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로②] 아프리카 난민과 커피로 첫인사를 나누다- 문준석 ‘내일의 커피’ 대표
[아프로②] 아프리카 난민과 커피로 첫인사를 나누다- 문준석 ‘내일의 커피’ 대표
  • 문준석 ‘내일의 커피’ 대표
  • 승인 2021.05.06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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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PRO’는 국내 아프리카 전문가들의 모임이다. 외교부 한·아프리카재단에서는 이들의 활동을 소개한 책을 두 권 펴냈다. ‘Af-PRO, 한국과 아프리카를 잇다’는 제목의 단행본들이다. 한·아프리카재단의 허락을 받아, 이 책의 내용을 연재한다.[편집자주]

카페 ‘내일의 커피’는 언뜻 보기에 여느 카페와 다르지 않다. 노란 문이 반기는 공간 가득 감미로운 커피 향이 감돈다. 바리스타의 피부색이 짙지만, 이미 우리 사회에 다양한 국가의 외국인들이 많이 들어와 있는 만큼 크게 놀랍지 않다. 그런데 그들은 뜻밖에도 아프리카 출신의 난민들이다.

문준석 대표는 봉사 활동하며 연을 맺은 아프리카 난민들에게 보다 나은 일자리를 안기고 싶었다. 그리고 커피가 한국인과 아프리카 난민의 어색한 첫 만남을 부드럽게 이으리라 믿었다. 그리하여 바리스타를 육성하는 직업학교 겸 카페인 내일의 커피를 열었다. 내일의 커피는 공간은 작지만, ‘커피는 쓰다’는 편견과 함께 난민을 향한 선입견을 유연하게 뛰어넘는 큰 공간이다.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다

나도 내 인생이 이리 흐를지 그때는 미처 몰랐다. 10여 년 전 교회가 주관하는 봉사 활동에서 팀장직을 맡으며 삶의 윤곽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국내에 거주하는 난민이 우리 사회에 잘 적응하도록 돕는 일이었다. 한 달에 한 번 진행되는 봉사활동이었기에 의욕만큼 거창한 도움을 주기는 힘들었다.

어린 난민 2세들을 데리고 놀이동산, 찜질방, 수영장 등을 가는 것이 주된 활동이었다. 그러나 아이의 부모들은, 한국에서 태어나 모국어가 한국어인 아이들이 오히려 다양한 문화체험, 야외활동들을 통해 한국사람들, 한국문화와 가까워져 좋다고 했다. 부모들은 의사소통이 아직 서툴고 생계를 우선 챙기다 보니 아이들을 데리고 자유롭게 놀러 다니지 못하는 형편이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한 달에 한 번 그 역할을 대신하기로 했던 것이다.

그런데 만남을 거듭할수록 도리어 그들에게 위로를 받는 내 자신을 발견했다. 그들은 어려운 환경에도 불구하고 축하할 일이 생기면 멋들어지게 치장하고 근사한 선물을 챙겨 이웃을 찾았다. 또 축하받는 이웃은 손님들이 넉넉하게 먹을 수 있도록 음식을 푸짐하게 준비했다. 그들과 어울리며 나는 지난 한 달간 직장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풀었다. 정말 그들 사이에 끼어 있으면 유쾌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내가 가정 방문하여 친분을 쌓은 난민들은 모두 아프리카 국가 출신이었다. 그들은 우리 모두가 그렇듯 각자 자신만의 매력과 재능을 지니고 있었다. 내가 만난 친구들은 특히 손재주가 뛰어났다. 음식을 곧잘 만들고 빵도 잘 구웠다. 그들의 손길이 닿은 수공예품과 미술품은 전에 본 적 없는 독특한 색채와 형태를 자아냈다.

조력자와 수혜자로 맺은 관계가 친구 사이로 발전할수록 그들의 타고난 재능과 색채를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졌다. 그 생각이 영글 즈음 교회에서 바자회를 연다는 소식을 접했다. 나는 바자회에 난민들을 초대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그린 그림이 새겨진 머그컵과 직접 만든 음식을 팔고, 전통춤과 노래공연도 작게나마 준비해주었다. 반응은 뜨거웠다. 음식과 머그컵의 인기가 높았을 뿐 아니라 바자회를 찾은 사람들의 태도 또한 매우 우호적이었다.

바자회를 성황리에 마무리하며 우리 사회가 난민을 향해 편견을 가진 이유가 어쩌면 그들을 일상에서 만나보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아프리카 난민의 재능이 사람들의 선입견을 어느 정도 해소해줄 수 있겠다는 확신이 생겼다. 그 확신을 새로운 형태의 사업으로 연결해 난민이 이 사회에서 취할 수 있는 일자리의 폭을 넓히고 우리 사회와 교류할 수 있는 기회를 확장하고 싶었다.

생각을 행동으로, 가치를 현실로

처음 고려한 사업 아이템은 식당이었다. 내가 만난 한국 사람들 대부분이 졸로프 라이스(Jollof rice)와 같은 아프리카 지역의 음식을 입맛에 맞아 했기 때문이었다. 식당이 가장 안전한 선택일 듯싶었다. 그런데 마음에 걸리는 점이 있었다. 난민들이 주로 주방 안에서만 일한다면 한국 사람들과 직접 마주하며 편견을 깰 기회를 충분히 가질지 의문이 들었다. 그런 측면에서 식당은 불합격이었다.

