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송칼럼] 뉴저지의 ‘우리 춤꾼’, 김미자 전통예술 아카데미 원장
[이계송칼럼] 뉴저지의 ‘우리 춤꾼’, 김미자 전통예술 아카데미 원장
  • 이계송(재미수필가)
  • 승인 2022.01.28 10: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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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평생을 우리 전통춤을 생명으로 여기며 살아”
“이제는 동포사회에 공헌하고 싶어”

“뉴욕과 뉴저지는 제2의 고향입니다. 마지막 생을 제가 갖고 있는 재능기부를 통해, 이곳에서 우리 민족의 전통춤이 뿌리내리는 데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동포사회에도 끼가 있는 분들이 많지요. 나이가 들어도 자기 끼는 어쩔 수 없는지, 그 끼를 발휘하고 싶어해요. 그런 분들과 함께 하고 싶습니다.”

칠순의 나이이지만 김미자(70, 미국명 Lena) 원장은 아직도 젊음이 넘친다. 골프 실력도 싱글이다. 지난 10여년간 한국의 전통예술 무대에서 주로 활동하다가, 작년에 다시 미국으로 돌아왔다. 현재 뉴저지 팰리사이드팍 브로드 스트리트에 ‘김미자 전통예술 아카데미’를 오픈하고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버겐 카운티 ‘코리언 커뮤니티 센터카운티, KCC’에서도 전통춤 레슨으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경북 영해가 고향인 김 원장은 평생을 ‘춤꾼’으로 살아왔다. 포항에서 유치원을 다닐 때부터 무용학원을 드나들었고, 중학교 때 대구의 ‘김경자 무용학원’에 입단, 발레와 고전춤을 배웠다. 그 당시 이미 “빛을 향하여…”란 주제의 작품으로 수상을 하기도 했다.

1950년대 가난한 한국이었다. 춤을 배웠다면 가정이 부유했던가 보다. “부친께서 운수업을 하셨지요. 당시 ‘775 김종구’ 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었어요.” 김 원장은 이렇게 답하면서 “어머니께서 맏딸인 저를 끔찍히 사랑해주셨기에 가능했다”고 덧붙인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갔어요. 정능의 고 김천흥 선생님 학원에 입단해, 향발무, 살풀이, 승무, 구고무, 무당춤, 검무 등, 다양한 춤을 배웠지요. 그리고 국가 중요무형문화재 제15호 ‘북청사자놀음’ 보존회에 입단, 오랜 세월을 거쳐 10개 종목을 모두 연마하고, 이수자 시험에 합격했답니다. 저의 스승이 7년 전에 고인이 되신 이근화선 선생님이셨어요.”

고 이근화선 여사는 중요무형문화재 ‘북청사자놀음’ 명예보유자로서 보존회 회장을 역임했던 한국 문화계의 원로였다. “이근화선 선생님을 저는 ‘오마니’라 불렀습니다. 사실상 ‘양엄마’였지요. 제가 춤꾼으로 살아오면서 가장 존경하고 가까이했던 분이었으니까요. 선생님의 장례식, 노제를 지냈던 날 제가 뽑혀서 그분의 넋을 달래드렸습니다. 저승으로 편히 보내드리는 ‘한풀이 춤’을 추었어요. 그날이 제가 춤꾼으로서 최고의 절정감을 느꼈던 순간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김 원장이 성년이 되어 활동했던 1970년대가 전통예술에 대한 그의 열망이 피크를 이룬 때였다. 그리고 사회활동도 본격화한다. “종로3가 고 이은관 학원에 입단, 고 김순택 선생님으로부터 ‘민요’를 사사 받았지요. 그리고 대외 공연활동도 열정적으로 시작했어요. 1977년에는 제주도에 내려가 ‘김미자 무용학원’도 운영하면서, 다양한 단체활동에 참여했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미국으로 이민을 왔어요. 뉴욕 영사관에 근무했던 남동생의 권유로 모든 형제자매들이 1983년 미국으로 온 겁니다. 그리고 결혼도 하고 아이들을 키우는 이민생활 동안 20여년 넘게 춤에 대한 열정을 접고 살았지요.”

