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미희의 음악여행 ㉙] 사랑, 음악의 영원한 주제
[홍미희의 음악여행 ㉙] 사랑, 음악의 영원한 주제
  • 홍미희 기자
  • 승인 2021.12.20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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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먼 옛날의 음유시인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많은 작곡자들이 가장 많이 노래한 감정은 아마도 사랑일 것이다. 이 사랑을 노래한 작곡자 중 최고는 푸치니와 베를리오즈다.

음악은 곡의 제목, 작곡자의 사적인 생활, 곡이 만들어진 배경, 또는 음악을 접하게 된 사연 등 음악에 얽힌 그만의 이야기 때문에 같은 곡이라도 사람에 따라 다른 느낌과 평가를 가지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음악을 들을 때 그 곡을 더욱 잘 이해할 수 있기 위해 작곡자가 그 곡을 작곡하게 된 배경이나 작곡자 개인의 삶에 대해 궁금증을 가지곤 한다.

푸치니

푸치니는 오페라 작곡자다. 오페라는 음악으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다. 그래서 오페라의 작곡자는 이야기꾼이라고 할 수 있다. 친구의 부인을 사랑하여 같이 도피를 하고 결혼에까지 이르고 아름다운 호수 근처에서 살면서 자동차와 요트를 수집하고, 친구들이 찾아오면 사냥을 가고 요트를 타면서 시간을 보냈던 푸치니가 들려주는 사랑의 이야기는 어떤 것일까? 그가 노래하는 사랑은 슬프고 아름답고, 그가 부르는 사랑의 멜로디는 탁월하다. 남자지만 여자들의 마음을 잘 이해하고 그 깊은 속까지 표현한다. 그가 노래하는 여주인공은 다양하다. 아버지에게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과의 결혼을 허락하지 않으면 죽어버리겠다고 귀여운 협박을 하는 잔니 스키키의 라우레타.

이미 내기에서 이겨서 승리자임에도 새벽이 오기까지 죽음을 무릅쓰고 다시 한 번 더 기회를 주는 칼라프, 그가 바라보는 곳에는 잔혹하고 매력적인 공주 투란도트가 있다. 라보엠은 추운 겨울 크리스마스를 맞이하는 파리에서 가난하고 결핵에 걸린 미미와 그 연인을 묘사하고 있다. 이 곡은 현대에도 살아남아 뉴욕의 가난한 연인들을 노래하는 뮤지컬 렌트로 공연되고 있다. 푸치니 곡의 특징은 감정의 절제가 없는 끝없는 아름다움, 그 절정에서 한없이 풀어놓는 풍부한 선율, 거기에 더해지는 극적인 이야기. 이러한 요인으로 고전 음악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까지도 그 멜로디를 흥얼거리게 하는 힘에 있다. 그의 멜로디는 통속적이어서 더 아름답다. 토스카의 노래처럼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았던’ 사람이 푸치니다.

베를리오즈

베를리오즈는 피아노도 잘 못 치는 작곡자였지만 오히려 화성을 과감하게 증폭시키고 오케스트라의 인원을 늘리는 등 일반적인 구성의 곡을 뛰어넘었던 작곡자다. 그에게 사랑은 정열이고 광적이며 집착이었다. 10살이나 연상이었던 스미드슨이라는 영국의 배우에게 첫눈에 반한 그는 그녀가 공연하는 극장 근처에 방을 얻고 스토커처럼 따라 다니며 사랑을 고백했다. 그러나 당시 가장 잘나가는 배우 중 하나였던 그녀는 유명하지도 않고 기반도 없는 어린 작곡자에게 눈을 돌릴 리가 없었다. 또, 베를리오즈는 사랑의 방해자를 죽이겠다고 총을 구입해서 열차에 올라타기도 했다. 기다란 총을 가리느라 긴 망토를 둘러 입고 말이다. 열정 하나에 취한 이 젊은이는 누가 봐도 수상하여 금방 경찰에 잡히고 만다. 다행히 미수에 그친 것이다. 시간이 흘러 그의 사랑은 성공하게 되는데 이들의 사랑이 이루어진 것은 ‘환상교향곡’ 덕택이었다. 유명한 작곡자가 된 베를리오즈가 공연하고 있는 ‘환상교향곡’의 주인공이 자신이었다는 것을 스미드슨이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혼 후 금방 현실에 부딪힌 이들은 몇 해 지나지 않아 헤어지게 된다. 베를리오즈의 환상교향곡은 특이하게 5개의 악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또한 여자 주인공을 상징하는 고정악상을 사용하여 그 이후 작곡자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환상교향곡의 내용은 베를리오즈의 상황과 흡사한데 사랑에 빠진 예술가가 마약을 먹고 취해서 자살을 시도했는데 약이 부족하여 혼수상태 속에서 본 환각을 묘사한 것이다. 이렇게 구성된 5개의 악장 중 가장 유명한 것은 2악장의 무도회다. 짝사랑하는 사람을 그리며 열정에 취한 무도회의 왈츠는 너무나 조용하고 아름답게 흘러 베를리오즈가 그리는 사랑이란 어떤 것이었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그렇게 자유분방하고 열정적이며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간 그에게도 사랑은 꼭 불과 같은 것만이 아닌 서정도 있었던 것 같다. 그 애증의 양면이 조용하고 아름답게 또 불길하게 흐르는 곡이 무도회다.