한편, 카페는 가능성이 엿보였다. 현대 사회에서 카페는 가장 문턱이 낮은 공간이자 음악, 음식, 인테리어, 디자인 등 일반 소비자와 다양한 접점을 만들어갈 수 있는 문화 플랫폼 역할을 한다. 난민과 함께 카페를 운영한다면 커피를 매개로 그들이 우리나라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얼굴을 트고 호의적인 분위기 속에서 자신들의 제과 제빵, 디자인 솜씨 등을 선보일 수 있으리라.

한편 아프리카 대륙, 특히 동부아프리카 지역은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커피 산지임에도 아이러니하게 커피를 소비하는 문화가 발달하지 못했다. 양질의 신선한 커피 원두를 대부분 수출하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아프리카 국가 출신의 바리스타가 내리는 아프리카 스페셜티 커피’라는 콘셉트는 그 자체로 충분히 의미를 지닌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사업을 좋은 취지로만 전개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회사를 다니며 바리스타 교육 과정을 찬찬히 밟았다. 또 생애 첫 창업이 기존에 사례가 없는 분야에 속한 만큼 최대한 비슷한 환경을 찾아 미리 경험할 필요성을 느꼈다. 하지만 국내에 난민이 중심이 되어 운영하는 카페나 레스토랑은 전무했다. 차선책으로 새터민이 운영하는 카페에서 매니저로 일했다. 전혀 다른 문화권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과 일하며 문화의 차이로 야기될 수 있는 문제들을 어느 정도 미리 예상하고 대비할 수 있었다.

창업할 각오가 서자 비로소 이름을 짓고 사업의 윤곽을 그렸다.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의 메뉴인 ‘오늘의 커피’에서 착상하되, 오늘 마시는 커피 한잔이 우리 사회와 난민의 내일을 밝히는 데 일조했으면 하는 마음을 담아 ‘내일의 커피’로 이름을 지었다. 또 일반 소비자의 눈에 보통의 카페처럼 보이되, 바리스타를 꿈꾸는 아프리카 난민들에게 카페에서 일하며 커피와 서비스, 한국어를 배울 기회를 제공하는 직업학교의 기능을 겸한다는 큰 그림을 그렸다.

2년여의 교육 과정을 마치고 난민 바리스타가 일정한 실력과 마음의 준비를 갖추면 다른 곳에 취업할 수 있도록 장려하는 일이 궁극적 목표였다. 사업의 윤곽이 어느 정도 잡혀갈 무렵 서울시 사회적경제 아이디어대회 ‘위키서울’의 지원 사업에 합격하여 시험 삼아 팝업 카페를 운영할 기회를 얻었다. 단 하루의 기회였지만 의의가 컸다.

내가 구상해온 사업에 다른 사람들도 똑같이 매력을 느끼는지, 뜻에 선뜻 동참해줄지, 우리가 준비한 커피와 빵에 만족할지, 난민을 향한 거부감은 없을지를 확인할 수 있는 귀한 자리였기 때문이다. 반응은 예상보다 훨씬 더 긍정적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 난민이 함께하고 있으며, 그들이 다재다능한 존재라는 사실에 놀라움을 표했다. 더불어 훗날 카페가 문을 열면 꼭 방문하기를 희망하며 그날 전시한 샘플 상품을 구매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내일의 커피, 내일을 위한 작지만 큰 시작

팝업 카페에서 일군 성과에 힘을 얻어 비로소 2014년 10월 카페 문을 열었다. 오랫동안 교류해 온 콩고민주공화국 출신의 친구와 피난처를 통해 소개받은 카메룬 친구가 합류했다. 아프리카 친구들이 그린 그림을 바탕으로 소품을 만들고 공간을 채웠다. 커피도 아프리카 스페셜티 원두 위주로 갖췄다. 그렇다고 아프리카 난민이 운영하는 카페라는 사실을 전시하지는 않았다. 내일의 커피의 주된 취지는 난민과 아프리카인을 향한 편견을 깨는 일이었다.

만약 ‘난민 카페’라는 사실을 전면에 내세울 경우 일반 소비자들이 오히려 선입견을 가지고 다가올 확률이 높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반대로 아무 정보 없이 가볍게 커피 한잔 마시며 잠시 한 공간을 공유하는 일이 난민을 편견 없이 받아들이는 방법이라고 여겼다. 실제로 대부분의 손님이 밝은 카페 분위기 혹은 커피 향에 끌려 들어왔다가 뒤늦게 바리스타들이 난민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놀라워했다.

