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미희의 음악여행 ②] 독립군의 마음으로 채록한 숫자보 ‘조선족항일노래선집’
[홍미희의 음악여행 ②] 독립군의 마음으로 채록한 숫자보 ‘조선족항일노래선집’
  • 홍미희 기자
  • 승인 2019.08.02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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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양에 내려 압록강을 보고 고분으로 가득 찬 집안을 지나, 이도백하를 거쳐 천지를 보았다. 그리고 북간도의 윤동주를 만나며 ‘만주독립운동사적 탐방’은 어느덧 마지막에 이르렀다.

이제 이번 답사의 최종 목적지인 경학사와 신흥무관학교를 찾아가는 길이다. 이 통화지역은 전정혁 한중교류문화원 항일역사자료전시관장이 직접 안내를 했다.

전정혁 관장은 30년 전부터 만주지역을 구식 커다란 녹음기를 들고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시골길을 다니면서 독립군가를 녹음하고, 그 역사와 노래를 채록하는 작업을 하고 계신 분이다. 음악을 전공하고 계속 음악을 공부하고 싶은 그를 위해 사모님은 피아노를 사주겠다고 열심히 돈을 모았다고 한다. 그 돈으로 피아노 대신 자전거와 녹음기를 샀다는 전 관장이 직접 불러주는 독립군가는 힘이 있고 강하고 뜨거웠다. 먹을 것도 없고 힘들었던 당시 독립군들에게도 노래는 큰 힘이 되었을 것이다.

전정혁 관장은 자신이 녹취한 곡들을 직접 악보로 모두 그렸다는 말에 우리가 놀라자, 요녕민족출판사에서 낸 ‘조선족항일노래선집’을 꺼내 보였다. 그가 직접 만든 이 책에는 80여 편의 노래들이 실려 있었다. 시골의 할아버지들, 동네에서 부르던 노래들, 이런 노래들은 똑같은 노래라도 부르는 사람에 따라 곡이 달라진다. 악보를 듣고 채보할 때 정확성을 기하기 위해서는 가능한 같은 곡도 여러 사람의 노래를 녹음하고 지역에 따라 달라지는 것도 생각하면서 기록해야 한다. 하루에 몇 십리를 걷다가 찾고 싶던 노래를 만나면, 밤에 숙소에 들어 기뻐하면서 듣고 또 들었을 전 관장의 모습이 눈에 선하게 그려진다.

그가 채록한 독립군가에는 여러 종류가 있었다. 당시를 생각하면 작곡자가 있어 노래를 만드는 것을 어려웠을 것이다. 해 독립군가는 서양의 곡을 차용해 가사를 붙인 것, 일본의 군가를 차용한 것, 순수한 민요풍의 곡에 가사를 붙인 것으로 등으로 갈래를 나눌 수 있다. 신흥무관학교 교가 역시 미국 조지아행진곡에 가사를 붙인 것이다. 물론 독립군들이 그냥 만들어서 부르다가 구전되면서 전해진 독립군가도 있을 것이다.

전 관장이 건네준 악보집을 보니 오선에 그려진 악보가 아니었다. 숫자로 쓰인 악보집이었다. 이를 보면서 작년 가을 중국 샤먼의 성당에 갔을 때의 일이 떠올랐다. 일요일이어서 성당을 가려고 검색해보니 중산로에 중국 최초의 성당이 있다고 했다. 가보니 아주 예쁜 모습의 성당인데, 지금은 성당건물만 남아 관광지가 되어있고 실제 미사를 드리는 성당은 자리를 옮겼다고 한다.

옮긴 곳을 찾아가 보니 양철로 비닐하우스처럼 둥글게 생긴 집을 크게 임시로 만들어서 미사를 보고 있었다. 미사의 순서는 우리와 똑같다. 입장, 대영광송, 봉헌, 성체 등... 우리는 성가를 잘 부르지 않는데 이곳 사람들은 모두 열심히 부르는 느낌이다. 성가는 벽에 있는 커다란 스크린에 띄워서 안내해 주고 있다. 그런데 뭔가 달랐다. 가만히 보니 가사 위에 숫자가 쓰여 있었다. 숫자보다. 중국 사람들의 실용적인 모습을 또 한 번 느꼈다. 도레미파솔라시를 숫자로 써놓은 것이다.