수태고지(안젤리코)
수태고지(안젤리코)

남녀간의 사랑이 있다면 신에 대한 사랑도 있다. 중세시대와 바로크 시대를 관통하는 주제는 종교다. 전례음악에서 진혼곡에 이르기까지 곡의 하나하나는 신에게 바치는 기도다. 개인적으로 올 한 해를 보내면서 느낀 가장 큰 마음은 감사다. 올 한해 무사히 보낼 수 있었던 것들에 대한 감사. 내가 생각한 감사의 곡은 구노의 ‘아베마리아’다. 아베(Ave)는 라틴어로 인사의 높임말이다. “마리아님, 하례드리나이다.” 이런 뜻이다. 이 말은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에게 예수님의 잉태를 알리는 순간에 사용된 것으로 미술에서도 ‘수태고지’라는 제목으로 다빈치, 안젤리코, 보티첼리 등 많은 화가들이 이 순간을 나름대로 해석하여 그려냈다. 구노는 신에 대한 기도 중 가장 아름다운 바흐의 곡을 바탕으로 하고 그 위에 자신이 만든 선율을 얹어 신에 대한 마음을 표현했다.

구노의 아베마리아에 깔리는 바흐의 곡은 평균율 1번 프렐류드이다. 바흐는 음계에 사용되는 모든 음을 활용하여 장조와 단조로 12개씩 음악을 만들어냈다. 즉, 다 장조로 된 전주곡과 푸가, 다 단조로 된 전주곡과 푸가, 올림 다 장조, 올림 다 단조, 이런 식으로 24곡을 만들고 평균율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렇게 수학적이고 철학적인 계산 아래 만들어진 바흐의 음악은 구도적이다. 바흐의 음악을 이루는 근간은 대위법인데 이 역시 철저하게 계산된 음악의 형식이다. 주제음이 위로 진행할 때 똑같이 아래로 진행한다거나, 서로 반대로 진행하거나 박자를 늘려서 움직이기도 한다. 이는 수직적이고 모든 석재가 제 위치에 맞도록 철저히 계산되고 좌우 대칭으로 정돈된 고딕양식과 비슷하다. 바흐 음악의 아름다움은 엄정한 계산과 질서에 있다. 이성을 이용하여 감성을 억제하고 그것이 결국은 인간의 깊고 숭고한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다. 이는 현대 건축물의 아름다움과는 다른 타지마할이나 유럽의 대성당에서 느끼는 것과 같은 위대함, 잠시의 쉼과 일탈도 허용하지 않는 질서정연한 아름다움과 전율을 들려주는 것이다.

바흐 평균율(글렌굴드 연주)

구노의 아베마리아가 아니라 바흐의 평균율만 따로 듣는다면 쳄발로로 연주된 곡을 들으면 좋겠다. 바흐 당시에 피아노가 만들어졌지만 오르간을 신의 악기로까지 생각했던 바흐에게 피아노는 열외의 악기였다. 쳄발로와 피아노의 가장 큰 차이점은 소리의 강약이다. 피아노와 달리 쳄발로로 연주할 때는 소리의 강약이 조절되지 않는다. 크레센도와 데크레센도, 악센트 등의 조절로 피아노가 감정의 표현을 풍부하게 한다면, 쳄발로는 소리의 크기가 처음부터 끝까지 동일하여 감정이 절제되는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같은 크기로 챙챙거리며 흐르듯 연주되는 쳄발로 소리는 이래야 바흐지~라는 마음을 느끼게 한다.

연말이다. 한 해가 끝나가는 이 계절은 어쩔 수 없이 뭔가를 정리하는 마음을 가지게 한다. 한 해가 끝날 때마다 듣는 다사다난(多事多難)이라는 상투적인 단어가 올해는 마음 깊게 다가온다. 그러나 씨줄과 날줄이 서로 엮어지면서 그 사이에 공기를 품고 따뜻한 직물이 되는 것처럼 힘든 순간 사이에도 기쁨, 환희, 즐거움, 또 짧은 한숨과 안타까움의 시간이 감사한 한 해를 만들었다. 사람과 신에 대한 사랑과 감사가 가득한 시간이다.

바흐 평균율 악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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