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칼럼] 범 내려온다
[대림칼럼] 범 내려온다
  • 곽미란 작가(재한동포문인협회 소설분과부분과장)
  • 승인 2021.07.13 11: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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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 내려온다
범이 내려온다
장림 깊은 골로 대한 짐승이 내려온다
몸은 얼숭덜숭 꼬리는 잔뜩 한 발이 넘고
누에머리 흔들며 전동같은 앞다리 동아같은 뒷발로 양 귀 찌어지고
쇠낫같은 발톱으로 잔디뿌리 왕모래를 촤르르르르 흩치며
주홍 입 쩍 벌리고 ‘워리렁’허는 소리 하늘이 무너지고
......

국악 퓨전밴드인 이날치가 부른 노래 ‘범 내려온다’의 가사다. 으르릉거리는 범의 모습을 눈앞에서 보는 듯 생동하게 묘사한 가사와 리듬감 있는 곡 덕분에 들으면 어깨가 들썩여질 정도로 흥이 난다. 특히 후렴구에서 반복되는 “범 내려온다”는 저도 모르게 따라서 흥얼거리게 되는 중독성이 있다. 이 노래는 판소리 ‘수궁가’의 가사를 따온 것이라고 한다.

각설하고, 옛날부터 호랑이는 백수(百兽)의 제왕으로 호랑이가 나타나면 뭇짐승들은 물론 산천초목이 벌벌 떨 정도라고 했으니 호랑이의 위엄이야 더 말해 무엇하랴, 그래서인지 호랑이에 대한 속담도 유독 많다. “호랑이 담배 필 적”,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된다”,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호랑이 새끼를 잡는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긴다”···

“어비(범) 온다”고 겁을 주면 울던 아이도 울음을 뚝 그쳤다지 않는가. 범은 용맹, 권세, 두려움을 표상한다. 내가 소학교 다니던 시절에 위에서 ‘범’이 내려오면 학교에는 비상이 걸렸다. 교실청소, 학교 운동장청소, 변소 청소부터 해서 벽보란을 아름답게 꾸미고 그것도 모자라 학생들은 집에서 키우는 화분을 전부 들고 와 교실 창턱에 모셔야 했다. 전에 내가 다녔던 회사에도 호랑이가 있었다. 바로 여장부 스타일의 부사장님이다. 부사장님이 한 번 떴다 하면 다들 간이 콩알만 해지고 사무실 공기는 숨 막힐 정도로 팽팽했다. 눈빛 하나, 말 한마디로 모든 걸 압도하는 카리스마의 소유자였다.

근래에는 신종바이러스 코로나라는 무서운 범이 내려와 인간세상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놓았다. 비행기를 타고 새처럼 가볍게 국경을 넘나들던 사람들은 발이 묶이었고 마스크 없이는 감히 외출할 수 없게 됐다. WHO 사무총장은 2021년 7월7일 기준, 전 세계 코로나19 사망자가 400만 명을 넘었다며 “비극적 이정표”라고 논평했다. 한국 또한 이틀 연속 코로나 확진자 수가 1300명을 넘어서며 ‘4차 대유행’이 본격화됐다. 정부는 오는 12일부터 수도권 사회적 거리두기를 방역 최고 단계인 4단계로 격상하는 등 조치를 취하고 있다.

매일 마다 코로나 신규 확진자와 사망자 통계수치를 확인하는 일은 일상이 된 지 오라다. 코로나는 우리의 일상에 깊이 침투했다. 내 주변의 지인들과 가족들 중에도 예기치 못하게 코로나19 확진자와 밀접접촉자가 되어 핵산검사를 받고 집에서 2주일 격리를 감당해야 하는 사람들이 비일비재했다. 여의치 않게 밀접접촉자가 된 조카 애는 격리 기간 내내 화장실 갈 때를 제외하곤 자기 방에 갇혀서 살았다. 창살 없는 감옥생활이었다. 아직은 엄마 품이 그립다는 조카 애는 매일 밤잠을 이룰 수 없었다며 2주의 격리를 마치고 나서 두 번 다시 경험해보고 싶지 않은 끔찍한 일이라고 회상했다.

백신 접종이 이미 시작됐으나 변이 바이러스는 훨씬 더 강력한 위력으로 공격해오고 있고 백신공급을 미처 받지 못한 아프리카와 아시아, 중남미 일부 지역에서는 죽음의 물결이 일고 있다고 WHO 사무총장은 우려했다. 이제 우리 모두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겪고 있으며 다시는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런데 유명한 예언가의 말에 의하면 코로나보다 더 무서운 범이 있다고 한다. 그건 바로 기상 이변과 같은 ‘기후 변화 문제’다. 그‘동안 인류의 무심함과 이기심으로 빚어진 환경오염과 환경파괴로 인한 결과다.

2021년 7월4일,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에서는 719명이 폭염 때문에 숨졌고, 240건 이상의 산불이 발생했다. 미국 북서부 오리건주와 위싱턴주도 폭염으로 인한 사망자가 각각 95명과 30여명 발생했으며 일부 지역의 도로가 녹는 현상까지 발생했다.

기온이 상승하게 되면 겨울철 산이 건조해져 땅의 습기가 적어지게 되는데 봄과 여름은 더욱 따뜻해져 그나마 남아있던 습기가 공기 중으로 더 빨리 증발한다. 그로 인해 조그마한 산불이 나도 순식간에 퍼지는 대형 산불이 되는 경우가 잦아진다.

겨울은 더욱 춥고 여름은 더욱 더워지며 생태계의 먹이사슬에 영향을 주어 멸종하는 동물이 점점 늘어난다. 농작물의 수확량도 줄어든다.

빙하가 녹고 해수면이 상승하여 투발루를 비롯한 태평양의 작은 섬나라들이 통째로 바닷물에 잠기고 있다. 투발루는 현재 9개의 섬 중에 2개가 이미 수몰됐으며 코코넛 나무와 농작물도 죽어가고 있다. 투발루 국민들이 마실 물도 점점 없어져 간다. 사람들이 마시는 지하수에 바닷물이 섞이면서 바닷물의 소금기로 인하여 짠물이 됐기 때문이다. 투발루, 몰디브의 상황은 더 이상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의 옛말이 아니다.

필자소개
곽미란(재한동포문인협회 소설분과부분과장, 필명: 백한)
흑룡강성 탕원 출생, 숭실사이버대 방송문예창작학과 졸업
에세이집 「서른아홉 다시 봄」 출간, 소설 「로마로 가는 길」, 「이 밤은 아름다워」, 「먹골에는 겨울에도 비가 내린다」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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