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미희의 음악여행 ⑮] 근대음악의 요람, 정동길을 걷다
[홍미희의 음악여행 ⑮] 근대음악의 요람, 정동길을 걷다
  • 홍미희 기자
  • 승인 2020.08.24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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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제일교회

세종문화회관이 있는 광화문에서 역사박물관 쪽으로 걷다가 길 건너의 작은 골목으로 들어가면 그곳에서는 다른 세상이 시작된다. 그 시작은 왼쪽의 ‘프란치스코 회관’이다. 그리고 회관의 건너편에는 ‘이화여고’가 있고 그 안에는 ‘유관순 기념관’이 있다. 이화여고를 지나 조금 더 가면 ‘정동제일교회’가 있다. 교회에서 보이는 둥근 길을 따라 걸어가면 ‘광화문연가’의 작곡자 ‘이영훈’의 추모비가 있다. 그리고 ‘서울시립미술관’을 지나 ‘러시아대사관’이 있는 골목으로 들어간다. 그곳의 마지막에는 ‘배재학당’이 있다.

원칙적으로 덕수궁길은 대한문에서 국립현대미술관과 구세군 중앙회관을 거쳐 새문안로까지이고, 정동길은 정동제일교회 사거리에서 경향아트힐까지를 말한다. 덕수궁길은 덕수궁 남쪽 담장을 따라 만들어졌고, 정동길은 정동의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공식적인 구분과는 관계없이 ‘광화문’ 그리고 ‘덕수궁 돌담길’, ‘정동길’은 나에겐 하나다. 이 길에는 음악이 있고, 사람이 있고, 시간을 뛰어넘어 말을 걸어오는 것들이 있다.

이영훈 추모비

정동길 첫걸음에 마주치는 정동제일교회는 1918년 한국 최초로 파이프오르간을 설치한 곳이다. 한국 근대음악의 토대를 이룬 곳이라는 자부심이 있어, 교회는 정동음악아카데미를 설립해 일반인이나 목회를 하는 사람들이 음악을 만날 기회를 계속 만들어가고 있다. 이곳에 파이프오르간을 최초로 설치한 사람은 결혼한 몸으로 이화학당에 입학하고 교사까지 된 ‘김란사’이다. 그는 한국의 평신도대표로 참석한 미국에서 파이프오르간을 알게 되었고 모금 활동, 강연 등 많은 노력 끝에 이 악기를 한국으로 가지고 올 수 있었다. 파이프오르간은 보통 통풍실을 가지고 있는데, 지하의 통풍실은 다른 사람들이 접근하기 어려워 일제강점기 시절 독립운동 관련 문서, 독립신문, 독립선언서 등을 그곳에서 제작했다는 일화도 있다,

때로 길을 오가다 보면 뜻하지 않은 곳에서 반가운 옛 친구를 만나기도 한다. 이번 산책에서 가장 반가웠던 것은 배재학당의 바로 앞 길가에 있는 ‘배재어린이공원’에서의 만남이었다. 지금까지 다니면서도 그냥 지나쳤던 기념비에서 ‘윤희순’을 만난 것이다. ‘윤희순’은 의병장이자 독립운동가를 만들었던 여성으로 의병운동을 하던 시댁의 영향을 받아 춘천에서 활동하다가 1910년 경술국치 다음 해 만주로 이주해 활동했다. 그 후 인재 양성을 위해 노학당을 설립하고 무순으로 이주해 조선독립단 학교를 만들었다. 동북삼성 답사에서 중국의 독립운동가를 채록했던 ‘전정혁 선생’을 통해서 중국의 무순과 만주에서 만났던 윤희순의 ‘안사람 의병가’를 정동길에서 만나니 감회가 새로웠다. 이곳에는 애국군가를 작곡하며 여성의 몸으로 3대에 걸쳐 독립운동을 했던 윤희순의 기개가 느껴지는 노랫말이 적혀있다. “아무리 왜놈들이 강성한들 우리들도 뭉쳐지면 왜놈 잡기 쉬울세라, 아무리 여자인들 나라사랑 모를소냐”

