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기고] 바이러스가 남긴 후유증
[해외기고] 바이러스가 남긴 후유증
  • 황현숙(칼럼니스트)
  • 승인 2021.11.09 08: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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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의 날씨가 쾌청하면 데이트를 앞둔 사람처럼 괜스레 가슴이 설렌다. 이른 새벽에 잠이 깨서 시티 보타닉가든으로 산책을 나갔다. 짙은 녹색의 가로수가 우거진 산책로에는 눈부신 햇살과 강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온몸을 감싸 준다. 자전거를 타고 열심히 페달을 돌리는 사람들, 스쿠터에 속도를 실어서 싱싱 달리는 사람들, 천천히 여유로운 아침산책을 즐기는 사람들로 길게 이어진다. 나는 하얀 철다리를 건너 요트들이 정박해있는 강변로에 서서 3-3-6 명상호흡을 시작해본다. 하나, 둘, 셋을 속으로 세면서 천천히 깊이 숨을 들이마시고, 숨을 멈추었다가 다시 여섯 번의 숫자를 세고 긴 숨을 바깥으로 내뱉는 호흡법을 반복한다. 들어 올린 손등에는 파란 힘줄이 불끈 솟아나 있고 살집이 별로 없다. 코로나 역병이 발생한 이후로 더욱 보기 싫게 변한 나의 손을 쳐다보니 한숨이 새어 나온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비누로 손을 씻어대는 결벽증은 바이러스가 나에게 남긴 후유증이다.

“코로나 걱정에 계속 청소하나요? 큰 도움 안 돼”라는 신문기사의 제목이 관심을 끌었다. 건강 전문가의 소견에 따르면 물체 표면에 묻은 바이러스를 통해서 우리 신체에 직접 감염되는 경우는 힘들다고 한다. 코로나19에 대해 잘 알려지지 않았던 초기에는 물체 표면에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상당 기간 생존한다는 근거로 잦은 소독을 권고했었다. 그리고 영국건강보험공단(NHS)은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제작한 광고 영상에서 기침 한 번으로 휴대전화, 문고리, 커피 컵 등에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스프레이처럼 퍼지는 것으로 묘사했었다. 그런 광고 홍보의 탓인지 나는 병적일 만큼 씻고 닦아대는 후유증을 심각할 만큼 겪고 있다. 그러니 내 손의 피부는 자연스럽게 건조하고 거칠게 변할 수밖에. 다른 한편으로는 괜찮은 후유증(?)으로 재활용 쓰레기를 열심히 분리하는 좋은 습관이 생겼다. 이런 생각은 ‘병든 지구를 살리자’라는 캠페인에 크게 동감하기도 했지만 더 이상 환경과 생태계를 훼손해서는 안 되겠다는 내 나름의 각오이기도 하다.

옛날에는 지금처럼 환경이 오염되지도 않았고, 사람이나 동물의 배설물까지 거름으로 재활용했으니 쓰레기 때문에 겪는 문제는 현시대보다 심각하지 않았을 거라고 여겨진다. 역병이 퍼지기 전에는 간혹 일반 쓰레기와 재활용 쓰레기를 구분하지 않고 비닐 봉투에 넣어서 버린 적도 많았다. 아파트에 살다 보니 지하층에 별도로 있는 재활용 쓰레기장까지 내려가는 일이 귀찮았던 것이다. 이제는 재활용 수거 물을 담은 박스를 들고 엘리베이터에 탄 사람들을 쳐다보며 속으로 칭찬을 하게 된다. “ 저 사람은 참 기특하네, 착한 사람이야”라고.

지구를 살리는 환경문제와 에너지 그리고 효율성으로 좋은 자연 친화적인 건강한 물건들에 대한 아이디어도 쏟아지고 있다. 재미있는 한 예는 코끼리 배설물로 종이를 만들 수 있는데, 하루에 싸는 50kg 중에 최대 10kg이 종이를 만드는 원료가 될 수 있다는 환경학자의 논문이 발표되었다. A4용지 크기의 종이는 660장이나 만들 수 있고, 1년 치는 24만장을 만들 수 있다니 놀랍기만 하다. 자연환경을 보호하며 이산화탄소의 배출도 막고 나무를 아껴서 종이로 만들 수도 있으니 일석이조의 효과를 보는 셈이다. 오늘 아침에 산책을 나갔다가 지나가던 낯선 호주아줌마에게 고맙다는 인사말을 들었다. 들고 있던 휴지로 길에 떨어진 술병을 감싸서 노란색 재활용 쓰레기통에 집어넣는 모습을 보았던 모양이다. 보면서도 행하지 못하는 데는 용기가 필요한 법이다. 역병이 번진 후로는 쇼핑하는 물건에 손을 대는 것조차 두려운 것이 지금의 우리의 현실이다.

쓰레기 처리는 시대를 불문하고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되어서 그 기록들이 남아있다. 가장 가까운 옛날 시대인 조선시대의 궁궐 기록을 보면 쓰레기 처리가 문제였던 곳이 바로 궁궐이었다. 궁궐에는 왕과 왕비, 왕자와 공주 등 왕의 가족을 포함해서 약 3000여명이 모여 살았다고 한다. 그래서 궁궐엔 쓰레기를 처리하는 일을 맡은 ‘전연사’라는 부서가 따로 있었다. 전연사(典涓司)는 궁궐의 수리와 청소를 담당하던 관청이었는데 우두머리인 제조 1명을 중심으로 16명의 관리가 있었으며, 남자 노비 48명이 소속되어 있었다. 전연사는 일하기 괴로운 관청으로 평가받았지만 없어서는 안 될 주요한 곳이었다. 비록 큰 권력을 행사하거나 멋진 일을 하는 부서는 아니었지만, 궁궐의 품위를 유지하고 보존하는 데 꼭 필요한 관청이었다고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되어있다.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위협하는 시대에 살면서 깨끗한 위생을 철저하게 지키려고 애를 쓰다 보니 화학물질에 중독되는 사례도 생겨난다. 거칠어진 손을 쳐다보며 결벽증의 후유증에서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은 간절한 소망을 하늘로 올려보낸다. 우리는 언제쯤 이 험난하고 불안한 시간 속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황현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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