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송칼럼] 만나면 따뜻해지는 사람들
[이계송칼럼] 만나면 따뜻해지는 사람들
  • 이계송(재미수필가)
  • 승인 2022.01.25 08: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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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미니카 꼰대거리

만나면 마음이 따뜻해지는 사람들이 있다. 추운 겨울 화롯불을 안고 있는 것처럼. 최근 나는 그런 친구들과 두 번째 도미니카 여행을 하며 화롯불을 만끽했다. 행운이었다.

도미니카는 멋진 관광지지만 국민들은 아직도 가난하다. 그래서 여행자들과 현지인들의 모습이 극명하게 대조된다. 돈을 뿌리며 즐기는 사람들과 부러운 눈으로 이를 보면서 돈 이삭을 줍는 사람들, 같은 인간이지만, ‘있고’ ‘없는’ 간극이 슬프게 느껴진다.

도미니카 수도 산토도밍고의 유적지, 콜롬버스 광장을 끼고 있는 문화유산지 ‘꼰대거리’는 관광 필수 코스다. 우리 일행 중 J선배는 한 때 이곳 쇼핑거리에서 4년여 장사를 한적이 있었는데, 이곳을 걸을 때면 여기저기서 J선배의 이름을 큰 소리로 부르며 달려오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장사 시절 사귄 현지인 친구들이다.

이들 가운데 라파엘은 J선배가 오랫동안 형제처럼 보살펴주었던 사람이다. ‘꼰대거리’에서 좌판대를 놓고 30년을 시계수리공으로 가난하게 살아왔다고 한다. 우리 일행이 유명 레스토랑 <Grand’s Cafeteria & Bar>을 향해 가는데, 지난번 여행 때처럼 라파엘이 J선배를 알아보고 뛸 듯이 기뻐하며 달려왔다. J선배는 그를 반갑게 맞으며 우리 일행과 함께 식당 테이블로 앉혔다. 우리는 라파엘과도 함께 담소하면서 음식과 드링크를 즐겼다. 그런데 J선배는 음식을 충분히 시키고, 남은 음식은 라파엘이 쌓아 가도록 배려했다. “집에 가져가면 식구들이 한 끼를 먹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J선배는 가는 곳 마다 따뜻한 장면을 보여준다. 도미니카 북쪽 시에네갈 지역은 우리나라로 치면 설악산 국립공원에 해당된다. 이곳에 장가를 든 한국 청년 사업가 덕에 이번에도 들렸다. 인근에는 대부분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J선배는 이곳 사람들에게도 인기가 높다. 마을에서 작은 ‘꼴마도’(구멍가게)를 운영하는 가족을 꼭 찾아 가, 그 집 귀여운 꼬마 아이들을 안아주고, 놀아주고, 사탕을 사주는 등 인자한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준다.

시계수리공 라파엘과 함께

여행을 마치고 귀가 하던 날 아침에도 J선배의 따뜻한 모습을 보았다. 새벽 산보길이었다. J선배가 갑자기 빵집에 들리더니 빵 세봉지를 사들고 나왔다. 그리고 꼰대거리를 지나면서 주인이 없는 라파엘의 시계수리 좌판 의자에 봉지 하나를 걸어 놓는 것이었다. 나머지 두봉지는 길거리에서 만난 도미니칸 친구에게 건네주었다. 어찌나 가슴이 찡했는지 모른다. 가난한 사람들을 항상 긍휼히 헤아리는 마음, 그 속에 행복이 있다.

일행중 S후배도 식당, 골프장, 호텔 등에서 종업원들에게 팁을 듬뿍듬뿍 주는 따뜻한 친구다. 우리가 너무 많이 주면 버릇이 된다 해도 괘념치 않는다. 일상에서의 습관적 나눔이 그의 삶의 방식이니까. “우리에게는 몇푼 안 되지만 그들에게는 아주 요긴하게 쓸 수 있는 돈이 아니냐?”는 것이다. 안내를 해준 현지 동포 C사장도 가난한 사람들에게 넉넉한 분이었다. 마음이 따뜻한 사람들은 행복하다.

한 때 잘 나갔던 일본 관광객들의 모습이 갑자기 떠올랐다. 그때 그들은 “경제 동물” 소리를 들었었다. 세계여행 부자가 된 한국인들의 오늘의 모습을 그들의 거울을 통해서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보았다. 큰 나눔만이 나눔인가. J선배와 같은 잔잔한 감동의 나눔, 그게 물결로 이루어질 때 우리가 다른 민족들과는 달라 보일 거라 믿는다.

‘사랑’을 귀금속처럼 입에 담고 사는 사람들이야 쌔고 쌨다. “인류 사랑”을 습관적으로 외치는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왜 그들의 입이 공허한가? J선배와 같은 감동이 없기 때문이다. ‘사랑’이란 단어가 ‘동사’가 아니라 ‘형용사’로만 그치기 때문이다. 위대한 사상가 로망 롤랑은 “사랑은 자기 희생일 때를 빼고는 사랑이라고 부를 가치가 없다”고 말한다.

필자소개
이계송/재미수필가, 전 세인트루이스한인회장
광주일고, 고려대정치외교학과졸업
저서: <꽃씨 뿌리는 마음으로>(에세이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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