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명해외인도학자상 받은 이거룡 교수 “요가는 도(道)라는 뜻”
저명해외인도학자상 받은 이거룡 교수 “요가는 도(道)라는 뜻”
  • 이종환 기자
  • 승인 2020.10.05 15: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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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종교는 풍요에서 출발··· 기독교 흔적도 인도에 많아

중국과 한국의 선(禪)은 인도의 명상과 같은 뿌리일까? 요가와 명상은 어떻게 다를까? 부처님은 상한 돼지고기를 먹고 열반했을까? 예수님은 청년시기를 인도에서 보냈을까? 인도 정부는 해외저명 인도학자 상(賞)을 수여하는데, 한국 정부가 수여하는 해외저명 한국학자 상도 있을까?

저명 인도학자인 이거룡 선문대 교수와의 인터뷰를 앞두고 다양한 질문들이 떠올랐다. 이거룡 교수는 1995년 델리대학교 철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후 동국대 불교학부에 이어 선문대 통합의학과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요가수뜨라 해설」(2017), 「이거룡의 인도사원순례」(2009), 「전륜성왕 아쇼카」, 「아름다운 파괴」(2010) 같은 역저가 있으며, 라다크리슈난의 「인도철학사」(전 4권)와 「달라이라마의 관용」 등의 번역서도 냈다.

이거룡 교수는 지난 3월, 인도 외무부 산하 인도문화교류위원회(ICCR; Indian Council for Cultural Relations)가 선정하는 ‘2019년 저명 해외 인도 학자상(ICCR Distinguished Indologist Award 2019)’ 수상자로 선정됐다.

‘저명 해외 인도 학자상’은 인도 정부가 인도학 연구에서 학술 성과를 올린 외국인 학자에게 주는 상이다. 2015년부터 해마다 외국인 학자 1명씩을 선정해, 인도문화교류위원회 설립기념일(4월 9일)에 시상한다. 시상식은 인도 대통령궁에서 열리며, 수상자 부부를 초청해 대통령이 직접 상장과 메달을 수여해 왔다. 부상으로 2만 달러의 상금도 있다.

지금까지 독일, 중국, 일본에서 각 1명씩 수상자가 나왔으며, 이거룡 교수는 세계에서 4번째 수상자가 됐다. 이 교수에 앞서 마루이 히로시(丸井浩) 일본 동경대 명예교수가 이 상을 받았다. 그는 인도철학 연구로 권위 있는 동경대 나카무라하지메(中村元) 연구소 소장이었다. 이거룡 교수를 9월25일 서울 강남의 한 사무실에서 만났다.

“수상자로 발표가 되면서 시상식에 앞서 주한인도문화원에서 축하하는 행사가 열렸습니다. 스리프리야 랑가나탄(Sripriya Ranganathan) 주한인도대사와 소누 트리베디(Sonu Trivedi) 주한인도문화원장이 축사를 했어요. 시상식은 인도 대통령궁에서 열리는데 코로나19로 인해 연기됐는데 아직 일자가 확정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소개하는 이 교수는 “국내 일부 언론에는 주한인도문화원에서 시상식이 열린 것으로 보도되기도 했으나, 실제로는 축하행사였다”면서, “시상식은 인도에서 열린다”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현재 선문대 대학원 통합의학과에서 요가와 아유르베다라는 인도의 자연의학을 가르치고 있다.

“2011년 선문대에 통합의학 대학원이 생기면서 거기서 6년간 대학원장을 맡았습니다. 앞서 동국대 연구교수로 있다가 옮겨서 서울불교대학원 요가치료학과 교수로 있으면서 부총장을 맡았는데, 일시 총장 직무대리를 지내기도 했습니다.”

이 교수는 “동양의학은 우주론으로, 세계와 인간에 대한 이해에서 의학이 출발한다”면서, “서양의 히포크라테스도 어떤 의미에서 철학자라고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 불교의 대표적인 수행법은 간화선(看話禪)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남방불교전통의 비파사나는 부처님 당시의 불교수행법에 가까운 것으로 알려집니다. 비파사나는 관찰명상이라고도 하며, 남방불교의 전통을 잇고 있어요. 호흡관찰을 통해 들어가는 명상으로, 순간순간의 흐름에 집중합니다. 이와 달리 요가명상은 집중명상이라고 하며, 차크라 같은 몸의 주요 부위를 집중 관찰합니다. 관찰명상이나 집중명상 모두 내 의식을 어떻게 현재에 둘 것인가 하는데 중점이 놓입니다.”

명상과 요가 이야기가 나오자, 이 교수의 말이 어려워지기 시작한다. 인도 요가 경전을 해설한 이 교수의 저서도 2017년 선문대에서 펴냈다. 450페이지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의 이 책은 인도 요가의 요체를 담은 195구절을 역사적인 내용까지 담아 심도 있게 조명한 것이다.

