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餘白] ‘코리안 디아스포라 예술관’ 건립에 힘 모아야
[餘白] ‘코리안 디아스포라 예술관’ 건립에 힘 모아야
  • 박대석 본지 편집위원((주)예술통신 금융부문대표)
  • 승인 2020.07.01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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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세대 작가들의 작품 망실 많아··· 예술 외교 공간으로도 기능
전 세계 재외동포 현황
전 세계 재외동포 현황

김덕영 감독이 만든 다큐멘터리 영화 <김일성의 아이들> 보았다.

한국전쟁은 10만 명의 전쟁고아를 만들었다. 남한은 아이들을 미국, 서유럽 등에 입양 보냈고, 북한은 동유럽 사회주의 나라들에 위탁 교육을 보냈다. 1950년대 초반 당시 갓 스무 살이던 제오르제타 미르초유는 루마니아로 온 북한 아이들 담당 교사였다. 미르초유는 아이들과 함께 온 북한 교사 조정호 씨와 사랑에 빠졌다.

온갖 어려움을 뚫고 57년 결혼해 딸까지 낳았지만, 남편이 북한으로 송환되면서 몇 년 안 돼 생이별해야 했다. 지금도 애타게 남편의 소식을 기다리고 있다. 오랫동안 백발이 된 루마니아 여교사의 모습이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북한 남자를 사랑한 그 여인은 우리의 재외동포일까?

재외동포란 ‘해외에 사는 우리 민족’을 말한다. 좀 더 엄밀하게 말하면 대한민국 국적을 보유하고 있는 해외이주민과 체류자인 재외국민과 대한민국 국적을 보유하고 있지 않은 한민족의 일원인 외국 국적 동포를 말한다. 따라서 「재외동포재단법」에서 정한 바로는 순정을 간직하고 있는 루마니아 여교사는 재외동포로 보지 않을 수 있으나, 필자는 재외동포라 하고 싶다.

처음 재외동포 사회가 형성되게 된 역사적 배경은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한 이주로 시작했다. 1860년대 대규모 흉년으로 간도와 연해주 등지로 월경했다. 러시아 관헌 기록에 따르면 조선인 14가구 65명에 거주권을 부여했다. 이어서 1903년 대한제국 시기 하와이 이민 약 7천여 명, 미국 서부로 약 2천여 명 등이다.

그리고 식민시대에 수탈과 징용 등으로 강제이주를 당했다. 1910년 이후 국권 상실 후 일본, 만주, 사할린으로, 그리고 스탈린에 의하여 연해 주지역 한인 약 18만 명이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를 당하면서 한국어 사용을 못 하는 등 모진 수난을 받았다.

1945년 해방 이후에는 극심한 사회 혼란과 625 한국전쟁으로 국제결혼, 전쟁고아, 해외입양 등 특수이주자들이 발생했고 여러 가지 국내외 사정으로 돌아오지 못한 미귀환동포가 많아졌다.

1962년 해외이주법 제정 이후에는 파독 광부 및 간호사, 남미 농업 이민, 월남 파견 등 국외 이주자와 현지 출생 외국 국적 2~3세대들이 늘어났고, 1991년 구소련 해체 이후에는 공산권 내 고려인 동포사회를 대한민국이 포용하기 시작했고, 현재에 이르러서는 해외 유학, 취업 등 다양한 유형의 이주자 등으로 재외동포가 늘어나 현재는 180여 개국에 749만 명의 재외동포가 있다.

한국은 GDP 기준 세계 10위권 안에 있고 무역 7위의 경제 대국이다. 재외동포들이 초기에는 가난에서 탈출하기 위하여 또는 나라를 빼앗겨 강제로 이주를 당했으나 타고난 민족의 우수성으로 근면 성실하게 활동하여 현지에서 훌륭하게 정착했다.

그 힘이 바탕이 되어 냉전 이후 세계화 물결에서 한국이 전 세계에 진출하고 자리 잡는 데 크게 이바지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재외동포(韓商)의 경제활동은 국가의 경제영토 확대 효과는 물론이고 무역의 첨병 및 전초기지 역할로 한국의 경제 대국에 누구 못지않은 공로가 크고 미래에도 그 비중은 확대될 것이다.

