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승의 붓을 따라] 손자 이름 짓기
[이영승의 붓을 따라] 손자 이름 짓기
  • 이영승 한국 수필문학가협회 이사
  • 승인 2021.10.28 10: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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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가 태어났다. 마흔이 되도록 장가를 가지 않아 숱한 애를 태우던 아들이 결혼해 낳은 첫 아이다. 보고 싶은 마음 간절하나 코로나 때문에 함부로 찾아갈 수도 없다. 다행히 아이가 자라나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찍어 수시로 보내주니 하루에도 몇 번씩 보고 또 본다. 재롱스런 모습을 지켜보는 그 기쁨, 말로 어찌 다 표현하랴!

손자 이름은 민형(旼衡)이다. 태어난 지 벌써 6개월이 넘었다. 금년 초 설레는 마음으로 아이의 이름을 짓던 기억이 새롭다. 나는 음양오행설도 모르고, 한자의 뜻과 획수를 따져 이름을 지을 줄도 모르니 작명소에 갈 수밖에 없다. 이심전심인지 아내도 벌써 인터넷을 검색해 작명소를 한 곳 알아두었다. 하지만 하나뿐인 귀한 손자 이름을 작명소에 전적으로 맡길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아이가 태어나기 전 남아인 줄 알고부터 이름을 짓기 시작했다. 좋은 이름 몇 개를 선정해 작명사와 면담 시 참고 의견으로 제시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먼저 부르기 편하고, 한자의 뜻이 좋으며, 항렬자가 포함된 이름을 20여개 물색했다. 그 중에서 친척 중에 이미 있는 이름을 찾아 제외한 후 다시 엄선을 거듭해 최종 5개를 선정했다. 손자가 태어날 날이 가까워오자 아들에게 20개 명단을 카톡으로 보낸 후 전화를 했다. “보내 준 20개 명단 중에서 골라보되 가능하면 앞 순위 5개 이름 중에서 선택하면 좋겠다”고 했다. 그리고 조만간 날을 잡아 우리 부부와 두 가족이 함께 작명소에 가서 최종 결정을 하자고 했다. 내 의견은 참고일 뿐이며 결정 권한은 너희에게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며칠 후 아들이 전화해 “아이 이름을 ‘민형’로 하고 싶다”했다. 그런데 민형는 내가 보낸 20개 이름 중에 있으나 당연히 선택하리라 생각했던 5개 중에는 없는 이름이다. 그토록 고심해 5개를 선정, 추천했는데 일거에 무시당한 것 같아 마음이 좀 언짢았다. 거기까지는 좋았는데 “정은이도 민형이란 이름이 제일 좋대요”라는 말이 순간 내 귀에 거슬렸다. 손자 이름을 며느리가 결정하나? 싶었기 때문이다. 다시 차분히 생각하니 내가 결정권은 너희에게 있다고 말한 바 있고, 저들 부부가 의견 일치를 보았다고 말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내가 손자 이름 짓기에 너무 몰입해 좀 예민했던 것이다. 나이 들면 이해심은 줄고 고집만 늘어난다더니 나도 그런가 보다 싶기도 했다. 어차피 작명소에 가서 결정할 일이라 “알았다”고 짧게 대답했다.

다음 날 아들의 전화가 왔다. 어제 전화할 때 내 마음이 불편했던 것을 감지했었는지 “아버지가 추천하신 5개 이름 중에서 선택하지 않아 서운하지 않으셨어요?”하고 물었다. “아니다. 우리 의견은 참고일 뿐이고 어차피 작명소에 가서 결정할 일이니 그때 보자”고 흔쾌히 대답했다. 그렇게 전화를 한 것만으로도 내 마음은 날개를 달았다. 나는 이름의 한자 뜻에 더 의미를 두고 아들은 부르기 편한데 비중을 두지 않았나 싶다. 하기야 아들 부부도 그 이름을 선택하기까지 얼마나 고심했겠는가. 그리고 조부모 마음이 아무리 지극한들 어찌 부모 마음에 비하랴.

우리 부부가 작명소에 더 일찍 도착했다. 작명사와 차를 나눈 후 준비한 예비 명단 5개를 건네주며 “아들은 ‘민형’를 선호하는 것 같다”고 귀띔해 주었다. 아들 부부가 도착하자 작명사는 “주신 자료를 참고해 3개 이름을 지어 좋은 이름순으로 통보할 테니 결정은 가족이 하시면 됩니다”고 했다. 손자 이름을 짓는 일은 우리 집안의 너무도 중요한 일인데 할아버지로서 체면을 세워야 할 것 같아 작명료가 25만원인데 30만원 주었다.

다음날 작명한 이름 3개를 메일로 보내왔는데 민형이 이름이 맨 앞에 있었다. 단지 내가 지은 이름은 한자로 옥돌민(瑉)자였는데 온화할 민(旼)자로 대체했으며, 3개 이름에 대해 각기 난해하고 긴 해설이 여러 장 첨부되어 있었다. 결국 ‘민형’이란 이름은 내가 기초 조사를 하였고, 아들이 선택을 했으며, 작명사가 이름에 적합한 한자어로 바꾸었으니 세 사람의 합작품인 것이다.

저녁에 아들이 전화를 하여 “아버지, 저희들이 이름을 잘 골랐지요?” 하며 싱글벙글 좋아했다. 나도 “그래, 결정해 놓고 보니 참 좋은 이름인 것 같다. 부르기도 편하고 듣는 어감도 좋구나. 하지만 민형이도 내가 보내 준 20개 명단 중에 있는 이름이니 내 공로도 적지 않다”고 하며 함께 웃었다.

요즘 우리 부부는 하루 수도 없이 민형이 이름을 부른다. 언젠가 종친회장께서 항렬인 저울대 ‘형(衡)’자가 이름에 들어가면 균형을 잡는다는 의미가 있어 판관의 직업을 갖게 된다고 했다. 판검사가 되는 것도 좋지만 우선 건강하게만 자라줬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필자소개
월간 수필문학으로 등단(2014)
한국 수필문학가협회 이사
수필문학 추천작가회 이사
전 한국전력공사 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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