. 백두산은 해발 2800미터에 이르는데다, 광대한 산지여서 날씨를 예측하기 어렵다. 맑은 날씨에 출발해 정상에 오른다고 해도 천지를 제대로 본다는 것을 기약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날은 모두 축복을 받은 날이었다. ‘독립정신’을 찾는 행사여서 만주에서 스러져 간 선열들이 도왔는지도 모른다.

백두산을 내려와서는 장백폭포를 보고, 연길로 향했다. 연길은 연변조선족자치주의 주도다. 탐방단을 실은 버스가 연길 시내로 접어들자 일행들은 우리말과 한자어가 함께 된 간판이 불꽃놀이 하듯 한꺼번에 불을 밝히고 있는 모습을 보고 감탄사를 연발했다.

탐방 나흘째 날은 연길에서 멀지 않는 용정의 독립유적들을 탐방하는 일정이었다. 먼저 찾아간 곳은 용정의 유래지인 용드레우물이었다. 김동수 전 용정조선족민속박물관장이 우리를 맞아 용드레우물, 일본간도영사관, 3.13만세운동 희생자묘역, 15만원탈취의거 기념탑, 주덕해 고택, 윤동주 생가 및 명동학교 등을 안내했다.

경학사
경학사

연변자치주 초대주장 주덕해의 고택에 주덕해 동상을 세우는 데 앞장섰다는 김동수 관장은 15만원탈취의거는 간도지역 항일운동이 무기구입을 통한 본격적인 무장투쟁으로 가는 것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고 소개했다.

탐방단은 봉오동대첩과 청산리대첩 현장을 찾지는 못한 채 이날 오후 통화로 향했다. 통화는 서간도 독립운동의 중심지였다. 일행은 탐방 닷새째인 7월5일 아침 경학사와 신흥무관학교를 찾았다.

유하현 삼원포 추가가에 있는 경학사는 당시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상징이다. 서울의 이회영 형제와 안동의 이상룡 김동삼 등 한국의 명문집안이 일가를 이끌고 만주로 찾아와 나라 찾기 운동에 나섰기 때문이다.

이들은 자치기관인 경학사와 부민단, 한족회 등을 차례로 조직하고, 산하에 신흥강습소를 만들었다가 신흥무관학교로 개편해 본격적인 무장독립투쟁에 뛰어들었다. 나중에 청산리전투와 봉오동전투의 주역이 되고, 만주무장독립 세력의 근간을 이룬 사람들은 이 학교 출신들이 많았다.

7인 열사능에서
7인 열사능에서

이어 경신참변 혹은 간도참변으로 희생된 ‘7인열사릉’을 찾았다. 통화지역을 안내한 전정혁 한중교류문화원 항일역사전시관장은 “청산리 봉오동대첩 후 일본의 대대적인 보복이 시작됐다”면서 “일본은 당시 항일교육을 하던 우리 학교들을 찾아 선생님들을 학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고 소개했다. 7인열사릉도 경신참변 때 살해된 당시 부강촌의 한인학교 선생님 7명의 유해를 모신 곳으로 내년에 서거 100년을 맞는다고 소개했다.

오후에는 양세봉 장군 기념비를 찾았다. 양세봉 장군 기념비는 원래 남만주 민족유일당 운동으로 성립됐던 국민부가 있던 무순 신빈현 왕청문의 조선족 학교 안에 있었는데, 학교가 폐교되면서 협피구라는 인근 산속으로 이전해 세워졌다.

전정혁 관장은 양세봉 장군 기념비는 동북3성지역 조선족동포들이 모금을 통해 성사됐다면서, 당시 상황도 소개했다. 전관장은 음악전공으로 만주지역 독립군들이 불렀던 노래를 1990년대에 채록해 책으로 만드는 업적도 남겼다. 그는 이 일을 위해 자전거를 타고 녹음기를 들고 주변을 돌다가, 나중에는 만주 전역을 자비로 헤매고 다녔던 일화들도 소개했다. 그는 차안에서 당시 수집한 독립군용진가 등을 구성진 목소리도 들려주어 큰 박수를 받기도 했다.

장군총
장군총

마지막 날인 엿새째 일정은 심양에서 시작했다. 탐방단은 일본의 만주침략의 시발점이 된 유조구(柳條溝)사건 현장에 세워진 심양 9.18역사박물관과 봉천연합군포로수용소를 방문하고, 이어 심양 코리아타운인 서탑지역과 서탑을 출국을 위해 심양의 도선공항으로 향했다.

아쉬운 게 있었다면 병자호란 등 심양과 관련된 과거 우리의 아픈 역사현장이 심양에 많았으나 시간이 없어 이를 둘러보지는 못했다는 점이었다. 이 행사에는 전 서울 중동중학교장을 지낸 최병천 본지 편집이사와 전 서울시 음악수석교사를 지낸 홍미희 본지 문화부장도 지난해에 이어 함께해 탐방단을 돕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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