또한, 모국과 거주국 간의 우호증진 및 협력관계 구축으로 대한민국의 민간외교의 큰 축으로 활동하며, 세계 각지 한인사회의 문화행사는 대한민국의 효율적인 홍보 효과는 물론이고 한류 확산에 일등공신의 몫을 담당하고 있다.

루마니아 여선생님인 미르초유씨는 북한 남편을 그리는 마음을 달래고 나중 재회할 때 한글을 잊어버릴까 루마니아어로 쓴 한국어 사전도 펴냈다. 재외동포들과 그 후세들 역시 어찌 고국을 잊을 수 있을까?

한민족은 문화적으로 우수한 민족이다. 따라서 재외동포들도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그림으로써 달래며 작품활동을 한다. 그리고 자신들의 작품을 타향이 아닌 고국에 전시되기를 고대하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경기도미술관은 2018년 9월 ‘코리안 디아스포라, 이산을 넘어’라는 이름으로 중국·일본·러시아(사할린)·우즈베키스탄·카자흐스탄 등 5개국에 거주하는 재외한인 미술가 25인을 초청해 모두 110여 점의 작품이 출품된 특별전을 개최했다.

재외동포 작가들의 작품의 특징은 디아스포라 미술이 그렇듯이 조국에 대한 염원이 녹아있다. 대부분 작가가 모국에서의 전시와 연구를 기대하고 있다. 아쉬운 것은 1세대 작가들의 작품 상당수가 전문적으로 보존 및 관리가 되어 있지 않아 작품이 훼손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연구재단이 지원한 연구보고서(장윤수) ‘재미동포 미술가 정체성 연구’에 따르면 이주 초기의 1세대 작가들의 경우 민족 정체성이 여전히 강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지만, 동포 작가들이 세대를 거듭할수록 민족 정체성은 약화하고 제3의 정체성(혼종성)을 드러내고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바로 디아스포라라고 하는 민족의 탈영토화를 통해서 타자화를 지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연구자는 이러한 동포 미술가들의 혼종성을 노마드(Nomad) 정체성이라고 부른다.

따라서 재외동포 후손들의 모국에 대한 정체성을 유지하고 자긍심을 고취 시키기 위하여 대한민국에 재외동포작가들을 위한 전용 미술관 및 공연장을 포함한 가칭 ‘코리안디아스포라 예술관(Korean Diaspora Arts Center, KDAC)’ 건립이 시급한 이유이다.

KDAC은 재외동포들의 작품을 상시전시 및 보관을 하고 거주국의 전통문화를 역으로 국내에 전파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따라서 일반 미술관 및 공연장과는 달리 재외동포는 물론이고 관련 가족과 거주국 관련자들이 상시로 항상 이용하는 살아있는 문화공간이 될 것이다. 그리고 각국의 외교창구 및 중요장소로 활용이 되는 명실상부한 최고의 외교 공간으로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마침 미디어 디지털아티스트 후랭키 화백, 하정열 장군화가, 월드코리안신문 이종환 대표, 김정남 전 청와대 문화교육사회수석, 이호영 도예명인, 정유림 큐레이터, 김혜란 세계알(egg)공예협회장, 김동신 한중문예진흥원장, 이청산 민예총 이사장, 주철완 전 고베총영사, 노영혜 종이문화재단 이사장, 손석우 해외동포책보내기운동본부 이사장, 민트플렉스 임병권 대표, 최병천 전 교장, 심정희 전 교장 등이 KDAC설립을 위하여 뜻을 모아서, 2021년 설립을 목표로 8월 중 공식적인 추진위를 구성하기로 했다.

전 세계에 자리 잡은 재외동포들의 좋은 작품과 거주국의 좋은 문화가 다채롭게 감상할 수 있는 ‘코리안디아스포라 예술관”이 2021년에 멋진 곳에 멋지게 세워져 재외동포들의 향수를 달래고, 아울러 한국과 더불어 전 세계인들이 문화예술을 통하여 ‘코로나19’를 극복하는 데도 많은 도움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필자는 실무를 위한 심부름 역할에 최선을 다할 것이다.(문의 : 010-5277-2068, cosmobigstone@gmail.com)

박대석 본지 편집위원((주)예술통신 금융부문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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