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칼럼] 기나긴 겨울을 보내며
[대림칼럼] 기나긴 겨울을 보내며
  • 최언희 경희대학교 국문과 현대소설 박사과정
  • 승인 2021.12.30 09: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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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도 이제 며칠 남지 않았다. 한해가 어찌 후딱 가는지 올해 연말도 한해가 지나갔다는 것이 실감이 나지 않는다는 말만 되풀이한다. 한 해를 보낸 체감은 아마 나이에 정비례하는가 보다. 그렇다고 이번 한 해 뭘 했던가 하면, 또 딱히, 선뜻 말할 수 있는 것도 없다. 한해의 마감은 늘 겨울이라는 계절에 있다 보니 추위 속에서 따뜻한 것들을 찾으려고만 한다. 매년 겨울마다 올해 겨울은 유난히 춥다고 하는 것 같다. 수치적인 기온으로 따지면 매년 따뜻해진 겨울을 보내고 있는 셈일 텐데 말이다.

올해 겨울은 눈이 좀 일찍 왔다. 11월에 눈이라니. 그날은 마침 주말이었고, 주말 동안, 위챗 모멘트를 가득 채운 것은 눈이었다. 정말, 11월에 눈이라니. 근 몇 해안에는 상상조차 어려운 일이었다. 벌써 눈이라니, 겨울이 일찍 온 걸까 생각했는데, 마침 눈이 온 날이 입동이었다. 그러니까, 적절히 때에 맞춰 눈이 온 것인가. 아무튼, 이번 해 겨울은 아주 길게 느껴질 것으로 예상한다. 생각만으로도 벌써 지긋지긋하다.

어릴 때는 겨울만큼 좋은 계절이 없었다. 그때는 여름의 무더위보다 겨울의 한파가 견딜 만했다. 옷만 더 껴입으면 되는 거 아냐? 그때의 겨울이 그렇게 살갗을 에는 추위였던지는 기억도 나지 않는다. 기억에 남는 그때의 겨울은 무엇보다 온통 하얀 세상이었다는 것뿐. 그러니까 그때의 겨울에는 하얀 낭만이 있었다.

동화책에서나 봤을 그런 온통 하얗게 뒤덮인 세상, 눈이 오는 날은 아마 겨울 동안 가장 기대되는 날이었을 것이다. 눈싸움하고, 눈사람을 만들고, 눈이 조금 녹으면 길 위에서 미끄럼을 타고, 겨울 방학에는 썰매를 타고, 실로 다른 어느 계절보다 겨울이라는 시간 동안에만 한정되어 할 수 있는 놀이가 많았다. 그리고 그런 놀이는 대개 혼자가 아닌 함께라서 가능했고 즐거운 것들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좋았던 기억은 어린 시절에 한정되어 있다. 언제부터인가, 겨울은 한순간에 제일 싫은 계절로 되어버렸다. 사춘기 시절의 겨울은 두꺼운 내복을 입기 싫은 기억으로 가득하고 대학교 시절은 난방이 잘 안 되는 기숙사에서 찬물에 손이 다 얼도록 빨래하던 기억만 뚜렷하다.

작년 2020년의 겨울은 팬데믹으로, 해오지 않던 것을 한다던가, 계속 해왔던 것을 하지 못한다던가, 그런 일들의 연속이었다.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용어의 등장과 함께 곳곳에 멈춤이 요구되었다. 사회가 멈춘다고 삶은 멈춰지지 않았다. 생계를 위해, 직책을 위해, 저마다 해야 하는, 결코 멈출 수 없는 삶이 계속되었다.

다만 다른 방식으로 바뀌어 계속해 나갈 뿐. 물론 내가 볼 수 있는 주위의 것들은 한정되어 있지만, 살펴보면 학교에 가던 학생들은 학원으로 가고, 자습실에서 하던 과제는 카페에서 하고 그런 식으로 말이다. 그리고 그런 장소들은 대개 공공적인 장소에서 개인적인 장소로 옮겨갔다. 그 개인적인 장소는 말 그대로 사적인 공간이라던가 아니면 크게는 개인에게 책임을 묻는 곳이 된다. 어쩌면 책임이라고 해야 할지, 책임 회피라고 해야 할지 갸우뚱거리게 되는 그런 부분들이 있었다.

