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송칼럼] 팬데믹 시대가 묻는 질문
[이계송칼럼] 팬데믹 시대가 묻는 질문
  • 이계송(재미수필가)
  • 승인 2021.12.24 14: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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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 사회는 법과 문화를 통해 시민들의 인권의 신성함을 소중이 여기는 전통을 갖고 있다. 하지만 팬데믹이 두 해를 넘기고, 또 다른 변종 바이러스 ‘오미크론’이 급속도로 번지자 상황이 달라졌다. 공중보건의 명목 하에 시민의 자유에 대한 일부 제한이 일상에서 더욱 강제되고 있다. 백신접종의 의무, 소위 ‘백신패스’에 대한 뜨거운 논쟁이 잇따르고, 정부와 시민들 간 긴장관계가 고조되고 있다.

미국은 주마다 코로나19 방역 지침이 다르다. 필자가 거주하는 미주리주의 경우 ‘마스크 착용 의무’에 대한 주지사의 행정명령마저도, 주 검찰총장이 즉각 이에 반발해 법원에 이의를 제기했고, 법원은 검찰총장의 손을 들어 주었다. 시민 각자의 ‘임의 착용’이 맞다는 것이다. “100명 이상의 기업은 1월18일까지 백신접종을 완료하고 정기 테스트를 해야 한다”는 바이든 대통령의 행정명령이 있었지만, 연방법원이 이를 보류시켰다. 물론 대법원은 “백신패스”를 합헌으로 지지한다.

영국을 비롯한 유럽국가들의 경우는 의회가 입법을 통해서 ‘백신패스’에 대한 법규를 만들어 시행한다. 그 과정에서 자유주의자들과 백신회의론자들의 반대가 조직적으로 이루어지고, 이들의 거리 시위가 더욱 과격해지고 있다. 물론 시민들 다수는 바이러스 확산 방지를 위한 일부 자유의 희생은 불가피하다고 인정한다.

하지만 ‘백신패스’가 ‘우리’ 대 ‘그들’의 양극화 분열을 초래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구조적 불평등을 증폭시킴으로써 ‘혼란의 원천’을 키운다”는 것이다. 백신을 기피하는 사람들이나 적극적으로 거부하는 사람들의 특징을 통계로 보면, 비교적 가난한 사람들과 교육을 덜 받은 사람들이고, 이들 가운데 다수가 이미 정부에 대한 불신이 강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이는 개선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는 하나의 사회 구조적 측면이다. 이들을 집에 격리시키거나 혹은 술집/식당 출입을 제한하는 경우, 그들의 불만만 더욱 고조시킨다는 것이다.

시민의 자유에 대한 전통을 불문법으로 규정하고 있는 영국의 경우 ‘백신패스’는 “국민들이 일상생활에 나설 많은 권리를 박탈하는 것’으로 규정한다. 반대의 주요 논리다. 또한 극우는 “시민의 통제수단”이라는 이유로, 극좌는 “정부가 다국적 제약사 등 거대자본과 결탁, 백신이 그들의 배만 불려준다는 이유”로 반대한다. 비교적 ‘백신패스’에 순종했던 한국사회도 일부 젊은이들이 ‘백신 의무 접종’ 명령은 위헌이라며 소송에 나섰고, 자영업자들이 정부의 영업통제에 반발, 집단행동에 들어갔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골치거리는 종교적 믿음에 의한 반대다. 주요 교단은 대부분 ‘백신패스’를 지지한다. 하지만 개인적 믿음은 통제가 불가능하다. 그들은 ‘종교적 면제’를 요구한다. “일부 백신은 낙태된 태아의 세포주를 이용해 개발된 것”이라며 “우리의 몸과 영혼을 오염시키는 모든 것들로부터 우리 자신을 정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백신거부자들에 대한 직장해고 방안이 현실화되자, 그들은 ‘종교적 면제’를 요구하고 나섰다. 구체적인 요구 방법을 규격화한 팁을 상호 교환하기도 하고, 제공해주는 단체들도 생겼다.

이 모든 어려움의 기저에는 무엇보다도 아직 백신접종에 대한 효용성과 안전성이 담보되어 있지 않다는 데 있어 보인다. “백신이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는 것이고, 접종 사망 사례들을 언론이 수시로 보도하고 있는 것도 한몫한다. 정부의 대책이 역부족인 이유다. 미접종자에 대한 해고 및 보험료 인상 등 다양한 100% 접종방안을 내놓고 있지만, 병원 같은 주요 공공 분야의 노동력 부족 현상이 초래된다는 역작용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고르디아스의 매듭’처럼, 단칼에 풀 수 있는 ‘백신패스’의 해법은 없어 보인다. 바이든 대통령은 백신접종을 심지어 “애국의 의무”라고까지 호소하고 있지만 시민들의 반응은 싸늘하다. 강제가 심해질수록 ‘백신패스’ 거부자들의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더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당하고, 또한 죽어가고 있다. 인간사회의 모순이 자초하는 업보라고 할까. 이웃의 목숨이나 고통/두려움은 경원시하며, 백신거부의 자유만 챙기는 개인 이기주의는 무엇인가? ‘인권, 그리고 개인 자유의 신성함’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 팬데믹 시대가 묻는 질문이다.

필자소개
이계송/재미수필가, 전 세인트루이스한인회장
광주일고, 고려대정치외교학과졸업
저서: <꽃씨 뿌리는 마음으로>(에세이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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