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대성칼럼] 단재 다시 보기와 2022 대선 – 보수와 진보를 넘어서
[정대성칼럼] 단재 다시 보기와 2022 대선 – 보수와 진보를 넘어서
  • 정대성 문화 칼럼니스트
  • 승인 2022.02.22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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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대성 문화 칼럼니스트
정대성 문화 칼럼니스트

2월21일은 단재 신채호 86주기다. 선거 때만 깜짝 쇼로 애국지사인 양 열변을 토하고, 끝나면 돌아서서 온갖 사리사욕과 당파싸움에 여념이 없는 정치판인지라, 경선에 떨어진 이낙연 전 국무총리가 단재 생가를 다녀갔다는 소식도 무색해진다. 윤석열 후보, 심상정 후보보다 좀 늦지만 거의 동시기에 대학을 동경에서 다녀서 시대가 그런 시대라, 의열단 책을 내신 친한 대학 선배가 계시기도 해서 단재의 『조선혁명선언』을 읽었고, 그때의 전율은 늘 내게 엄숙한 자성을 다그친다.

군부독재 타도의 이론적 도구로 동학사상도 동원하던 한국 좌파들이 단재까지 재활하고 있구나 느끼면서도, 나는 단재가 극우였다가 극좌가 된 사상가(그 반대도 있음)로 이해했었던 걸 기억한다. 즉, 한국에서 좌파건 우파건 단재를 오독, 오해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음을 알아차린 까닭이다. 좌파 우파는 극좌, 극우로 갔다 다시 만나게 된다는 우스갯소리(일본 자민당) 같은 깊은 세상 이치를 알기나 하는 걸까 의아해할 정도로, 단재 평가는 헷갈리는 것이었고 지금도 그렇다. 한편으론 민족주의 사학의 창시자, 한국 민족주의의 비조로 모시면서, 다른 한편으론 조선아나키스트의 원조로 숭상한다. 지리멸렬하게 보이지만, 둘 다 단재인 것이고, 단재를 바라보는 우리가 지리멸렬한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조선혁명선언 100주년을 앞두고, 단재를 보는 시각들이 요새 한껏 엇갈린다.

예를 들자. 『반일 종족주의 –대한민국 위기의 근원』의 저자 중의 한 사람인 이영훈 교수는 「반일 종족주의의 신학」이라는 글에서 단재를 민족주의 신화를 만들어낸 장본인으로 깎아내리고 대놓고 비판했다. 『한국고대사와 사이비역사학』을 펴낸 젊은역사학자모임은 단재 자신의 단재 벗어나기가 있었다고 진단했다. 즉, 식민사학의 반동으로 생겨난 단재 사학은 민족을 추구하면 할수록 절로 식민사학의 논리를 따라가게 된다는 병리를 내재하고 있었고, 만년의 단재는 스스로 그것을 깨달아 무정부주의 쪽으로 선회했다는 것이다. 한편, 윤명철 교수는 단재의 직심, 직필 정신이 현시대 지식인들에게 환생하길 염원한다고 썼다. 단재의 민중정신을 이어가는 문맥에서 중국지역의 단재의 미확인 글들을 모으는 실증주의 업적을 남기시는 김주현 교수 같은 이도 있다. 현대에 사는 선비, 서울대 박희병 교수 또한 요새 한 인터뷰에서 실증과 속류 민중주의를 지양한 새 방법론을 강조하면서 사라져가는 민중주의의 입지를 아쉬워했다.

필자는 다음 몇 가지만 말하겠다. 첫째, 단재의 원점은 대한제국의 선비, 언론인인데, 세계자본주의는 개명된 지배세력을 원한다, 둘째, 그의 모티프는 서구, 일본 같은 근대국민국가이지만, 다민족 연방제국가로 나아갈 함의도 있다, 셋째, 일본의 중국침략과 패망, 중국의 공산화라는 커다란 세계사 흐름 속에 단재의 명암이 둘 다 있다, 등이다.

첫째, 『대한매일신보』『황성신문』의 주 논객, 주필이었음은 단재의 우파적 성향을 잘 말해준다. 당시 애국계몽이란, 대한제국 고종황제를 받들고 양반 기득권을 옹호하면서 여러 근대화 개혁들을 추진해 부국강병을 이루자는 것이었고, 국한문혼용이라는 문체에 그 체질이 상징되고 있던 셈이다. 전자는 한글전용, 영문판도 있었으니, 대한제국도 민중계몽하고 근대국가를 만들어갈 것임을 전 세계에 알리고자 하는 의도다. 실은 단재는 통감부로부터 주목을 받아, 그들이 추진하는 양반 포섭 정책의 주요인물로 이용당할 뻔 한 흔적도 보이고, 세계자본주의 입장에서도 역시 단재 같은 개명된 토착지배층이 필요했다. 독립협회의 분열, 서재필의 미국 망명, 윤치호의 우유부단함, 대한제국 멸망, 이승만의 외교노선의 미지근함 등은 단재의 국수민중주의로의 접근을 가속화시켰다고 볼 수 있겠다. 단, 우리가 단재의 보수성, 진보성을 왈가왈부하기 전에, 세계자본주의의 논리는 그것들을 둘 다 써먹으려고 이미 작정해놨음을 알아야 한다.

