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기고] 타임머신을 타고 유럽의 중세시대로
[해외기고] 타임머신을 타고 유럽의 중세시대로
  • 황현숙(객원 칼럼니스트)
  • 승인 2019.08.16 08: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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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Abbey Medieval Festival 참관기

지난 주말 매년 7월에 개최되는 아주 특별한 축제에 다녀왔다. 브리즈번 북쪽으로 부르스하이웨이를 한 시간 정도 달려가면 커불처(Caboolture) 지역에 아비스토우(Abbeystowe)라는 작은 마을에 미술 고고학박물관이 있다. 아비(Abbey)는 가톨릭의 대수도원을 말하며 유럽중세의 역사를 말할 때면 빠질 수 없는 상징적인 의미로 알려져 있다. 대수도원 박물관은 30년 동안(1989-2019) 1000년의 중세 역사를 알리는 ‘Abbey Medieval Festival’을 개최해왔다. 이 축제를 통해서 AD 600년에서 1600년 사이의 중동과 유럽의 역사, 문화를 체험 할 수 있다. 밤에는 학교 홀에 중세풍의 큰 연회장을 마련해서 긴 테이블에 촛불을 켜놓고 성의 군주와 귀족으로 분장한 사람들과 함께 둘러앉아서 중세식의 저녁 식사를 즐기는 프로그램도 있다.

중세는 유럽의 ​​역사를 분석하는데 가장 오래 지속된 고대, 중세, 현대 시대 중에서 격심한 변동기를 겪었던 중요한 역사시대로 기록되고 있다. 위키 백과에서 중세(中世)는 유럽 역사에서 서로마 제국이 멸망하고 게르만 민족의 대이동이 있었던 5세기부터 르네상스와 더불어 근세(1500-1800)가 시작되기까지의 5세기부터 15세기까지의 시기라고 서술하고 있다. 특히 이 시기는 종교계의 지배자인 가톨릭 교황의 권력이 강대해졌으며 유럽 국가들을 지배하던 최고 권력자인 신성 로마 황제와의 사이에 권력투쟁이 있던 시기였다. 이런 배경의 역사축제가 멀지 않은 장소에서 열리니 유럽 중세사에 관심이 많은 나의 호기심에 시동이 걸린 셈이다.

햇살이 눈부신 토요일 아침 서둘러서 과거로 가는 하루여행을 떠났다. 호주의 청명한 겨울하늘에는 뭉실한 하얀 구름이 떠 있고 고속도로에는 긴 차량 행렬들이 북쪽을 향해서 빠르게 달리고 있었다. 한 시간 정도 달리니 긴 차량의 줄이 이어지는 작은 마을로 들어섰다. 유명한 축제가 벌어지는 행사장치고는 제대로 된 안내판 하나 보이지 않아서 순간적으로 길을 잘못 들어섰나 하는 의심이 들기도 했다. 작은 도로를 계속 달려가니 눈앞에 드넓은 벌판이 나타나며 수많은 자동차가 이미 주차해 있었다.

축제가 열리는 행사장 입구의 수풀 앞에서 중세풍의 초록색 의상을 입은 한 그룹의 젊은 사람들이 악기를 연주하며 신나게 춤을 추고 있었다. 고풍스러운 긴 드레스를 입은 여성 안내원들이 입장하는 관람객들의 팔목에 파란색 밴드를 하나씩 채워주었다. 이 밴드는 천년의 시간을 거슬러 가는 타임머신이 되어서 관람객들을 유럽의 중세사회로 데려가 주었다.

