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송칼럼] 동생의 죽음이 깨우쳐 준 것
[이계송칼럼] 동생의 죽음이 깨우쳐 준 것
  • 이계송(재미수필가)
  • 승인 2019.12.31 07: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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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바로 아래 동생(68)이 지난달 세상을 떠났다. 부모님을 보내드렸을 때와는 많이 달랐다. 한 팔이 잘려나간 것 같았다. 황금의 나이, 아쉬움도 겹쳤지만, 동생에게 평소에 소홀히 했던 일들만 뚜렷이 다가왔다. 좀 더 잘할 걸 “인생이란 수없이 잘못을 저지르고 수없이 후회하고 참회하는 긴 여행”이다. 

우리 오남매는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다. 시골에서 땅 한 떼기 없었으니, 굶는 날이 더 많았었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형제간의 우애가 남달랐다. 죽은 동생은 유난이도 정이 많았고 의협심도 강했다. 형제들이 다른 아이들과 싸우면 대신 앞장섰다. 그 동생을 많이 사랑했던 이유다. 

나는 대학 재학 중 군대에 갔었는데, 집안 형편이 너무 힘들어 월남전까지 참전, 50여불의 참전월급으로 동생들 중고등학교 학비를 보탤 수 있었다. 대학졸업 후에는 상사직원으로 중동에 나가 동생들 대학 뒷바라지, 결혼 까지 시켰으니, 형 노릇은 톡톡히 한 셈이다. 

죽은 동생은 런던으로 유학을 보냈었다. 언어에 재능 있었던 그는 영어, 일본어, 중국어에 능통했다. 그가 사업가로 나선 이유였지만, 성공하지는 못했다. 오히려 나의 큰 재산을 날려버리기까지 했고, 그런 일 때문에 그는 나에게 늘 미안한 마음을 갖고 살았었다.
 
“형제 사이에도 돈에는 남”이다. 다행히 내 아내가 통이 커서, 형제의 인연은 끊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예전 같지 않았었다. 서로 미안한 마음과 서운한 마음들이 뒤섞였기 때문이었다. 시간이 약이었고, 우리는 다시 예전으로 돌아왔다. 나이 탓도 있었을 것이다. 

어린 시절 못지않게 여생을 서로 우애하고 살자고 다짐했는데... 한 줌의 재가 된 동생을 안고, 하룻밤을 형제들과 세운 뒤, 다음 날 용인 성당 묘지에 봉안했다. 그렇게 그는 떠났다. 가지고 있을 때는 모르다가 잃어버린 후에야 뒤늦게 깨닫는 것들, 그중에도 형제는 보석과 같은 존재다. 형제만한 친구가 어디에 있나. 친구는 안 보고 살면 그만이지만, 형제는 나의 팔과 다리다. 동생의 죽음이 애닯고 애닯은 이유다. 

사실이다. 각자의 가정을 갖게 되면 형제간 우애도 예전만 못하게 되는 게 보통이다. 내 경우도 그랬다. 내 가족이 먼저였고, 내 체면 위주로 사는 사회생활을 하게 되면서, 이렇게 저렇게 사귄 친구들이 우선이었고, 바쁘다는 핑계로 동생들에게 소홀히 했었다. 죽은 동생은 아마 나에게 많이 서운했을 것이다. 그래서 더 가슴이 더 아팠다.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이다.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할 70 나이, 이제는 남의 관혼상제 같은 일에 신경 쓰는 것도 과공비례(過恭非禮)라고 한다. 너 자신이 세상을 떠날 날이 얼마 안 남았고, 그 정도 체면관리 하고 살았으면 되었다는 말일 것이다. 이제는 구슬놀이 하던 어린 시절, 순수했던 삶의 추억을 재현하는 거다. 형제자매 그리고 가까운 혈육을 친구 삼아 그간 소홀했던 것들 챙기며 따뜻한 화롯불이 되어 살다 가자. 나눔, 용서, 격려, 배려, 위로... 같은 잔잔한 정을 이들에게 원 없이 쏟아 붓고 떠나자. 동생의 죽음이 알려주었다.

필자소개
이계송/재미수필가, 전 세인트루이스한인회장
광주일고, 고려대정치외교학과졸업
저서: <꽃씨 뿌리는 마음으로>(에세이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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