“요가수뜨라는 요가 경(經)이라는 말입니다. 모든 요가의 모체가 되는 경전입니다. 모두 195 구절의 짧은 경구로 이뤄져 있어요.”

이렇게 말하는 이 교수는 “‘요가’는 길이라는 뜻”이라고 소개했다.

“인도의 ‘요가’는 중국의 도(道)라는 말과 뜻이 같아요. 걸어가는 길이자 진리라는 의미입니다. 힌두교의 열반에 이르는 길이 ‘요가’입니다. ‘요가수뜨라’에서는 요가를 심법으로 보고 있어요. 펄럭거리는 마음을 고요하게 하는 심법이 요가입니다.”

마음을 고요하게 하기 위해서는 숨이 골라야 하며, 이를 위해 호흡수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숨을 가늘고 균일하게 쉬는 이 호흡법은 중국에서 기공으로 발전했다. 호흡을 고르게 하기 위해서는 몸이 균형 잡혀야 하기 때문에, 몸수련 호흡수련 마음수련이 함께 연결돼 있다고 이 교수는 소개한다.

“마음 고요, 숨 고요, 몸 고요라는 이 세 가지 고요를 위해서는 사람이 사는 것 자체가 고요해야 합니다. 불살생계는 이를 위한 것입니다. 함부로 생명을 죽이지 않는 것은 수행자와 바깥세계가 척지지 않고 살기 위해서지요. 동물은 물론 식물과도 척지지 않는 불살생계를 지키면 누구도 나에게 악감정을 갖지 않게 되지요.”

이 교수는 인도 델리에서 박사과정을 했지만, 앞서 남부도시인 첸나이에서 석사 과정을 이수하기도 했다.

“11세기 인도 사상가인 라마누자 성자를 주제로 석사 과정 때부터 공부하면서 그의 철학을 이해하려면 기후 풍토도 알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남부 인도의 첸나이로 갔습니다. 라마누자 성자가 태어나 활동한 지역입니다. 2005년에는 한국연구재단 기금을 받아 한글을 가르치는 교환교수로 또 첸나이로 갔습니다. 첸나이에 유명 요가학교도 있어서 요가 연구도 했습니다.”

첸나이 인근에는 힌두교 사원들이 밀집해 있는 칸치푸람이라는 고도가 있다. 중국으로 온 달마대사가 출가했던 사원도 있는 곳이다. 이 교수는 당시 이곳을 자주 찾았다. 칸치푸람의 사원들은 이거룡의 인도사원순례’에 소개되기도 했다.

“당시 달마가 살았던 칸치푸람은 향지국이라는 나라의 수도였습니다. 인도의 북쪽은 요가, 남쪽은 명상을 중요시합니다. 기후풍토로 인해 남쪽에서는 몸으로 움직이는 수련보다는 명상을 중요시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그는 “지금의 칸치푸람에서는 중국이나 한국으로 전래된 선불교 전통을 찾아보기는 어렵다”면서 “힌두교 사원이 많은 힌두교의 성지가 북인도의 바라나시, 남인도의 칸치푸람”이라고 덧붙였다.

“종교가 다른 곳으로 전파될 때는 비슷한 사유의 틀이 있어야 합니다. 인도 불교가 중국으로 전해질 때 중국 도교 즉 노장사상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인도 불교의 명상이 중국과 한국에서 선불교로 이어지는 것이지요. 남인도의 달마대사가 중국으로 가서 선을 전했습니다. 선불교는 인도와 관계가 있어요. 선불교의 간화선은 명상중 고차적인 명상입니다. 우리는 선(Seon), 중국에서는 찬(Chan), 일본에서는 젠(Zen)이라고 하지요.”

이거룡 교수는 인도의 힌두교를 대표하는 사원을 묻는 질문에 남인도에서는 마두라이에 있는 미낙시 사원, 북인도에서는 오릿사주 주도 부바네스와르에 있는 링가라자 사원과 코나라크의 태양사원을 꼽는다.

