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촌만필] 신뢰(信賴) 위기
[선비촌만필] 신뢰(信賴) 위기
  • 김도 한민족공동체재단 부총재
  • 승인 2019.12.10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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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여 년 전 정치권에 있었던 나는 새해가 되면 사회 원로들을 찾아 새해 인사를 드리고 다녔던 시절이 있었다. 원로들과 다과를 함께 하며 덕담(德談)을 나누는데 벽에 걸려 있던 「무신불립(無信不立)」이라 쓴 신년 휘호가 나의 눈길을 끌었다.

그땐 그 뜻을 잘 몰라 돌아오는 차 중에서 선배 기자에게 그 의미를 물었더니 “‘믿음이 없으면 설 수가 없다’라는 뜻이고 신용이 중요하다는 말인 것 같은데...”라며 정치 지도자가 저 휘호를 썼으니 더 큰 뜻이 있을 것 같다고 여운을 남겼다.

논어의 안연(顔淵) 편에서 정치의 요체를 묻는 자공(子貢)의 질문에 공자가 답한 것이 바로 무신불립(無信不立)이였다. 2019년을 보내면서 「무신불립」이라는 공자의 말이 70을 넘게 살아온 내 생애에 이토록 절실하게 다가오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신(信)이라는 글자는 인(人) 자에 언(言)이라는 글자가 합쳐진 것인데, 이는 사람이 하는 말의 질質을 뜻함이니 사람의 말은 믿을 수 있어야 인간관계나 사회관계가 정상적으로 작동된다는 뜻이다. 필수 요소들이 다 구비되었다고 해도 믿음이 없다면 결국 모든 것이 허사(虛事)라는 것이다.

2019년 한 해 동안 나라 안, 밖을 엄습한 온갖 사태들, 한반도를 둘러싼 4강간의 노골적인 패권경쟁에서 보여준 첨예한 갈등과 체제 불신에서 비롯된 예측할 수 없는 남북관계가 야기하고 있는 안보위기, 국내의 보수, 진보 진영의 불신에서 비롯된 이념갈등, 상대를 부정하는 정치권의 첨예한 여야 대치, 경제적 양극화 갈등, 구호로만 요란한 공정, 공평, 정의로움에 대한 불신 등 내우외환(內憂外患)이 우리사회를 불신의 늪으로 몰아가고 있다.

사회의 모든 관계에서 불신이 누적되고 국가기관이나 공인(公人)의 언행이 국민을 우롱하고 불신을 자초하는 작금의 현실 속에서 신뢰의 위기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감성적 선동이나 체계적 기만이 난무하는 ‘포퓰리즘’으로 공동체가 붕괴되고 있는 베네주엘라를 비롯한 남미 사태나 선거 때만 되면 무엇이든 다 해줄 것 같은 무책임한 선심성 공약에 현혹되는 수준이라면 신뢰의 위기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기득권자의 특권과 편법을 남용하는 불공정한 시스템에 절망하는 다수에게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비아냥이 통한다면 불신사회의 함정에서 벗어날 수 없지 않겠는가!

사회 양극단 세력이 기득권 수호를 위해 상대를 부정하며 불신을 조장하고 충돌하는 현장에서 신뢰의 위기를 체감한다. 사회적 신뢰자산이 무너진, 그래서 상대를 믿을 수 없으며 사회적 약속이 언제 뒤집힐지 예측하기 힘든 사회에서는 내일을 기약할 수도, 미래를 꿈꿀 수도 없을 것이다.

사회 구성원 모두가 각자도생(各自圖生)해야 하는 정글 법칙이 적용되는 시대라면 야만의 시대가 아닐 수 없다.

공자는 자공이 정치에 대하여 묻자

- 백성의 먹을 것을 풍족하게 하고(足食)
- 나라의 안위를 튼튼하게 하며(足兵)
- 백성들을 믿게 해야 한다(民信)

고 하면서 모든 것은 다 버릴지언정 믿음(信)만은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기적 위기의 시대! 정치가 불신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요즈음이기에 인간 사회 존립의 근본을 설파한 2500년 전 성현(聖賢)의 말씀이 이처럼 처절하게 와 닿는다. 공존공영(共存共榮)의 이상(理想)을 포기한 듯한 심각한 갈등의 현장에서 2020년 새해를 맞아야 하는 새해 사자성어는 단연 무신불립(無信不立)이다.

김도 한민족공동체재단 부총재
김도 한민족공동체재단 부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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