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성 항공칼럼] 하루 43시간으로 살아보기
[박철성 항공칼럼] 하루 43시간으로 살아보기
  • 박철성 항공칼럼니스트
  • 승인 2020.10.07 09: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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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하루 24시간의 길이만큼 살아가고 있다. 어떤 날은 하루가 짧게 느껴지며, 조금 더 시간이 주어졌으면 하고 소망해 보지만 우리의 시곗바늘은 어김없이 움직이며 전혀 틈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시속 900km의 비행기를 타고 하늘을 날아서 다른 곳으로 이동할 때, 마치 순간이동을 하는 것처럼 시간의 변화를 느리게 할 수 있다. 늦은 오후 비행기에 몸을 싣고 하늘에 올라가면 창문으로 쏟아지는 빛의 파노라마 속에서 펼쳐지는 황홀한 일몰의 장관을 오랫동안 만끽할 수 있기도 하다. 시속 1,380 km(적도 부근 1,680km)로 움직이는 지구의 자전 속도에 의해 지상에서는 어둠이 찾아 들지만 높은 곳에 오르면 멀리 태양이 떠 있는 모습을 볼 수가 있다. 또한 비록 비행기의 빠르기가 태양을 쫓아갈 수는 없지만 뒤따라가면서 조금이라도 일몰시간을 늦춰 볼 수는 있는 것이다. 마치 나이 들어 황혼의 시기를 더디 가게 하는 것처럼. 

우리나라는 시차의 기준점인 영국의 그리니치(GMT)에서 9시간의 차이가 있는데, 그리니치 표준시간이 오전 0시이면 우리나라는 같은 날 +9시가 된다. 그러면 가장 빠른 지역은 어디일까? 그곳은 뉴질랜드와 피지 지역으로 +12시간 빠르다. 그리고 가장 늦은 지역은 뉴질랜드 옆쪽 태평양 지역이다. 참고로 뉴욕은 그리니치시간보다 -4시간 느리고 LA는 -7시간 느리다. 우리나라와 LA를 비교하면 16시간의 시차가 난다고 할 수 있다.

여름철 에너지 절약을 위해 미국, 유럽을 비롯한 86개 국가에서 서머타임제(Summer Time)를 시행하게 되는데 이때에는 1시간을 더 추가해야 한다. 

비행기를 타고 시간의 흐름을 느리게 경험하는 대가로 하루 24시간의 길이에 맞춰진 우리의 생체시계는 불편함을 겪기도 한다. 제트 리그(Jet lag) 또는 시차 증후군은 인간의 몸에서 24시간 주기로 작동하는 생활 리듬이 장거리 여행에 따른 급작스러운 환경변화로 피로, 집중력·판단력 저하, 수면장애, 위장장애, 두통, 불안을 일으키는 것을 말한다. 

우리를 졸리게 하는 호르몬인 멜라토닌은 떠나온 곳의 저녁때에 맞춰져서 어김없이 분비되며 여행지에서 아직 바삐 움직여야 하는 시간대에 정신을 혼미하게 만든다. 

필자는 미국 애리조나 피닉스에서 잠 못 이루는 밤을 맞이한 경험이 있다. 피닉스는 해발 1,000피트(305m) 고도에 있고 미국에서도 덥기로 순위 안에 드는 도시인데 16시간의 시차가 있는 낯선 도시에서 도착한 날의 피로감과 다음 날 회의에 대한 압박감은 적응하기 쉽지 않은 부분이었던 것 같다. 

때로는 현지에서 잠 못 드는 시차 부적응의 시간을 활용해서 그동안 생각해오던 아이디어나 인생 계획에 새로운 시각으로 온갖 상상력과 사고를 불어넣을 기회로 삼아도 좋을 것이다. 

하루는 한국에서 유럽으로 갈수록 길어진다. 서쪽으로 가면 늦게까지 깨어있는 것과 같은 효과를 보이게 된다. 반대로 한국에서 동쪽인 미주 쪽으로 가면 하루가 더 일찍 시작하게 되어 피로를 느끼게 된다. 현지에서는 동쪽 여행이 힘들고 돌아와서는 서쪽 여행이 피로도가 심하다.

또한, 미국이 있는 동쪽으로 간다면 한 시간씩 늦게 일어나는 것이 좋다. 미국을 비롯한 썸머타임제를 적용하는 나라에서는 시차에서 1시간이 더 빨라져서 여행 전에 미리 확인해볼 필요도 있다.

제트 래그(Jet lag)를 최소화하려면 비행기에서 스트레칭뿐만 아니라 현지에 도착해서 가벼운 야외활동이나 수영과 같은 유산소 운동을 해주어야 한다. 그리고 적당한 식사량과 낮에는 자연광을 쬐고 저녁에는 빛을 피하는 것이 멜라토닌 호르몬 생성에 도움을 준다. 

미국의 유명한 종합병원인 메이오 클리닉(https://www.mayoclinic.org)에서는 Jet lag를 피하는 방법을 아래와 같이 제시하고 있다. 

☑ 몸이 적응할 수 있도록 미리 도착해라
☑ 여행하기 전 충분한 휴식을 해라
☑ 일어나는 시간을 도착지에 맞춰서 점진적으로 적응하도록 해라
☑ 생체시계 영향을 주는 빛의 노출을 통제하라
☑ 도착지 생활시간(식사, 수면 등)을 맞춰라
☑ 기내에서 알코올이나 카페인을 줄이고, 물을 많이 마셔라
☑ 도착지 밤에 맞춰 기내에서 수면을 취하라
 
더불어 여행을 갔다 와서도 흐트러진 생체리듬을 회복하기 위해서 충분한 휴식과 수면 관리가 중요하다. 자칫 귀국해서 여행의 피로가 쌓이고 시차 부적응의 문제가 지속하면 건강을 해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당신이 연인이나 가족과 중요한 기념일을 오랫동안 간직하고 싶으면 시간적 제한으로 평소 엄두를 못 냈던 먼 거리의 버킷리스트 여행지를 선택해보라. 아침 일찍부터 사랑하는 사람과 비행기를 타고 함께 보내는 행복한 순간들은 여행도착지에서도 또 하나의 기념일의 의미를 부여하며 뜻깊은 시간을 만들 수 있게 해준다. 

여러분이 하와이를 간다고 하면 같은 날에 19시간을 추가한 43시간의 멋지고 오래 기억에 남을 기념일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점이 사람들에게 떠나고 싶은 욕구를 채워주고 여행을 가게 하는 묘미가 아닐까 한다.

필자소개
항공칼럼니스트, 현재 아시아나항공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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