윤희순 기념비와 안사람 의병가

배재학당은 정동제일교회의 선교사였던 아펜젤러가 최초로 세운 서양식 근대 교육기관이다. 고종황제는 배재학당(유용한 인재를 기르고 배우는 집)이란 교명을 하사했으며 그 학당의 동관을 역사박물관으로 이용하고 있다. 이 박물관의 가장 대표적인 유물은 다름 아닌 건물이다. 주변에 고층건물이 가득 들어차 있어도 그 품위를 잃지 않고 당당하고 고졸한 모습으로 1916년 설립 때부터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서 있다. 이제 박물관 안으로 들어가 그랜드피아노를 본다. 이 피아노는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연주용 피아노로 1911년 제작되고 1930년경 배재학당 대강당을 신축하면서 들여온 것이다. 피아노의 특성상 시간이 지나면 악기로서의 역할은 어려워지므로 지금은 연주가 불가능하지만 이 피아노의 경우 70년대까지는 소리가 나고 연주도 가능했다고 한다. 특히 배재학당의 음악교사였던 작곡자 이흥렬이나 김순남, 황병덕, 백건우, 한동일 등도 이 피아노로 연주했다. 또, 6.25 전쟁이 발발했을 때 인민군들이 이 피아노를 옮겨 가다 무거워서 도저히 가져갈 수 없어 놓아둔 것을 다시 찾았다는 일화도 있다. 역사와 함께한 이 피아노는 2011년부터 문화재로 등록되어 문화재청에서 관리하고 있다.

배재박물관

이화와 배재는 늘 가까이 있다. 연배가 있으신 분들을 만나면 입에 침을 튀기면서 그 시절의 일들을 말하기 시작한다. “그때는 말이야~~” 이화와 배재인들은 의식도 못 하면서 ‘우리’라는 단어를 쓴다. ‘우리’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연대의식.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온 선교사들은 이화와 배재를 만들었다. 그들은 근대식 교육에 큰 역할을 했고, 그들이 남긴 이화와 배재는 오랫동안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며 한국 음악교육의 중추가 되었다.

세종문화회관이 생기기 전 시민회관과 이화여고 안의 유관순홀은 최고의 음악당이었다. 물론 73년 장충동으로 간 국립극장이 있었지만 지리적인 불편함이 있어 유관순홀을 많이 사용했던 것 같다. 유관순홀을 떠올리면 생각나는 일이 있다. 중학교 때 다 같이 유관순 홀에서 연주되는 음악회를 보러 갔었다. 교장 선생님께서는 전날 우리를 모아놓고 음악회의 에티켓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다. “연주자에게 박수는 매우 중요하고 힘이 된다. 그리고 박수 중에서 가장 큰 격려는 일어나서 치는 기립박수다.” 다음 날 음악회에서 우리는 곡이 끝날 때마다 열심히 기립박수를 쳤는데 그 다음날 음악선생님이 웃으면서 말씀하셨다. 악장과 악장의 사이는 박수를 치지 않는거라고...

아펜젤러 동상

1978년 세종문화회관이 개관하고 헤르만프라이가 내한공연을 한 적이 있다. 이때도 학교에서 친구들과 같이 보러갔는데 헤르만프라이가 부른 곡은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였다. 그런데 정작 그 곡들은 전혀 생각나지 않고 마지막 앵콜곡으로 부른 ‘청산에 살리라’만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우리의 가곡을 전혀 다른 감성으로 부르는데 그것이 멋지고 아름다워서 충격을 받았다. 외국인이 우리 가곡을 부른다는 자체를 상상하기 어려웠던 시절 당시 그가 불러준 가곡은 배려의 마음이었다. 그 노래를 들으면서 느꼈던 아름다움과 자부심은 내 마음속에 남아 인생에 힘을 주는 것들 중 하나가 되었다. 그때를 생각하니 당시 선생님들이 쏟았던 마음을 새삼 깨닫는다. 무엇이든 진짜를 만나게 해 주는 것이 좋다. 그것은 교육에서든 인생에서도 마찬가지다. 진짜와의 만남은 오래오래 길게 남아 인생을 깊고 풍부하게 만들어 준다.

생의 여로에서 잡다한 것들은 시간이 흐르며 먼지처럼 떠밀려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그러나 가로등처럼 항상 그 자리에 서 있는 것들이 있다, 그것들은 그렇게 되어야 할 순간에 우리의 길을 밝혀주고 우리의 마음을 데워준다. 정동길에는 진짜가 많다. 그래서 광화문연가의 가사처럼 ‘이제 모두 세월 따라 흔적도 없이 변했지만, 언덕 밑 정동길은 아직도’ 많은 사람의 ‘가슴 깊은 곳에 남아’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연주용 그랜드 피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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