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승의 붓을 따라] 달마는 왜 동쪽으로 갔을까
[이영승의 붓을 따라] 달마는 왜 동쪽으로 갔을까
  • 이영승 한국 수필문학가협회 이사
  • 승인 2021.12.17 08:5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이 물음은 불법의 대의가 무엇인지를 묻는 선문(禪問)으로 수많은 수도자의 화두가 되고 있다. 나도 그 물음을 수차 들었으나 솔직히 정확한 답을 모르고 지냈다. 아니, 알려고 노력하지도 않았다고 해야 옳을 것 같다. 불교는 인도에서 창시되었지만 현재 인도의 국교는 힌두교이며, 불교는 동남아에서 제2 전성시대를 맞고 있다. 만약 달마가 동쪽으로 가지 않았다면 지금쯤 불교는 어떻게 되었을까?

보리달마(菩提達磨)는 불자들에게 부처님 다음으로 숭배 받는 인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불조법맥(佛祖法脈)으로 석가로부터 1조(祖) 마하가섭, 2조 아난다에 이어 28조이지만 지금부터 1401년 전(520. 9. 21) 인도에서 중국으로 건너와 중국 선교(禪敎)의 초조(初祖)가 되었다.

한반도에는 그로부터 301년 후 신라 헌덕왕 13년(821년)에 도의(道義) 선사가 달마의 9대(代) 제자인 서당(西堂의 수계(受繼)를 받아 신라에 선(禪)의 시원(始原)을 펼쳤다. 우리나라 현대 불교는 선(禪), 교(敎), 율(律) 등 여러 조건에 따라 조계, 태고, 천태, 화엄, 진각 등 수많은 종파로 분류된다. 이 중에서 대한불교의 정통성을 잇는 조계종은 선종(禪宗) 전체를 아우르는 종파로 금강경을 근본 경전으로 삼는다.

달마는 남인도 향지국(香至國)의 셋째 왕자로 태어났다. 영원한 생명의 길을 찾아 스스로 출가했다는 설과, 후궁의 몸에서 태어났으나 문무(文武)가 워낙 출중해 훗날 왕위 계승을 두고 피바람을 일으킬까 두려워 어머니가 출가를 권유했다는 설이 있다. 어쨌든 그는 동방의 신천지에 오늘과 같은 불교 전성시대를 열었으니 석가 이래 불가(佛家)의 중시조라 할 수도 있다.

달마가 중국으로 떠나면서 스승 반야다라(27祖)에게 “중국에 법기(法器)가 될 만한 대사들이 많이 있을 것인지, 그리고 천년 뒤에도 난관이 없을지를 묻자 “그대가 교화할 지방에는 보리를 얻는 이가 셀 수 없이 많을 것이다.”라 했다. 그 예언대로 동방에는 정말 대단한 선승들이 수없이 배출되었다. 그 수많은 대승들 중에 조주(趙州) 선사에 대한 어록을 잠시 살펴본다. 중국의 불교 법맥은 달마를 초조로 2대(代) 혜가(慧可), 6대 혜능(慧能)으로 이어져 불세출의 대선걸(大禪傑) 8대 마조(馬祖)에서 서당, 백장, 남전 셋으로 분파된다. 조주는 남전의 직계 제자이니 달마의 10대 제자가 된다.

조주는 젊은 수행자들이 찾아오면 “여기에 와본 적이 있는가?”라고 물은 후 상대가 뭐라고 대답을 하든 “그러면 차나 한 잔 마시고 가게.”라고 했다. 하루는 원주 스님이 “화상께서는 왜 매양 똑 같이 묻고, 무엇이라 대답하든 간에 차나 한 잔 마시고 가라 하십니까?” 물었더니 “원주 스님, 그대도 차나 한잔 마시고 가게”라고 했단다. 여기서 차나 한잔 마시고 가라는 참 의미는 무엇일까? 선승에게 있어 차는 일상(日常)이고, 선의 세계에서도 차를 마시는 일은 일상과 마찬가지다. 모든 생각의 굴레에서 벗어난 평소의 마음이 도(道)이니 허튼 소리 말고 늘 깨어있으라는 화두였던 것이다.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의 내용을 261자로 압축한 것이 반야심경(般若心經)이고, 이를 한마디로 줄이면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이며, 다시 한 자로 줄이면 심(心)이 된다. 결국 불교를 한 글자로 표현하면 마음(心)이며 세상의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말이다. 이는 마조대사가 남긴 ‘평상심(平常心)이 도(道)요, 마음이 곧 부처’라는 그 유명한 말과도 일맥상통한다. 마음은 육체와 별개로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또 하나의 ‘나’이다. 번뇌와 속박에서 벗어난 정토(淨土), 그 극락세계가 과연 있을까? 있다면 그것은 오직 내 마음(心)에 달렸을 것이다. 이 같은 사람의 마음이야 어느 종교를 믿는다고 한들 어찌 다를 수 있으랴.

달마의 출생 시기는 미상이며, 그를 시기한 무리들이 수차 독살을 시도하자 스스로 독약이 든 음식을 먹고 528년 10월 5일 입적(入寂)하여 12월 28일 소림사의 뒷산인 숭산(嵩山)에 장례지낸 것으로 전해진다. 소림사는 495년 인도에서 온 고승 발타(跋陀)가 창건했는데 달마가 초창기 면벽수도한 곳이다. 그곳에는 지금도 달마가 수도하는 모습이 투영된 돌이 보관되어 있단다. 그가 입적한지 3년 뒤 송운(宋雲)이 서역에 사신으로 갔다가 총령에서 신발 한 짝을 손에 들고 혼자 걸어가는 달마를 만난다. 송운이 놀라 “스님, 어디로 가십니까?” 하고 묻자 “나는 서역으로 돌아가오.” 했다. 송운이 귀국해 황제에게 고하고, 황명에 따라 그의 무덤을 팠더니 관 속에는 신발 한 짝만 들어있어 소림사에 공양했다. 그 옛날 천축(天竺) 땅에는 지금도 달마가 심은 계수나무가 잘 자란다고 한다.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이제 나도 알 것 같다. 하지만 그가 어디로 가서 열반에 들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 달마는 과연 어디로 갔을까? 하기야, 내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모르는데 달마가 어디로 갔는지를 내가 어찌 알리오. 덧없이 흘러가는 나그네의 인생, 차나 한잔 마시며 마음(心)을 닦으리라.

필자소개
월간 수필문학으로 등단(2014)
한국 수필문학가협회 이사
수필문학 추천작가회 이사
전 한국전력공사 처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송파구 올림픽로35가길 11(한신잠실코아오피스텔) 1214호
  • 대표전화 : 070-7803-5353 / 02-6160-5353
  • 팩스 : 070-4009-2903
  • 명칭 : 월드코리안신문(주)
  • 제호 : 월드코리안뉴스
  • 등록번호 : 서울특별시 다 10036
  • 등록일 : 2010-06-30
  • 발행일 : 2010-06-30
  • 발행·편집인 : 이종환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석호
  • 파인데일리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월드코리안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k@worldkorean.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