서양악보를 읽는 방법에는 ‘고정도법’과 ‘이동도법’이 있다. ‘고정도법’은 조성과 관계없이 악보 그대로 읽는 것이다. 악보를 쉽게 읽을 수 있고 절대음감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한다. ‘이동도법’은 우리가 학교 다닐 때 배웠던 계이름으로 읽는 방법이다. 조성에 따라 달라지는 도의 위치를 찾는 것이 어렵기는 하지만 쉽게 음악의 흐름을 따라갈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기도 하다. 그런데, 숫자보는 노래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쉽게 만들어진 악보이므로 이동도법의 원리가 들어가 있는 악보일 것 같지만 원리를 보면 고정도법으로 만들어진 악보이다.

숫자보는 ‘도레미파솔라시’를 순서대로 ‘1234567’의 숫자로 표기한다. 그리고 한 옥타브 위의 음을 노래하고 싶으면 숫자 위에 점을 찍는다. 마찬가지로 한 옥타브 아래의 음을 노래하고 싶으면 숫자 아래에 점을 찍으면 된다. 사람의 목소리가 세 옥타브 이상을 넘나들 일은 없으니 점 하나로 모든 게 해결이다. 그리고 박자는 길이에 맞게 마디 안에 쓴다.

숫자보를 보니 우리나라의 악보인 정간보와 원리가 같다. 정간보는 세종대왕이 만든 동양에서 제일 오래된 ‘유량악보’이다. ‘유량악보’란 음의 길이와 높이를 나타낼 수 있는 악보라는 뜻이다. 오선보를 비롯해서 우리가 생각하는 악보는 당연히 음의 높이와 길이가 표시되어야 하지만 악보가 없던 시절 음을 표기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워 고대인들은 음악을 외우는 방법을 택했고, 이후 그림이나 문자 등 다양한 방법으로 악보를 기록하게 된다.

동요 고드름을 정간보로 그림
동요 고드름을 정간보로 그림

정간보는 정간 안에 율명 즉, 음의 이름을 써서 음의 높낮이를 표기하고 박자는 1간은 1박, 2간은 2박으로 표기한다. 이때 한 옥타브 높은음은 율명에 물수변을(氵), 한 옥타브 낮은음은 사람인(亻)변을 붙인다. 우리나라의 음이름을 ‘궁상각치우’의 오음으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우리나라 고유의 음이름은 12개로 12율명이라 하고, 그중 대표적인 다섯 개의 음이 황태중임남(黃泰中林南)이다. 정간보를 읽는 순서는 숫자보와 달라 세로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는다. 옛날 신문을 생각하면 되겠다.

숫자보로 기록된 전 관장의 독립군가집에는 내가 어릴 때 친구들과 고무줄놀이를 하면서 불렀던 노래도 들어있었다. 다음 그림은 전 관장의 책에 있는 승전가의 일부분이다. 아래의 숫자보를 보면 서양악보와 구조가 같다.

조선족항일노래선집에 실린 승전가 일부

제일 위 중앙에 제목, 왼쪽에는 곡의 조성, 박자가 적혀 있다. 작곡자가 있을 경우 오른쪽에 표기한다. 왼쪽의 C는 다장조라는 뜻이고 2/4는 말 그대로 2/4박자라는 뜻이다. 첫 음은 숫자 1, 즉 도인데 위에 점이 있으므로 한 옥타브 높은 도이다.

이렇게 그려진 숫자보를 오선악보로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악보를 보면서 힘있게 노래하는 선생의 모습에서 감동이 느껴진다.

그의 책 머리말 추천사를 보면 “십여 년간 산간벽지를 오르내리며 물 부은 전정혁 동지의 노고가 드디어 보람찬 결실을 보게 된 것이다.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고 하였다. 이어 “물론 ‘가공’은 없다. 그때, 그 것, 그 사람이 들려준 노래 그대로이다. 다른 때, 다른 곳, 다른 사람이 들은 것과 다를 수도 있다. 또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른바 ‘다르다는 것’ 여기에 그 가치가 있지 않겠는가”라고 쓰고 있다.

독립군들도 누구나 할 수 있지만 하기 어려운 길을 걸어갔던 사람들이다. 전정혁 관장 역시 누군가 해야 할 일을 묵묵히 해온 사람이다. 이렇게 진실한 생각과 마음으로 독립군가를 정리해온 그에게 존경의 마음을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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