슬하에 1남1녀 그리고 손주를 두었다. 60대 초로의 나이에 김 원장은 다시 춤에 대한 열정을 품게 되는 새로운 계기를 만나게 된다. 한국의 저명한 무용가로 영남의 춤의 맥을 이어가고 있는 박경랑 선생과 인연을 갖게 된 것이다.

“박경랑 선생은 특히 영남교방춤의 대가시죠. 나이는 저보다 한참 아래지만 그분을 만나면서 제 안에 춤꾼으로서 열정이 아직도 살아 있었다는 것을 다시 확인했고, 그분이 그 열정에 불을 붙여주셨어요.”

2014년, 김 원장은 ‘박경랑 영남 교방춤 보존회’ 미동부지부협회장으로 맡게 된다. 이때부터 김 원장은 박경랑 무용가가 기획하고 주도해 한국 문화계에서 크게 호평을 받았던 ‘심중소리’ ‘인생’ ‘무도회’ ‘예인열정’ 등 공연무대에 박선생과 함께 섰다.

“박 선생과 만나면서 지난 10년 동안 주로 한국에서 활동을 했습니다. 국립극장과 같은 큰 무대에서 정말 많은 경험을 했어요. 또한 새로운 춤도 사사 받았고요.”

김 원장은 춤뿐만 아니라, 우리소리 ‘창’에도 열정이 많다. 무형문화재 44호 ‘무등답교 선소리 산타령’의 전수자이기도 하다. 2015년도에는 이효연 명창과 ‘통일 아리랑’ 공연도 함께 한 바 있다. 2018년에는 임춘희 명창과 함께 ‘무등답교’ 공연이 있었는데, 김 원장이 ‘선소리산타령’을 전수자로서 함께 했다고 한다. 그밖에 경기민요 소리꾼들과도 수차례 공연을 해왔다고 덧붙인다.

김 원장은 인생 3막을 다시 미국에서 펼치고 있다. “지금부터는 본격적인 후배양성에 저의 남은 정열을 쏟을 작정”이라면서 “기본무, 성주풀이, 살풀이, 교방춤, 진쇄춤, 징춤, 영남북춤, 진주 교방춤, 국화의 향기춤, 강선영류 태평무 등을 이 미국 땅에도 뿌리내리도록 하고 싶다”고 덧붙인다.

인터뷰를 마치며 우리의 전통춤의 진수가 무엇인가 궁금했다. “내 몸의 모든 호흡을 들숨과 날숨으로 품어내며, 기와 한을 싣고, 이를 마음속에 담아, 무릎과 무릎이 붙여 다니면서 발목을 눌러 한발 한발 내딛는 동작이라고 배웠어요.” 김 원장은 이렇게 답하면서 “최근에는 전통춤을 넘어 대중이 쉽게 접하고 즐길 수 있는 ‘고고장구’를 중점적으로 가르치고 있다”고 덧붙인다.

“고고장구는 한국 전통 악기를 대표하는 타악기인 장구의 리듬과 현대적 안무를 새로운 박자로 재탄생시킨 것이지요. 요즈음 유행하고 있는 신나는 트로트 대중음악에 맞춰 장구를 치고 춤을 추며, 한국의 얼과 신명을 담아냅니다. ‘고고장구’는 즐거움은 물론 지친 몸과 마음을 다스림으로써 건강을 유지하고 스트레스 해소와 우울증 치료에도 도움이 됩니다.”

김 원장은 ‘한국고고장구진흥원’이 발급한 1급 지도사 자격증도 보유하고 있다. ‘김미자 전통예술 아카데미’의 문은 우리 전통춤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늘 열려있다는 게 김 원장의 말이다.

필자소개
이계송/재미수필가, 전 세인트루이스한인회장
광주일고, 고려대정치외교학과졸업
저서: <꽃씨 뿌리는 마음으로>(에세이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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