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미희의 음악여행 ⑧] 사람이 만들고 만나는 자리, 쏠리스트앙상블
[홍미희의 음악여행 ⑧] 사람이 만들고 만나는 자리, 쏠리스트앙상블
  • 홍미희 기자
  • 승인 2020.01.06 15: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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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가 지나가는 마지막이 되면 거리의 색은 달라진다. 반짝이고 화려해지며 뭔가 색다른 이벤트를 만나고 싶어진다. 한 해를 보낼 때, 또 맞이할 때 ‘송년음악회’, ‘비엔나 필하모닉의 신년음악회’처럼 고정적으로 만나는 연주회들이 있다. ‘쏠리스트앙상블’은 1984년부터 벌써 36년째 송년음악회를 연주해온 합창단이다. 당시 KBS 합창단 출신의 선후배들이 모여 첫 연주 무대를 선보인 이래 스승과 제자, 제자의 제자로 이어지며 현재에 이르고 있으며 연말 공연을 통해 만날 수 있다. 우리가 기억하는 80년대는 어둡고 암울하지만 사실 음악에 대한 이해와 애정은 지금보다 많았던 것 같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국내 유일의 프로 합창단이었던 대우합창단 역시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의 지원으로 1983년 창단되었으며, 쏠리스트앙상블 역시 과거가 훨씬 화려했다는 느낌을 받는다. 하긴 요즘은 클래식보다는 실용음악에 모든 경제의 관심이 쏠려 있으니 당연한 결과일 수도 있다.

공연 시작 시간이 되어 들어가 좌석에 앉으니 앞 좌석 뒤에 기부한 사람의 이름이 새겨진 명판이 보인다. 객석 기부를 통해 공연장의 좌석에 기부자의 이름을 새긴 명판을 부착하는 것으로 공연장의 여러 가지 기부형태 중 보통의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일반적인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예술의 전당은 2008년 오페라 극장을 개관할 때 2,171석에 대한 기부를 시작으로 그해 8월에는 콘서트홀도 객석 기부를 시작했다. 당시에는 1층 B, C, D블록 등 관객들이 선호하는 앞쪽 300석에 한했고, 한 좌석당 기부 금액은 500만 원이었다. 현재는 2층까지 규모가 확대되었고 금액은 2층의 경우 200만원이다. 기부자의 이름은 콘서트홀 객석 의자 뒤편에 새겨 20년 동안 유지하게 되는데, 이중 인기가 있는 구역은 1층 C블록이다. 각 좌석에는 기부자의 이름과 본인이 선택한 문구가 새겨져 있다.

콘서트를 통한 객석 기부 1호는 피아니스트 ‘김선욱’이다. ‘김선욱’은 피아니스트의 손과 얼굴이 가장 잘 보여 본인이 좋아하는 자리였던 1층 C블록 2열 1번을 선택해 기부했다. 그 명판에는 “피아니스트를 꿈꾸던 객석에서 또 다른 꿈을 꾸며”라는 글이 적혀 있다. 내가 앉아 있던 자리도 C블록 앞부분이었는데 ‘초허 권오춘’이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다. 알고 보니 개인으로는 가장 큰 규모인 40석을 기부했다고 한다. 이 명판에는 이름만 새겨져 있다.

앉아서 앞뒤를 둘러보니 흔치 않게 합창석이 꽉 차 있다. 그것도 어린 현역군인들로. 주변 자리에도 군인 정복을 차려입은 나이가 좀 있는 군인들과 그 가족들도 꽤 앉아 있다. 사실 일반 공연에서는 합창석까지 좌석이 찰 만큼 인기 있는 공연이 흔치 않고 또 합창석까지 자리를 판매하는 경우에는 합창이나 오케스트라처럼 지휘자를 볼 수 있는 공연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 자리는 공연하는 사람은 전혀 보이지 않고 뒤통수만 보면서 앉아 있어야 해서 싼 가격에 음악회를 보고 싶은 사람들이 주로 구매하는 좌석이기도 하다. 하지만 지휘를 공부하는 사람들에게는 지휘자의 몸짓, 심지어는 표정까지도 상세하게 볼 수 있어서 그들에게는 그야말로 최고의 좌석이라고 할 수 있다. 문득 친구가 뉴욕에 가서 싼 자리를 구하려고 그날에 줄까지 서서 표를 샀는데 막상 들어가 보니 기둥 뒷자리여서 무대는 하나도 보이지 않더라는 말에 모두가 웃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음악회는 소리만 듣는 것이 아니라 눈과 귀와 연주홀의 색까지 모든 것을 기억에 담아가는 곳이다.

