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승의 붓을 따라] 겸손과 배려
[이영승의 붓을 따라] 겸손과 배려
  • 이영승 한국 수필문학가협회 이사
  • 승인 2021.09.02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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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려(配慮)란 남을 도와주거나 보살펴 주려는 마음을 뜻한다. 어원에 근거하면 ‘짝을 대하듯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이라고 할 수 있다. 배려가 인간관계에 얼마나 중요한지는 역지사지로 자기가 남에게 무시당했을 경우를 생각해보면 더욱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지인 중에 배려심이 남다른 분이 있다. AIP(서울공대 최고산업전략과정) 동기회의 골프와 등산모임을 함께하고 있다. 대그룹 부회장을 역임했으며 특히 원자력 분야에 식견이 높으시다. 한참 연하의 동기들에게도 매사 겸손(謙遜)하여 60여명 회원들로부터 신뢰와 존경을 받는다. 골프 라운딩 때 카트(cart)의 앞좌석은 주로 연장자나 상사가 앉는다. 하지만 그분은 앞좌석에 먼저 앉는 법이 없다. 동반자들이 앞좌석에 앉기를 권유해도 “골프장에서는 공을 잘 치는 사람이 최고”라며 제일 고수가 앞에 앉으라고 유머로 거절한다. 일행이 그 말에 동의하지 않으면 직전 홀에서 공을 가장 잘 친 사람이 앞에 앉도록 하자며 그날의 규정으로 정해 버린다. 그러니 어찌 머리가 숙여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수년 전 모임에서 단체로 해외 골프여행을 간 적이 있다. 그분으로부터 의외의 전화가 왔다. “이 작가, 공항까지 각자 차를 갖고 갈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나는 기사가 있으니 우리 집으로 와서 차를 파킹하고 내 차로 함께 갑시다”라고 하셨다. 그렇지 않아도 차량 문제로 걱정하고 있던 참인데 예상치 않은 호의에 실로 몸 둘 바를 몰랐다. 그분은 현직에 있을 때 회사 업무로 해외여행을 백 수십 차례나 다녀오신 분이라 여행에 관한 에티켓과 상식이 대단했다. 그때 해외여행이 서툴렀던 나를 배려하며 마음 써 주신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뭉클하다. 대화 과정에 원자력 등 전문 분야에 대한 지식도 얼마나 해박한지 저런 분이 있어 우리나라가 무역 선진국이 되었구나 싶었다.

그분이 불참한 골프모임 때이다. 한 동반자가 골프 카트의 좌석 문제에 대해 입에 거품을 물고 얘기했다. 자기와 같은 직장의 퇴직자 골프모임 얘기였다. 멤버 중 한 사람이 현직에 있을 때 직위가 좀 높았다는 이유로 연장자가 있어도 앞좌석이 마치 자기의 고정석인 양 무조건 앉는다는 것이다. 남들이 뭐라고 말하기도 그렇고, 모임 때만 되면 그 행위에 스트레스를 받아 공이 잘 맞지 않는다고 했다. 그뿐만 아니라 멤버들 모두 집에 가면 할아버지로 같이 늙어 가는 처지인데 자기가 현재도 직장의 상사로 착각하는지 반말까지 한단다. 상대방의 불쾌한 심기를 모르는지, 아니면 알면서도 그러는지 도대체 이해를 할 수 없다고 했다. 누군가가 “그러면 같이 말을 놓아 버리면 되지 않느냐?”고 했더니 그러고 싶은 마음 굴뚝같지만 모임의 분위기를 생각해 말을 최대한 피한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나니 우리 모임의 그분이 참으로 대단하시다는 것을 새로이 느껴지게 되었다. 그분은 요즘 무릎이 불편해 골프와 등산모임에 함께하지 못하고 문화 행사나 실내 행사에만 참석한다. 꽃향기가 천 리를 가면 사람 향기는 만 리를 간다(花香千里 人香萬里)고 했던가? 늘 유익하고 온화한 향기를 풍기던 그분이 오늘따라 너무 그립다.

누군가로부터 들었던 말이 생각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상하리만치 과거의 자기 직위에 집착해 단 몇 개월만 장관(長官)을 하여도 남들이 평생 동안 장관으로 호칭해 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실제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불러주고 있다. 그래서 서양 사람들과 함께 대화를 나누게 되면 그를 현직 장관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내 주위에도 후배들에게 “내가 젊었을 때는 말이야~”라는 식으로 말하는 사람이 적지 않은 것 같다.

위의 사례에서 보듯이 겸손보다 더 강한 무기는 없다. 사소한 좌석 하나 양보만으로 상대의 머리가 숙여지며, ‘내’라는 말을 ‘저’로만 바꿔도 훌륭한 인품으로 평가받게 되는 것이 바로 겸손과 배려이다. 살아온 지난날의 자신을 돌아본다. 나는 거만하다는 말은 듣지 않은 것 같으나 남을 배려하는 마음은 솔직히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 지금이라도 이를 자성하게 된 것이 여간 다행스럽지 않다.

필자소개
월간 수필문학으로 등단(2014)
한국 수필문학가협회 이사
수필문학 추천작가회 이사
전 한국전력공사 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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