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승의 붓을 따라] 나이 들어서 좋은 것들  
[이영승의 붓을 따라] 나이 들어서 좋은 것들  
  • 이영승 한국 수필문학가협회 이사
  • 승인 2021.08.25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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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고희를 넘겼으나 마음은 아직 청춘이다. 그런데 남들이 그렇게 생각해 주지 않으니 이 일을 어찌하랴. 어릴 때는 하루빨리 나이를 먹고 싶었으며, 나이가 들고 나니 그 시절이 너무 그립다. 그토록 듣기 불편하던 어르신이라는 호칭이 언제부턴가 할아버지라는 말도 어색하지 않게 들린다. 나도 어쩔 수 없이 늙는다는 징조가 아닌가 싶다. 하지만 늙는다고 한탄한들 어느 누가 귀 기울여 주겠는가. 

나이를 먹으면 남들로부터 소외당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한세상 살면서 누구나 겪는 숙명이니 좌절할 일은 아니다. 나이 들어 늙으면 모든 것이 다 나쁘기만 할까? 등산길에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듯이 인생길 또한 나쁜 면만 있는 것은 분명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나이가 들어서 좋은 것들은 무엇이 있을까? 

사람의 연령에는 자연연령만 있는 것이 아니며 정신연령과 건강연령도 있다. 이들은 서로 비례하거나 연동되는 것이 아니라 별개라고 한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자연연령에만 집착하고 중시하는 것 같다. 앞을 보면 까마득하고 뒤를 돌아보면 허망한 것이 인생이란다. 나이란 자기 인생의 계급장이 아니던가? 내 인생의 계급이 오르는데 무엇을 걱정하랴. 미켈란젤로는 70세에 성 베드로 성당의 돔을 완성했으며 괴테는 80세가 넘어서 걸작 파우스트를 완성했다. 역사적 위대한 업적의 35%는 60대에 이루어졌으며 29%는 70세 이후에 이루어졌다고 한다. 그렇다면 지성과 영혼의 절정기는 바로 노년이 아닌가!

세상사는 생각하기 나름이라 했던가? 조선 중기의 대 유학자 성호 이익 선생은 늙음에 대해 아래와 같은 ‘노인의 다섯 가지 좌절(挫折)’이라는 글을 남겼다. 실로 늙어 감을 한탄하는 절절한 명구들이다. 
  
낮에는 꾸벅꾸벅 졸지만 밤에는 잠이 오지 않고
곡할 때는 눈물이 없고 웃을 때는 눈물이 나네.
30년 전 일은 기억하면서 눈앞의 일은 잊어버리고
고기를 먹으면 뱃속에는 없고 이빨 사이에 다 끼며
흰 얼굴은 검어지는데 검은 머리는 희어진다. 

하지만 민족의 선각자 다산 정약용 선생은 늙어 가면서 느끼는 비애를 좌절로 보지 않고 정반대인 ‘여섯 가지 즐거움’으로 받아들여 아래와 같은 명시를 남겼다. 같은 사안을 두고 이토록 상반되게 볼 수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놀랍고 신통하다.
  
대머리가 되니 빗이 필요치 않고
이가 없으니 치통이 사라지며
눈이 어두우니 공부를 안 해 편하고
귀가 안 들려 세상 시비에서 멀어지며
붓 가는 대로 글을 쓰니 손볼 필요가 없고
하수들과 바둑을 두니 여유 있어 좋다.

가만히 생각하니 나이가 들어서 좋은 것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무엇보다 먹고사는 일에 매달리지 않아도 되니 좋고, 자식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어 더욱 좋다. 지금까지는 세상이 정해 놓은 길만 걸어왔는데 내가 원하는 길을 걸을 수 있으며, 모든 것 다 내려놓고 나를 위해 살 수 있는 것 또한 좋다. 나이 덕분에 헛기침 하나로 자존을 지킬 수 있으니 좋고, 남을 배려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있어 가슴 뿌듯하다. 지하철에서 나보다 나이 많은 분에게 자리 한번 양보한 것으로 고맙다는 말을 듣는 것도 싫지가 않다. 이 모두가 나이 덕분이 분명하다. 

자신의 늙어가는 모습이 허망하지 않은 사람 누가 있으랴! 하지만 지금의 나이가 얼마든 신경 쓸 바 아니며, 걱정한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다. 나이에 맞춰 좋은 일은 계속될 것이다. 지금의 나이가 많다고 생각하지만 10년 후에는 분명 오늘이 그리워질 것이다. 노후를 아름답게 사는 방법은 세월 따라 새로 생기는 좋은 것을 찾는 일이다. 어쨌든 내 인생의 황금기는 바로 지금이다. 
                      
필자소개
월간 수필문학으로 등단(2014)
한국 수필문학가협회 이사
수필문학 추천작가회 이사
전 한국전력공사 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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