둘째, 단재의 유명한 ‘아와 비아의 투쟁’은 민족을 한 단위로 한 근대국민국가를 이룩하기 위한 이론작업이었다고 알려져 있지만, 단재의 고조선 연구, 만주 연구에 입각해서 볼 때, 그의 ‘아’는 가령 우리 민족만을 지칭했던 것일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고조선의 광활한 영역은 사실상 다민족이 살고 있었고, ‘환국(한국)’은 다민족 연방제 국가였다. 현대한국인들은 ‘한’을 한반도 남쪽 부족 국가들로 국한시키기 때문에, 단재의 ‘아’ 또한 그 정도로 보는 근시안적 병폐를 알게 모르게 앓고 있다고 할 때, 단재의 무정부주의의 내적 논리의 적극성을 놓칠 수 있다. 즉, 고구려만 해도 단일 정부, 단일민족국가 아니었고, 부족마다의 자치를 인정하고 연합하고 회의하는 이른바 몽골제국, 소비에트(대표자평의회), 미합중국 같은 나라였던 것이고, 장차 우리가 미국과 함께 대륙진출하고 미합중국 같은 큰 나라를 세우려고 할 때 꼭 필요한 개념이다

셋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재에게 모자랐던 것은 필자가 춘원을 논하면서도 지적한, 바로 그 세계사 인식, 국제감각이다. 단재가 장개석의 대만에서 체포되어 노일전쟁의 아수라장, 안중근 의사가 사형당한 뤼순에 투옥됐다는 것도 상징적이다. 이승만의 나쁜 면들을 너무 잘 알거나 잘 꿰뚫을 줄 알기에, 그와 동참할 수 없었고, 김원봉과 손잡음은 시류의 탓일 수도 있지만, 국제정세가 복잡하게 돌아가는 아시아에서만 놀고, 어째서 세계로 웅비할 생각을 못 했을까? 즉, 중국판 동인도회사, 아편전쟁으로 망하고 정체불명 자금이 난무하고, 모택동, 장개석이 세계자본주의 논리에 놀아나고 있음을 간파하지 못하고, 세계가 일본에 올가미를 씌우려는 땅 중국에서 자유주의요, 공산주의요, 무정부주의요 하는 게 아니라, 미국대학에 가지는 못할망정, 조소앙 정도라도 열린 마음으로 서양을 제대로 공부했으면 우리 민족과 인류에게 한층 더 유익한 저서들을 많이 남기시지 않았을까? 그것이 단재의 시국판단의 실수라고 평한다면 너무 과한가?

2022 대선의 엄숙한 이 시기에, 단재의 교훈을 우리 정국에 대입시키면 어떻게 될까? 더불어민주당은 단재의 민중주의를 계승, 발전시킬 당이니 기대가 크나, 민생의 관점에서는 정의당이 정책평가 점수가 높다. 그러나, 현대정치는 외교를 빼고 평가할 수 없다. 민주당이 너무 반미반일친중으로 빠진 걸 보면, 단재의 시국판단의 실수를 연상케 한다. 한편, 국민의힘당은 보수정당이나, 단재 같은 정통보수 정신도 잃어버린 지 오래됐음에도 불구하고, 좌우 상관없어하는 세계자본주의 논리에 잘 적응한 김대중 전 대통령의 흐름을 받아들이고, 과거 국가권력이 민중에게 저지른 과오에 대해 반성하고, 젊은 세대를 수혈받고도 있어, 윤 후보 당선 가능성이 큰데, 여소야대의 어려움이 예상된다. 위에서 봤듯이, 진보요, 보수요 하는 것이 출발지와 행선지는 같다면, 윤 후보가 당선됐을 경우, 국민의힘당은 타당의 의원들이나 정치가들을 포섭할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러면서, 좌파 우파를 잘 아우른 일본의 자민당처럼 거대 여당을 형성해, 신학철학 정도는 아는 우수한 관료들, 외부인사들과 열린 마음으로 합작한다면, 장기 집권할 길도 있으리라.(법조계, 수사당국이 김병로 같은 품위를 되살리고, 서양에서는 법학이 신학보다 아래임을 알고, 하찮은 보복행위는 삼가서 화해와 단합을 이뤄내야 한다.)

암튼, 분열된 국론, 민심이 다시 하나 되고 우리나라가 국제사회로 웅비할 필요가 있다고 할 때, 단재의 넋을 기리며 이 대선 시국에 단재 다시 보기를 몇 자 적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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