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지혜의 시가 있는 아침] 당신 노래에 저희 목소리를-전동균
[신지혜의 시가 있는 아침] 당신 노래에 저희 목소리를-전동균
  • 뉴욕=신지혜 시인
  • 승인 2019.11.15 14: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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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동균 시인
전동균 시인

당신 노래에 저희 목소리를


가을에 피는 벚꽃을 찾겠습니다

정면에 속지 않겠습니다
그 너머를 보겠습니다

날마다 집을 짓는
거미들과 함께

슬픔에 가득 차서 항상 기뻐하며* 살겠습니다

초록 앞에서 벌벌벌 떨며
뱀과 모래와 사람은 무엇이 다른지 계속 묻겠습니다

이제 저희는
저희 죄를 사랑하게 되었으니

산산조각 부서져 완성되는 인간의 말,
불길에 휩싸여 씨앗을 터트리는
밤의 기도를 구하겠습니다

-프란체스코여, 오늘도 빗속에서 폐지를 줍고 있는
당신 눈에 저희 눈물을
당신 노래에 저희 목소리를 담으소서

*반 고흐의 말



어둠 속에서도 횃불을 비추어 따스하게 품어주고 젖게 해주는 시가 있다면 바로 이 시다. 험난하고 외로운 세상에서도 소외된 마음을 위무하며 따뜻한 손을 꼬옥 잡아주는 이 시, 인간적인 연민과 진실한 시선이 고스란히 깃들어있는, 이 기도의 노래인 것이다.

‘가을에 피는 벚꽃을 찾겠습니다’ ‘정면에 속지 않겠습니다 / 그 너머를 보겠습니다’라고 시인은 말한다. 이미 계절이 지나도 벚꽃의 존재를 찾는다는 것, 그것은 쓸쓸하고 황망한 가을날에 벚꽃처럼 피는 소외된 존재를 찾겠다고 한다. 게다가 정면에 속지 않고 그 너머를 보겠다니! 보이는 것에 길들인 편향성, 편애성, 통속적인 인식의 차원에서 벗어나, 그 뒷면의 잘 보이지 않는 뒤안길, 삶의 고통의 안쪽, 어둑하고 저물고 낮아진 것들의 이 면을 목도하고 함께 슬픔을 나누고자 하는 시인의 따뜻한 심상은, 인간적인 연민과 구도자로서의 낮은 자세와도 다름이 없다.
 
‘날마다 집을 짓는 / 거미들과 함께’ ‘슬픔에 가득 차서 항상 기뻐하며*살겠습니다’

나름의 최선을 다하며 삶을 일구는 이들과 함께 삶의 본성적인 슬픔을 온전히 받아들이며, 더불어 기뻐하리라는 시인의 긍정적인 의지 또한 읽는 이를 자성케 한다. 그런가 하면 초록 앞에서 뱀과 모래와 사람이 무엇이 다른지 계속 물어서, 존재들의 귀하디귀한 존재임을, 궁구하며 깨닫고자 한다. 또한 ‘산산조각 부서져 완성되는 인간의 말, / 불길에 휩싸여 씨앗을 터트리는 / 밤의 기도를 구하겠습니다/ -프란체스코여, 오늘도 빗속에서 폐지를 줍고 있는 / 당신 눈에 저희 눈물을 / 당신 노래에 저희 목소리를 담으소서’

즉 빗속에서 폐지를 줍는 성 프란체스코이기도 한 그의 눈물과 노래 속에도 목소리를 담고자 하는 시인의 아름다운 기도와 사랑의 노래는 타자의 삶과 함께 비로소 공존하는, 그야말로 탁월한 가편의 기도로서 이 세상 구석구석의 아픔을 골고루 치유하며 오래도록 위무해줄 것이다.

전동균 시인은 경북 경주 출생. 중앙대 문예창작과 졸업, 중앙대 대학원 문예창작과 박사. 1986년 『소설문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오래 비어있는 길』, 『함허동천에서 서성이다』, 『거룩한 허기』, 『우리처럼 낯선』, 『당신이 없는 곳에서 당신과 함께』 등이 있다. 산문집 『나뭇잎의 말』이 있으며, 현재 동의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서라벌문학상, 백석문학상, 윤동주서시문학상, 노작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필자소개
《현대시학》으로 등단, 재외동포문학상 시부문 대상, 미주동포문학상, 미주시인문학상, 윤동주서시해외작가상 등을 수상했다. 세계 계관시인협회 U.P.L.I(United Poets Laureate International) 회원. 《뉴욕중앙일보》 《미주중앙일보》 《보스톤코리아》 《뉴욕일보》 《뉴욕코리아》 《LA코리아》 및 다수 신문에 좋은 시를 고정칼럼으로 연재했다. 시집으로 밑줄』문화예술위원회 우수도서>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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