“미낙시 사원은 남인도 두 번째 도시인 마두라이에 있어요. 나중에 인도로 유입된 아리안인이 남성 중심의 문화였다면, 인도 토착민은 여성 중심의 모계사회였어요. 미낙시 신이 이를 대표합니다. 미낙시는 물고기의 눈이라는 뜻입니다. 김해 수로왕릉 앞에 쌍어문이 있어요. 김수로왕 부인이 된 허황옥을 두고, 북인도냐 남인도냐 논란이 있지만 저는 남인도 출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남인도 첸나이에는 예수님의 열두제자의 한 사람인 도마 사도의 무덤도 있고, 그를 기념하는 성당도 있다”면서, “인도에 기독교와 관련된 유적이나 기록도 적지 않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첸나이에 갔을 때 한국에서 도마 사도 순교지에 성지 순례를 온 한국 사람들을 만나기도 했습니다. 신기하게도 지저스 크리아스트의 ‘지저스’를 타밀어로 ‘예수’라고 합니다. 우리도 예수라고 하지요. 복음서에 예수님의 어린 시절과 공생애(公生涯, 개인의 일생에서 공무나 공공사업에 종사한 기간)는 나오지만, 청년시절은 기록돼 있지 않아요. 기록이 없는 청년시기에 인도에 갔고, 예수가 히말라야 성자였다고 하는 책들도 유럽에서 많이 나왔습니다.”

이 교수는 “인도 최북단 라다크주의 주도 레에 있는 해미스사원에는 예수가 거기서 수련했다는 경전기록도 있다”고 말했다.

“그 기록에는 예수가 이샤라는 이름으로 나옵니다. 저도 라다크에 대여섯번 갔어요. 혹시 예수 흔적이 있는가 하고 찾아보기도 했지요. 하지만 기록만 있을 뿐 현지의 스님들도 그 내용을 잘 모르고 있더군요. 단 예수님의 행적을 보면 인도 전통과 닮아있어요. 인도에서는 네 단계의 삶으로 나누면서 운수행각(雲水行脚)을 마지막 단계로 봅니다. 갈릴리에서 전도한 것을 인도의 유행(遊行)으로 해석하기도 해요. 세상을 주유하는 사람을 인도에서는 ‘산야신’이라고 하는데 이 풍속을 따랐다는 거지요. 유대교 전통에는 이같은 전통이 없어요.”

그는 “인도 안에 기독교의 흔적이 상당하다”면서 “지금도 인도 인구 3%가 기독교를 믿고 있는데 반해, 불교를 믿는 사람은 1%도 안 된다”고 소개했다. 이 교수는 부처님이 돌아가신 게 상한 돼지고기 때문이라는 일설에 대해서도 “그렇다는 경전기록이 있다”고 말했다.

“돼지고기라고 해석도 할 수 있고, 맛있는 음식으로도 해석할 수 있어요. 하지만 돼지고기라고 해석하는 게 맞을 것 같아요. 남방불교에는 지금도 육식이 문제가 되지 않아요. 부처님 당시에도 잡는 것을 본 고기는 먹지 말라는 그런 것은 있으나, 일절 먹지 말라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당시 불교 수행자들의 식사는 탁발(걸식)이 기본이었다면서, “바루(그릇)에 담기는 대로 먹으라는 게 중요한 원칙이었다”고 말했다. 어떤 집에 탁발했는데, 육식 준다고 나는 육식 안 한다고 할 수는 없었다는 것이다.

그는 “지금도 스리랑카와 미얀마 불교에서는 육식을 금하지 않는다”면서, “부처님이 상한 돼지고기를 드시고 돌아가셨다고 해도 거룩함에 손상이 가는 것이 아니”라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인도에서 채식문화가 자리 잡게 된 배경에는 불교와 자이나교에서 불살생계를 강조한 것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해석했다.

“힌두교는 바라문 전통을 따르고, 불교, 자이나교는 사문 전통을 따랐습니다. 사문은 출가 수행자이지요. 불교와 자이나교는 창시자도 비슷하며 닮은 점이 많아요. 재미있는 것은 자이나교도들은 부자들이라는 점입니다. 불교처럼 불살상계를 지키니까 자이나교도들은 농사를 짓지 못했어요. 농사가 잘되는 지역에서 자이나교가 출발했는데도 불구하고, 농사를 짓다보면 부지불식간에 살생을 하게 된다고 해서, 자이나교도들은 상공업에 종사했습니다. 그게 돈이 된 거지요. 지금도 인도에서 자이나교도는 부자이고 사회적 영향력도 큽니다.”

이 교수는 “불교를 이해하려면 자이나교를 봐야 한다”면서, “아쉽게도 우리나라에서는 자이나교에 대한 연구가 취약하다”고 말했다.

“자이나교도 스님들은 걸어서만 다닙니다. 비행기도 안 타고, 배도 안 타지요. 그러다 보니 인도 안에서만 있고 해외에는 잘 소개되지 않은 거지요.”

이 교수는 델리대학에서 라마누자와 A.N. 화이트헤드의 우주론 비교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들이 각기 세계와 인간관계를 어떻게 보는지를 비교연구한 논문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신학도 공부하고, 심지어 성균관대에서 유학을 공부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그는 인도 종교와 기독교의 차이를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한다.