공연이 시작된다. 사회자가 인사를 하고 이어 합창단원들이 입장한다. 무대에는 이미 보면대가 세워져 있고 가운데에 피아노가 놓여 있다. 일반적으로 합창에서 피아노는 지휘자의 오른쪽, 즉 소프라노나 테너의 옆으로 하여 반주자가 멜로디를 잘 들으면서 따라갈 수 있도록 배려한다. 물론 이것이 원칙은 아니고 지휘자에 따라 다르다. 오케스트라에서 첼로와 비올라의 위치를 바꾸는 지휘자들이 있는 것과 비슷하다. 그런데 이렇게 피아노가 중앙에 있는 경우는 일반적으로 중간에 솔로가 있는 경우다. 프로그램을 보니 역시 소프라노 솔로와 바이올린 솔로가 중간에 있다. 사회자는 단원들이 입장할 때 미리 박수치지 말고 파트별로 인사할 때 박수를 쳐 달라고 말한다. 보통 합창단의 경우 관객들은 본인이 아는 사람이 입장할 때 박수를 쳐 주는 경향이 있다. 이렇게 인지도, 친분에 따라 개인차가 있을 것을 감안해서인지 파트별 박수를 부탁한다. 단원들은 모두 연미복 차림으로 바리톤을 선두로 세컨드 테너, 베이스 마지막으로 퍼스트 테너가 입장했다.

오프닝 곡은 우정의 노래(Stein Song)이다. 남자들이 함께 부르는 우정의 노래는 강하고 간결하고 멋있다. 사실 최고의 성악가들을 단원으로 하는 합창단의 경우 최고의 소리가 날 것 같지만 오히려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합창은 여러 명이 하나의 소리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개인의 실력이 너무 뛰어나고 비브라토나 기교를 좋아하는 단원이 있는 경우 그 소리는 튀어나와 하모니를 망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력 있고 유명한 단원들에게 그런 소리는 내지 말라고 용기 있게 말할 수 있는 지휘자도 그렇게 많지는 않다. 그래서 유명한 성악가들을 단원으로 하는 합창단의 경우 페이 문제부터 여러 가지 이유로 오랜 기간 운영되기 어려운 경향이 있다. 그런데 쏠리스트앙상블의 경우 36년째 이어오고 있으니 실력과 단원들 간의 인간적인 유대와 자부심이 어느 정도인지를 짐작하게 한다.

이어진 합창은 ‘신자 되기 원합니다’ 등 3곡이다. 아카펠라로 연주되는 곡은 베이스 솔로가 나오면서 더욱 아름답다. 이어진 소프라노의 솔로는 남성합창 뒤에 들어서인지 소리가 빈약하게 느껴진다. 무대 위 천장에는 마이크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합창을 위해 배치하다 보니 솔로를 부를 때 소리의 균형이 잘 잡히지 않았나 보다 싶다. 다시 합창으로 연주되는 미국민요인 ‘Shenandoah(세난도)’는 널리 알려진 명곡이다. 미주리강에서 배를 저으며 노래하던 곡으로 원래 인디언 말로는 하늘의 딸이라는 뜻이 있다. 이런 생각을 하며 만들어진 팸플릿의 뒤 페이지를 보니 프로그램 해설이 있다. 그런데 이곳에는 해설이 아닌 노래의 가사가 쓰여 있다. 물론 노래에서 가사가 가장 중요한 감정을 전달하는 포인트이다. 그럼 제목을 해설이라고 쓸 것이 아니라 가사라고 쓰는 것이 맞을 것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쉬는 시간이다. 사회자가 1부가 끝난 후 로비에서 송년 인사를 하시라고 했던 기억이 떠올라 밖으로 나가보니 특별히 준비된 것은 없고 합창단원들이 나와서 지인들과 사진도 찍고 인사도 나누고 있다. 그때 바로 옆으로 어린 군인들이 지나간다. “어떻게 단체로 오셨나요?” “우리 부대가 한 일이 있어서 초대받아 오게 되었습니다.” 어떤 일인지 궁금해서 물어보니 우물쭈물하면서 대답을 못 한다. 그래서 기밀에 속하는 건지 묻자 고개를 엉성하게 끄덕이며 사라진다.