그리고 놀라움은 자연스럽게 호기심으로 발전했다. 카페에서 손님과 바리스타가 대화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런데 바리스타가 난민이라는 사실을 인지한 손님 대부분이 먼저 다가가 말을 걸었다. 가끔은 그들의 질문 세례에 바리스타들이 행복한 비명을 지를 정도였다. 나는 지난 5년간 카페를 운영하며 난민 바리스타와 손님들이 막역한 친구가 되는 광경을 자주 목격했다. 카메룬 친구가 결혼할 때 손님 십여 명이 식장을 찾아 축하한 적도 있었다.

한국인 손님들이 편견을 깨고 난민을 자신들의 삶에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가 하면, 반대로 난민 친구들도 한국인을 향한 편견과 불신에서 벗어나는 놀라운 광경을 목도하기도 했다. 난민 바리스타들은 카페에서 자신을 향해 웃음 짓는 한국인들을 오히려 낯설어 했다. 나는 양측이 서로를 향해 품어온 그릇된 인식을 버리고 진정한 이웃으로 한 발짝 다가가는 모습을 보며 마음 한 켠이 뭉클했다. 또 스스로 우리나라 사람들을 다시 보는 기회를 갖기도 했다.

의미도 맛도 모두 담았습니다

아프리카산 원두는 그곳의 햇살과 토양, 바람을 담아 독특한 맛과 향을 지닌다. 특히 고산 지대에서 자란 커피 열매를 사람이 일일이 손으로 딴 스페셜티 원두는 밀도와 향이 훌륭하다. 특유의 풍미를 가리지 않도록 원두를 세심하게 볶아 내리면 쓴맛이나 신맛 없이 향이 좋은 커피를 취할 수 있다. 이때 은은한 단맛이 나는 커피도 있다. 우리는 강배전한 원두(dark-roasted bean)를 에스프레소로 내려 쓴맛이 도드라지는 커피에 익숙하다.

나는 커피가 꼭 쓰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알리고자 핸드드립 메뉴를 ‘달큰한 드립’, ‘향이 풍부한 드립’, 그리고 ‘쌉쌀한 드립’으로 나누어 개발했다. 또 쓰지 않은 커피를 난민 바리스타가 직접 내림으로써 난민의 인생도 쓰지 않기를 바라는 우리의 의지를 매일 실천에 옮기는 중이다. 한편, 난민 바리스타들이 내일의 커피에서 일하며 신선한 커피의 맛과 향을 알아가는 일 또한 보람 있다.

물론 작은 공간에서 전혀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이 부딪히다 보니 때로는 좌충우돌한다. 하지만 대부분 난민 친구들이 높임말을 쓰는 데 익숙하지 않아 생기는 소소한 해프닝에 불과하다. 그보다 난민 신청자의 경우 활동 허가서를 매번 갱신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더 크다. 그럼에도 지난 5년간 카페를 찾은 사람들이 난민을 새로 인식하고 친분을 쌓는 모습을 보며 나는 내 판단이 틀리지 않았다는 사실에 고무된다.

무엇보다도 이곳을 거쳐 간 바리스타들이 다른 카페나 레스토랑에 취직하여 우리 사회에 단단히 뿌리를 내린 모습을 볼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 한편, 지금껏 내일의 커피에서 일한 바리스타 중 절반이 난민으로 인정받았다. 이는 약 2%에 불과한 국내 난민 인정률을 감안할 때 놀라운 숫자다. 그들의 말에 따르면 재판 과정에서 이곳에서 바리스타로 일한다는 사실을 적극 호소했다고. 그것이 좋게 작용했는지 알 수는 없으나 나로서는 분명 반길 만한 결과다.

인식과 행동의 변화가 필요한 때

우리는 난민을 일상보다 대중 매체에서 더 자주 만난다. 기아, 가난, 전쟁. 대중 매체가 난민을 주로 표현하는 문법이다. 하지만 이 세 단어로 그들을 모두 설명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설상가상으로 최근에는 우리 사회를 위협하는 존재라는 인식이 덧씌워지기도 했다. 하지만 난민들은 우리 사회에 잠시 머물다가 떠나는 존재가 아니다. 자국으로 돌아갈 수 있으면 좋겠지만 상황이 호전되지 않는 한 여생을 우리 사회에서 함께해야 한다.

그렇다면 현실은 어떠한가. 국내의 난민 인정률은 턱없이 낮으며, 바늘구멍 같은 심사 과정을 통과하여 난민으로 인정받아도 법적으로 취약 계층으로 보호받고 합법적인 일을 구할 기회를 얻지 못한다. 또한 지금처럼 난민에 대해 막연하게 생각하고 예측하는 사회분위기는 더 큰 충돌과 사회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나는 아프리카 난민이 지닌 재능과 특유의 밝은 기운이 우리 사회를 발전시키는 양분으로 활용될 길이 분명 있다고 확신한다. 또 그러기 위해서는 사회 전반의 인식이 변화해야 하며, 이때 정부와 언론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여긴다. 전 세계가 다양성을 추구하는 작금의 시대에 난민을 인정하고 이웃으로 끌어안는 것만큼 우리 사회가 다양성과 확장성을 두루 갖추는 일이 또 있을까. 내일의 커피의 느린 보폭이 그 길을 잇는 작은 족적을 남길 수 있도록 오늘도 우리는 희망을 달이고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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