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송칼럼] 미국인들이 영화 ‘기생충’에 매료된 까닭
[이계송칼럼] 미국인들이 영화 ‘기생충’에 매료된 까닭
  • 이계송(재미수필가)
  • 승인 2020.02.21 10: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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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영화가 아카데미 4관왕? 꿈같은 소식이 날아들었을 때 누구보다 재미(在美) 한인동포들은 소름 돋는 전율을 느꼈을 거다. “짜아식들! 니네들도 이제야 우릴 알아보는 거야 하하하.” 모두 그런 쾌재를 불렀으리라. 알게 모르게 ‘Chink’ ‘Chinky’ (짱개)라고 싸잡아 비하당하던 우리가 아니었던가. 

그런데 국내 동포들 가운데는 뛸 듯이 기뻐하면서도 수상 이유에 대해서는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들이 있다. 별 재미없이 보았던 영화가 도대체 무슨 이유로 그런 대상을 받았느냐는 것이다. “미국놈들이 뭐 봐준 것 아니냐”는 것. 평소 윤리 도덕의식이 깐깐한 나의 고교 친구 A교수는 이 영화가 합리성도 도덕성도 없다며 깎아내리기까지 한다. 햇빛도 들지 않은 지하에서 여러 가족이 한 집에 기생한다는 것부터 아무리 픽션이라 해도 있을 법한 스토리가 아니라는 거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기존 운전기사와 가정부를 몰아내고, 그 자리를 차지하는 사악함은 도덕성에 반한다며 이 영화가 미국의 슬럼가의 젊은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염려스럽다고 덧붙인다. 

현실상으로는 말이 될 수 없는 상황 설정, 매우 자극적인 장면을 통해서 줄거리를 전개해가는 막장드라마, 맞다. A교수의 주장처럼 비합리, 비도덕이 판을 친다. 하지만 영화는 영화일 뿐이다. 이 영화가 사회 양극화를 다루고 있다면, 굳이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다. 막장드라마가 오히려 사회체제를 공고히 하는 데 기여 한다는 패러독스 말이다. 

양극화의 현실적 진실은 무엇인가? 상류층의 부는 열심히 노력한 결과인데, 하류층의 가난은 게으름 탓인가? 시대마다, 어느 사회든 양극이 존재해 왔다. 1800년대 파리의 비참한 사회상을 그린 소설 <레미제라블>(장발장)을 떠올려본다. 지구촌 최고 부국 오늘의 미국 사회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흑인사회가 해마다 발간하는 흑인사회에 대한 보고서는 그들의 가난이 게으름 탓이 아님을 증명하고 있다. 무계획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회구조가 주요 원인이라는 거다. 백인사회가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구조적 절망 말이다. 

이 영화는 미국인들에게 그들이 애써 외면하고 감추려 했던 이런 양극화 문제를 돌아보게 하지 않았을까. 그것도 Chink들이 깜찍하게도 블랙코미디로 만들어 보여주었으니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을 거다. 돈 몇 푼 뺏기 위해 권총의 방아쇠를 아무런 죄의식 없이 당겨버리는 기층민들을 나는 미국 생활, 일상에서 보며 살았다. “(애들아) 절대 실패하지 않는 계획이 무언지 아니? 무계획이야. 왜냐 계획대로 하면 반드시 계획대로 안 되는 것이 인생이야… 우리는 뭐가 터져도 다 상관없는 거야. 사람을 죽이건 나라를 팔아먹건 상관없어…” 영화 속 주인공이 뱉는 이 말은 가난한 이들의 절망의 표현이다. 

아무튼, <기생충>을 보는 미국인들의 시각이 우리와는 차이가 있어 보인다. 많은 미국인이 한국 드라마나 영화에 매료된 이유를 알면 이해가 갈 것이다. 미국놈들인 우리 아이들이 설명한다. “미국영화는 스토리 전개가 단순하여 결말을 쉽게 예측할 수 있다. 반면, 한국 영화는 묘한 감동과 센티멘트를 자아낸다. 전개과정이 단순치 않다. 중간 정도에서 스토리를 뒤틀어 반전의 반전을 시킨다. 때문에 결말을 쉽게 예측할 수 없다. 재미있는 가장 큰 이유다. 더불어, 장면 장면마다 뛰어난 예술성이 드러나 있다고 덧붙인다. 

재미만으로 그치지 않는다. 도덕, 윤리 그리고 인간적 의리까지 감동적으로 터치한다. <기생충>의 주인공의 아들이 꿈을 꾸는 마지막 장면을 보라. 부자가 되어 아버지가 숨어 있는 집을 통째로 구입, 그를 구출하겠다는 망상, 가족윤리와 효심을 미국인들은 그런 식으로 절실하면서도 코믹하게 표현하지 못한다. 재미와 함께 진한 감동, 이 영화가 아카데미상을 받은 이유가 아닐까? 보편적인 것이야말로 가장 세계적이다.

필자소개
이계송/재미수필가, 전 세인트루이스한인회장
광주일고, 고려대정치외교학과졸업
저서: <꽃씨 뿌리는 마음으로>(에세이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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