거리에는 중세풍의 헐렁한 옷을 입은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걸어 다니고 있다. 허리 옆에 매단 칼, 어깨에 걸친 활, 방패를 든 기사들이 내 곁으로 지나간다. 대장간에는 시뻘겋게 달군 숯불 위에 쇠를 올려놓고 두드려대는 대장장이들이 호신용 칼을 만들고 있다. 현대시대의 옷을 입은 사람들이 오히려 시선을 끌만큼 대부분 사람이 중세풍의 치장을 하고 바쁘게 걸어 다니고 있었다. 성채로 보이는 장소에 들어가니 마상경기(Jousting)가 벌어지는 곳이다. 기사갑옷으로 완전 무장한 무사들이 말을 타고 상대를 향해서 빠른 속도로 달려가며 긴 나무막대로 서로의 가슴을 찌르는 경기로서 위험한 게임으로 보였다. 안내자는 관중들을 두 편으로 나누어서 경기에 임하는 기사들을 응원하며 함성을 지르도록 요청한다. 머리에 쓴 쇠 투구의 무게하나가 10킬로가 넘고 몸에 걸친 갑옷, 체인 장식, 발목과 팔목에 걸친 무게에 기사의 몸무게까지 합하면 족히 백 킬로는 넘을 것 같은데 말은 끄덕도 하지 않고 잘만 달린다. 무거운 갑옷을 입고 마상에서 수많은 전쟁을 치렀던 중세 기사들의 용감한 모습이 눈앞에 펼쳐져 있다.

붉은색 드레스를 입은 아름다운 왕비가 시종의 호위를 받으며 사뿐사뿐 걸어가기에 다가가서 아름답다는 찬사를 보내니 고개를 가볍게 숙이며 미소를 보낸다. 중세의 약들이 나란히 진열되어있는 약초 제조 텐트에 들어가 보았다. 고상해 보이는 한 중년여성이 당시의 약제에 대해서 친절하게 설명을 해준다. 식초에 절인 허브들이 작은 병에 담겨있고 잘게 썬 자주색 올리브도 보인다. 한때 전염병이 심하게 돌았던 중세 유럽에서 저런 종류의 약 처방만으로 사람들을 제대로 살리지 못했을 거라는 지레짐작을 하게 만든다.
 

공연자들이 먹는 중세 점심식사를 보니 단순한 햄과 빵, 구운 옥수수, 감자, 콩이 주된 메뉴이다. 서양사회의 기본적인 음식에는 현대에 이르러서도 별다른 변화가 없는 모양이다. 강한 숯불 냄새를 풍기며 매콤한 연기가 피어오르는 곳으로 가니 나체가 된 어린 통돼지를 긴 쇠 꼬치에 끼워서 빙글빙글 돌리며 굽고 있었다. 저녁 만찬에 사용될 바비큐 음식이겠지만 왠지 섬뜩한 느낌이 들어서 고개를 돌려버렸다.

둥글게 테두리를 친 잔디 위에서는 대포를 쏘며 전투가 한참 벌어지고 있다. 붉은 십자가가 새겨진 갑옷을 입은 십자군과 이슬람 국가를 의미하는 푸른 갑옷을 입은 기사들의 칼싸움이 요란하다. 칼에 찔린 기사들은 비명을 지르며 잔디밭에 쓰러지고 승리의 기세를 세운 기사들은 목청을 돋워 윈 윈(Win Win)이라고 소리 지르며 칼을 높이 치켜세운다. 십자군 전쟁을 한 편의 연극으로 보여주는 전투장면 인 것 같다.
 

십자군 전쟁은 11세기 말부터 13세기까지 8차례에 걸친 그리스도교 국가와 이슬람교 국가 간에 일어난 전쟁을 말한다. 이슬람교 세력이 그리스도의 무덤을 파괴하고 예루살렘 성지를 강탈함으로써 발생한 전쟁으로 종교전쟁이라고 불린다. 서로의 욕심과 이기심을 채우기 위해 반복되는 전쟁의 역사는 오늘날에도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는 현실이다.

대부분의 축제 일꾼들은 자원봉사자들의 노력으로 이루어진다고 한다. 그토록 많은 사람이 자신의 시간을 할애해서 이런 큰 축제를 벌이는 이유는 후손으로서 가지는 의무나 책임감 같은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을 가지게 된다. 내가 사는 현대사회로 다시 돌아가야 할 시간이 되었기에 타임머신 같은 팔목밴드를 빼버렸다. 현재는 과거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고 미래의 시간 또한 그럴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은근한 끌림의 매력을 전해주는 중세 음악을 들으며 특별했던 여행을 회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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