2부가 시작되면서 다시 사회자가 나와서 설명하기 시작한다. “오늘 모신 군인들은 육군 제5 보병사단의 군인들입니다. 이들은 남북공동 유해발굴, DMZ 공동개발에 참여한 열쇠부대원들입니다. 강원도 철원 비무장지대 내 화살머리고지에서 유해를 발굴한 군인들에게 위로와 사기를 증진하기 위해 초청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5 보병사단장을 소개하자 지금까지 듣던 중 가장 큰 박수 소리가 울려 퍼진다. 유해발굴~ 어린 그들이 말하기에는 참 어려운 단어였을 것이다. 그러한 마음이 느껴지니 이 나라에 태어나 이러한 경험을 하는 아이들에게 미안해진다.

바이올린 솔로가 ‘Zigeunerweisen’을 연주한다. 인지도가 높은 곡을 연주하는 것은 양날의 검과 같다. 관중의 관심도와 집중력이 높아지지만, 연주 실력이 미치지 못하는 경우 그 데미지는 더 높다. 이어진 합창은 ‘살짜기 옵서예’, 한국 남성 합창곡에서 늘 연주되는 ‘명태’이다. 그리고 ‘대장간의 합창’, ‘병사들의 합창’을 끝으로 연주회는 막을 내렸다.

연주회가 끝난 후 이어진 앵콜곡은 ‘뱃노래’이다. 앵콜곡으로 약간 무겁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이어진 곡은 ‘여자보다 귀한 것은 없네’이다. 밝으면서 많이 알려진 곡이라 모두가 박수를 치며 유쾌하게 들었다. 그러나 이 노래는 강약이 있고 가사가 재미있어서 박수를 치면서 들을 곡은 아니다. 연주회에서 박수는 지휘자가 유도할 때 쳐야 한다. 빈필의 신년음악회에서도 늘 제일 마지막에 라데츠키를 지휘자의 신호에 맞춰 박수를 치곤 한다.

이어 북이 준비되고 한복을 입은 연주자가 등장하면서 반주 역시 연탄으로 2명이 함께 연주하기 시작했다. 첫 소절이 들리자마자 박수 소리가 터져 나온다. 세 번째 곡은 ‘신아리랑’이다. 북소리는 강렬하다. 특히 연주자가 잘하면 그 울림은 크다. 북은 동물의 가죽으로 만들어져 인간의 심장 소리와 가장 비슷한 소리를 낸다. 그래서 북소리는 사람을 동요하게 하고 두근거리게 한다. 유해를 발굴한 어린 장병들이 겪었을 마음의 상처를 위로하듯, 몇십 년 동안 아무도 발을 디디지 않는 곳에 누워 있었을 유해를 위로하듯 북소리가 진혼곡처럼 강하게, 따뜻하게, 열정적으로 울린다. 마지막 앵콜곡은 ‘사랑으로’였다. 지휘자는 관객을 향해 다 같이 부르자며 박수를 유도했다. 합창단과 관객이 같이 부르는 도중 군인들이 앉아 있던 객석에서 불이 켜졌다. 하나둘 켜지는 불과 함께 부르는 ‘사랑으로’는 한 해의 마지막을 따뜻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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