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방공예이야기] 조각보
[규방공예이야기] 조각보
  • 구본숙 칼럼니스트
  • 승인 2020.12.26 0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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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크를 만들어 기부하는 비대면 봉사 활동에 참가한 바 있다. 소외계층이나 마스크 수급이 어려운 곳에 손바느질로 마스크를 만들어 기부하는 활동이다. 이제 마스크를 손쉽게 구할 수 있지만, 사각지대에서는 매일 사용하는 마스크가 여전히 큰 부담이다. 마스크를 만들며 바느질을 심취해서 하다 보니 마음도 가다듬어지고 시간도 어떻게 가는지 모를 정도로 재미있다. 바느질을 통한 활동이 개인적 흥미뿐 아니라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일에 쓰이게 되니 한땀 한땀 만들어가는 행위에서 더없는 가치를 느낀다.

마스크를 제작하는 봉사 활동을 해 보니 바느질 솜씨는 모두 제각각이었다. 아주 섬세하게 바느질을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삐뚤삐뚤 땀이 고르지 못한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타인을 위해 시간을 쏟고 열정과 정성을 담아 봉사하는 아름다운 마음은 모두가 동일했다. 저 먼 옛날에는 직접 바느질을 해서 옷을 만들어 입거나 생활용품을 만들었으니 삶에서 바느질은 실용적이고 유용한 기술임에 틀림없었다. 솜씨가 없는 사람도 옷은 꼭 입어야 하니 삵 바느질도 이러한 연유에서 생기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의상 제작을 비롯한 조각보, 규방 공예 등의 형태로 바느질은 예로부터 우리나라의 전통문화였다. 서양에도 이와 유사한 ‘퀼트’라는 바느질이 있다. 바느질로 각종 실생활에 필요한 생활소품이나 옷을 만든다는 것, 그리고 바느질의 기법이나 과정이 한국의 조각보를 비롯한 한국의 전통 바느질과 비슷하다. 옷을 만들고 남은 자투리 원단을 이용한 점도 서양의 퀼트와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바느질의 소재는 조각보의 경우 모시나 비단, 삼베 등 한국적인 원단을 사용한다. 반면 퀼트는 면 소재를 주로 이용하며 누비처럼 솜을 덧대기도 하고 지퍼나 단추 등 각종 부자재를 쓰기도 한다. 퀼트가 하나의 작품에 한 도안으로 계획하에 정확하게 작품을 만드는 것이라면 조각보는 도안이 없이 소유한 자투리 원단으로 비 계획적이며 창의적으로 만든다. 이에 조각보의 문양과 색채는 매우 자유로우며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난다.

소유한 한정적인 자투리 원단으로 바느질을 한다는 것은 작품의 결과물에서 개인차가 크다. 도안이 없이 개인적으로 작품을 구성한다는 점은 고차원적인 예술성을 요한다. 네덜란드의 신조형주의 화가 피에트 몬드리안(Piet Mondrian)의 작품인 ‘브로드웨이 부기우기’, ‘빨강, 파랑, 노랑의 구성’에서 조각보의 기하학적 형태가 느껴지는 이유도 우리 선조들이 현대에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모던하고 섬세한 감각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퀼트는 하나의 작품에 한가지 용도로 사용되지만, 한국의 바느질 작품은 다용도로 사용된다는 것이 대표적인 차이점이다. 조각보는 밥상을 덮는 상보, 햇빛을 가리는 가리개의 역할 등 다양하게 사용되었다. 주머니 종류도 마찬가지이다. 약낭(약을 담는 주머니)이나 향낭(향을 담는 주머니)이 같은 기법으로 만들어지지만 사용하는 용도에 따라 여러모로 활용되었다는 점이 상당한 지혜로움이 깃든 듯하다.

또한, 용도를 다한 것은 바느질을 뜯어내 또 다른 것을 만들 수 있도록 했다. 이에 한국의 바느질은 뒤집을 때 모서리를 사선으로 잘라내지 않는다. 그 모서리를 직각으로 접거나 다림질을 해서 뒤집으면 모서리를 잘라내지 않아도 뒤집을 때 잘 접어지며 모서리의 튼튼한 각이 살아나는 특징이 있다.

다른 것을 만들기 위해 뜯어냈을 경우 잘리지 않고 원단이 그대로 있어야 새로운 작품을 제작할 수 있다. 마스크를 만드는 특별한 기회에 고즈넉이 바느질을 하며 선조들의 삶을 되짚어 보니 지혜로움과 예술적 감각이 뛰어났음을 비로소 깨닫는다. 과거 물자가 귀한 시절, 원단을 알뜰히 활용하며 자투리 원단마저 버리지 않고 하나하나 이어나가 조화롭고 질서정연한 조각보를 만드는 과정에서 숭고함과 살뜰함이 담긴 경이로운 아름다움을 느껴본다.

필자소개
2018 계간문예 수필부문 등단.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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