“종교 출발점은 삶이 고통이라는 자각입니다. 이 자각이 없으면 수행으로 이어지지 않아요. 현실에 대한 절망에서 비로소 종교 수행으로 이어집니다. 기독교는 현실적인 고통에서 출발하고, 또 박해를 받으면서 성장했어요. 하지만 부처님은 최고의 풍요를 누린 분입니다. 불교나 힌두교는 물질적인 풍요에서 오는 삶이 고통이라는 자각에서 출발합니다. ‘사람이란 그냥 이렇게 잘먹고 잘살다가 죽는 게 아니라’는 자각은 곧 현실에 대한 절망으로 이어지는 것이지요.”

그는 “인도 불교는 농사가 가장 풍부한 곳에서 일어났다”면서, “이 같은 풍요로운 토대가 상실되면서 인도에서 불교도 쇠퇴해졌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인도 종교는 최종 목적지보다는 과정에 관심을 둔다는 점이 목적지에 관심을 두는 기독교와 차이가 있다고 덧붙였다.

“명상할 때는 미래도 없고 과거, 현재도 없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미래와 과거로 의식이 연결되면 바로 저항이 생깁니다. 현재의 순간에 마음을 집중시켜야 합니다.”

그는 기독교 복음서의 상당한 내용이 천국에 대한 것으로 이뤄지지만, 인도 종교는 열반의 세계가 아니라 열반으로 가는 길 즉 ‘요가’에 관심을 집중한다고 말했다.

“고 황필호 교수가 ‘석가와 예수의 대화’라는 책을 번역해 낸 적이 있습니다. 종로서적출판사에서 냈는데, 책을 낸 후 기독교계로부터 항의전화를 많이 받았다고 했어요. 왜 ‘예수와 석가’가 아니고, ‘석가와 예수’의 대화라고 했느냐고 말이지요. 본인은 원저를 따랐고 살았던 시대를 봐도 그렇지 않냐라고 답했다고 했어요. 기독교와 불교의 차이를 말하자면, 불교는 길의 종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는 길을 상세하게 얘기하면서도, 목적지에 대해서는 관심 없어요. 그냥 도달하는 것이지요. 반면 기독교는 목적지를 중요시합니다. 복음서의 60% 이상은 천국에 대한 얘기입니다.”

이 교수는 위에서 소개한 ‘요가수뜨라’와 ‘인도사원순례’ 외에도 다양한 저서와 번역서를 냈다. ‘전륜성왕 아쇼카’ 도피안사 송암스님의 요청이 계기가 돼 저술한 책이라고 한다.

“송암스님은 불광사 광덕스님 상좌를 하신 분입니다. 아쇼카는 인도에서 세종대왕같은 분이지요. 불교를 세계화시킨 왕인데, 송암스님이 아쇼카왕을 소개하는 책을 쓰라고 해서 우리나라 처음으로 아쇼카왕 평전을 썼습니다. 이 책을 쓰기 위해 현지답사도 하고, 아쇼카왕이 벌였던 깔링가 전쟁터를 가보기도 했습니다. 이 깔링가전투에서 10만명이 죽고 15만명이 포로가 됐다고 합니다. 아쇼카왕은 이 전쟁을 치른 후 전쟁이 답이 아니다, 법과 진리로 정복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불교 세계화를 했습니다.”

이 교수가 저서 중에서도 가장 가슴에 담고 있는 책은 ‘아름다운 파괴’라는 책이다.

“한길사의 요청으로 ‘인도철학사’를 번역한 후 당시 편집부장이던 오동규씨가 거름출판사로 옮겨서 책을 만들자고 연락이 왔어요. 동국대에서 하는 교양강좌를 녹음해서 이를 풀어 책으로 내자는 요청이었습니다. 일반적인 대학 교양강좌를 정리한 책인데 한길사에서 다시 증보판으로 펴냈습니다.”

그는 “이 책이 내 명함 같은 책”이라면서 “하고 싶은 일반적인 이야기를 담았고, 인도의 깊이를 쉽게 전달한 책으로 가장 애착이 간다”고 말했다. “‘아름다운 파괴’라는 책 제목처럼 10년이 지난 올해 지난 것을 파괴하고, 다시 증보판을 내고 싶은데 내년으로 미뤄야 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인터넷신문인 ‘프레시안’과 함께 인도학교를 만들어 인문학 강연을 계속한 적이 있다. 당시 이근성 회장과 박인규 대표와의 인연으로 상당 기간 인도 관련 강연을 했다. 그는 “다시 서울에서 인도학교를 열고 싶다“면서 이야기의 주제는 ‘인도. 황홀한 죽음’이 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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