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칼럼] 2020한글날 단상
[대림칼럼] 2020한글날 단상
  • 문민 서울국제학원장
  • 승인 2020.10.12 09: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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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동아일보에 안영배 기자의 횡설수설 글이 실렸다. 제목은 ‘위기의 조선족 한글’이다. 중국 정부가 소수민족에 통용언어교육(중국어)을 강화함에 따라 중국 내에서 우리의 한글이 위축될 것이라는 취지의 글이다.

그러나 필자의 생각은 다르다. 미리 말씀드리지만, 중국 정부를 두둔할 생각은 없다. 한글을 사랑하고 한글을 아끼는 마음에 이런 글을 쓴다. 우리 말과 우리 글은 우리부터 소중히 여기고 정성 들여 사용해야 한다. 한글도 모르는 이에게 한글로 마구 상대방을 비방해서는 안 된다. 또한 제아무리 한글을 잘 안다고 해도 그 내용이 바르지 않으면 차라리 침묵하느니보다 못하다.

필자는 중국에서 태어나 소수민족어로서의 한글(조선어)를 배우며 자랐다. 성인이 되어 조선어 교사가 되고 조선족 학교에서 후배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한국에 온 후 7년 동안 대학에서 공부했다. 수십 명의 학자와 교수의 강의를 들었다. 하지만 순수 우리 한글로 강의하고 판서하는 교수님은 한 명도 보지 못했다. 교육학을 전공했지만, 수업 시간에 영어와 한국어가 뒤섞어 도대체 영어 공부를 하러 왔는지 교육학 공부를 하러 왔는지 헷갈리기도 했다. 7년 내내 나의 모국어는 한글의 본고장 한국에서 여지없이 짓밟혔다.

한글은 본디 힘없고 가난하고 글을 배우기 어려운 백성들을 위해 창제했다(1446년). 사대부, 양반들은 정작 한글을 쓰지 않았다. 조선의 대표적인 공문 격인 조선왕족실록 역시 한글로 기록되지 않았다. 최초의 한글 소설 <홍길동전>은 한글 창제 100년 후에야 허균에 의해 쓰였다. 그런 허균은 반역죄로 국문(鞠問)을 받기도 했다. 한글이 국문으로 공식 인정받은 것은 <훈민정음> 반포 450년 후 지금으로부터 불과 130년밖에 되지 않는다.

중국 내에서 한글(조선어)은 소수민족어다. 조선족의 언어이다. 조선족학교에서만 배울 수 있었다. 교육열 높은 조선족들은 동네마다 조선족학교를 세워 민족언어교육을 했다. 그러나 조선족이 동북3성 소수민족지역을 떠나면서 민족교육이 위축됐다. 동북3성을 떠난 조선족 3세, 4세들은 새로운 지역에서 주류 언어를 배우게 됐고 한글을 배울 기회는 찾기 어려웠다. 차츰 자신의 민족어조차 모르는 차세대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한편 중국이 개혁·개방하고 한중수교가 되면서 중국 주류민족들이 한글을 배우는 붐이 일기 시작했다. 중국 조선족학교에서만 이루어지던 한글 교육이 더 이상 소수민족어에 국한되지 않는다. 이제는 중국의 55개 민족이 너나없이 즐겨 배우는 외국어로서의 한글로 그 영역이 확장되고 있다. 현재 중국의 230개 대학교에 한국어과가 설치되어 있다. 학교마다 평균 90~120명을 모집하는데 얼추 집계해봐도 2만3천명 이상이다. 이는 조선족고등학교 졸업생의 10배다. 한국에 직접 와서 한글을 배우며 유학 중인 중국학생은 이보다 3배 더 많은 7만명 규모이다. 지금도 한국에 직접 와서 배우려는 중국유학생들이 줄을 잇고 있다.

요즘 나는 한국에서 외국인들에게 한글을 가르치고 있다. 주로 중국 출신 외국인이라 한글을 깨우치는데 영미권 출신들보다 빠른 것 같다. 세종대왕님이 말씀하셨듯이 우리 말과 글을 익히는데 며칠이면 가능하다. 어휘 배우기는 더 쉽다. 한글에 한자어가 70% 보니 중국인들이 한글을 익히는데,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국내 유학생 중 중국인이 반 이상 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가 아닐까 싶다.

코로나 여파로 한국 유학이 갑자기 어렵게 됐다. 작년 이맘때 한국에 왔다가 한국유학을 결심한 영호(중국 남경에 거주)는 설 연휴에 잠깐 중국에 다녀온다더니 그만 주저앉고 말았다. 입국이 어려운 것도 있지만 한국 체류 동안 잠깐 배웠던 한국어마저 자주 사용하지 않으니 상실감이 이만저만 아니다. 영호 같은 경우가 적지 않을 것이다.

한국 정부는 코로나로 한글교육이 중단된 학생과 교육기관에 세심한 배려가 여느 때보다 필요하다. 세종학당 외 다양한 한글교육 기관에 원격교육이라도 잘 할 수 있도록 아낌없는 지원이 필요하다. 코로나 이후 한국어능력시험 수험료가 1만원을 올렸다. 이는 한글 보급에 역행하는 처신이다. 다시 낮추기를 번복하면 한국어의 신뢰가 땅에 떨어질 수 있으니 다른 방책이라도 찾아야 할 것이다. 한국어능력시험 4급 이상 합격자에게는 장학금 형식으로 수험료를 환불해주는 것이 어떨까?

우리는 언제까지 남 탓만 하며 살 것인가 타국에서 우리 언어를 널리 사용해주면 좋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희망 사항이다. 중국에서 소민족어로서의 한글 위축을 한글의 위기로 확대 해석하는 것은 무리다. 외국어로서의 한글이 등장하면서 주류민족들이 즐겨 배우는 언어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대학교뿐만 아니라 국제고등학교, 직업고등학교에서도 한국어 반을 개설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한글이 중국인들의 사랑을 더 많이 받으려면 다양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단언컨대 통일어로서의 한글이 아닐까 싶다. 세종대왕이 창제한 한글이 장소와 때를 달리하여 조선어, 한국어, 북한어로 불리어도 하나임을 강조해야 한다. 동질성을 회복하고 서로 다른 환경에서 생성된 다양한 어휘들을 포용하고 즐겨 사용할 때 한글의 뿌리가 더욱 튼튼해질 것이다.

필자소개
서울대학교 교육학 석사 졸, 이주동포정책연구원(2010~2013), 법무부 사회통합프로그램 강사 (2011~현재), 어울림주말학교 교장(2014~2017), 서울국제학원 원장(2014~).
저서: 귀화시험 한 권으로 합격하기, KBS ‘거리의 만찬-대림동 블루스’ 출연(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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