한국은 그간 단계적인 일상회복을 시도하다가 올해 11월은 드디어 멈춤에서 다시 시작인가 했더니 요즘은 또 변이 바이러스 오미크론으로 다시 멈춰버렸다. 마스크와 함께 한 지 2년이 되어간다. 코로나가 유행하기 시작하면서 자유의 문제도 뜨거운 감자처럼 식지 않는 이슈들로 가득했는데, 가령 마스크 또는 백신의 의무화가 자유의 침해냐 인권의 수호냐 등의 문제들이 갑론을박으로 펼쳐졌다.

너무나 당연히 안전 또는 건강의 문제를 고려해 “마스크는 필수다”라고 여기는 부류가 있는가 하면, 그 반대로 개인의 자유를 앞세워 유럽 같은 경우에는 마스크 반대 시위도 일어났다. 2년간 마스크에 관한 이슈는 너무 많았다.

그 가운데 꽤 흥미롭고도 공감이 가는 기사를 하나 꼽는다면, 일본에서는 코로나19 종식 이후에도 마스크를 착용하겠다는 비율이 80%에 달하며 일명 ‘얼굴 팬티’라는 별칭도 생겼다는 것이다. 실로 요즘 실로 요즘 마스크와 물아일체가 되어가는 기분이었다. 처음에는 답답하게만 느껴졌는데 언젠가 나의 얼굴 일부를 가리고 다니다 보니 이제 선뜻 그것을 보여주기가 망설여진다.

물론 마스크에 불편을 느끼며 하루빨리 그것에서 벗어나고 싶은 부류도 없지 않다. 하지만 그 불편은 시각적인 차원은 아닐 것이다. 그러니까, 마스크를 계속 착용하려는 이유는 대개 얼굴을 가리면 타인과 대면하기가 쉬워졌다거나, 마스크 안에 숨긴 얼굴을 상상할 수 있다거나, 또는 그것이 드러났을 때 줄 수 있는 실망이라는 등 시각적인 차원의 문제다.

마스크를 쓰면 더 예뻐 보인다는 것에서 ‘마기꾼’(마스크+사기꾼)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났다. 이는 어쩌면 좋은 것만 보여주려고 한다는 점에서는 씁쓸한 문제일 수도 있다. 그러니까, 개인의 프라이버시가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지만, 가령 큰 범위에 적용될 때,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어쩌면 진실과는 멀리 떨어져 있는, 누군가가 이미 정교하게 만들어놓은 ‘보여주고 싶은 것’일뿐이라는 얘기다.

그리고 그러한 결과로 지금의 불신을 조장했을 것이다. 단적인 예로 언론기사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객관적인 사실이 우선시되기보다 매체의 특성에 따라 각기 보여주려는 것을 말하기에서 심해져 이제는 허위사실이나 추측으로 가득하다.

빌 게이츠는 2022년 가장 우려되는 일로 정부에 대한 불신을 꼽았다. 불신에 관해서라면 그렇게 새로운 얘기는 아닌 것 같다. 1957년 박경리 소설의 제목도 ‘불신시대’가 아니었던가. 이제는 불신에 대한 해결책이 필요할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 개인과 사회 사이, 그리고 나라와 나라 사이 신뢰는 필수불가결이다.

사회 전체의 신뢰가 없으면 그 사회의 경제발전은 한계에 부딪히고 말 것이며 사회적 제도의 성공적인 실행은 신뢰와 결합할 때 효과적이라는 분석을 보여준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저서 『트러스트』를 들먹이지 않아도, 이제 불신은 그만, 신뢰의 회복이 시급해 보인다. 꽁꽁 얼어붙어 있는 것들이 사르르 녹는 날이 오려면 말이다.

필자소개
경희대학교 국문과 현대소설 박사 재학 중, 재한동포문학연구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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