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대성칼럼] 한일 연극 교류 속의 보수와 진보
[정대성칼럼] 한일 연극 교류 속의 보수와 진보
  • 정대성 문화칼럼니스트
  • 승인 2022.03.01 0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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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대성 문화칼럼니스트
정대성 문화칼럼니스트

새 연도의 시작에 이것저것 생각들이 난다. 지난 2월에 한일연극교류센터가 그 20년에 걸친 활동을 끝내 다시 새 출발 할 것을 기약한단다. 이 센터는 김대중 대통령 시절, 한일공동개최 월드컵의 해인 2002년부터 한국과 일본을 번갈아 가면서 한국현대희곡 낭독 공연을 해왔는데, 필자도 2007년에 이현화 작가의 부조리극 희곡 <0.917>을 일본어 번역했고, 동경에서 열린 그 낭독극 행사를 관람하러 간 기억이 난다.

기억난다고 한다면, 지난 3.1절 90주년에 필자가 각본을 쓰고 상연한 <두렁바위의 불꽃> 또한 생각난다. ‘두렁바위’란 제암리의 뜻이고, 1919년의 학살사건을 뮤지컬로 형상화해, 마당극과 무대극으로 상연했다. 그때 필자가 일본의 연출가와 배우들을, 일본군인과 양심적 일본인 역할(3.1운동에 이해를 표시한 일본인교사, 또는 선교사가 모델)로 초청했다.

일본군인 역은 스테레오타이프이지만, 양심적 일본인 역은 한국에 없진 않았으나 극히 드문 주제가 돼 있었다. 다행히 그동안 영화 <박열>에서 카네코 후미코, 후세 타츠지 등이 그려졌고, 영화 <백자의 사람>이 아사카와 타쿠미를 다뤘다.

그런데, ‘양심적 일본인’이라는 개념은 어렵긴 어렵다. 필자가 연구한 ‘일본신극운동의 아버지’ 무라야마 토모요시를 예로 들자. 그는 노일전쟁의 군의였던 부친에 대한 반동으로 원시기독교에 감화되고 반전주의자, 진보주의자가 됐고, 독일에 유학 가, 황색인종 차별도 당하고, 그곳 표현주의 미술, 연극에 영향받으면서 프롤레타리아연극운동에도 끌려, 국제공산주의운동의 일환으로 일본에 좌파연극운동을 전개했다. 20세기 초 일본에서 전통극, 신파극에 대항해 신극이 서양 연극의 수입과 모방, 개량모색에 그치고 있던 때에, 확실한 민중주의를 내세워 대중적 인기를 얻는 바람에, 하극상이 일어났다.

그런 무라야마를 비롯, 그들, 진보적, 양심적 일본인들은 재일조선인들의 차별상황에 대한 동정에 그치지 않고, 계급차별 폐지의 관점에서 공동보조를 취하기까지 했다. 예컨대, 1923년의 관동대진재 때 조선인 대학살 시에 조선인들을 보호해줬고, 한국독립운동에 이해를 표시해 일본제국주의를 반대하여 함께 싸우기도 했다. 물론, 일본 좌파운동 내부에 민족차별이 은근히 존재했고, 간첩사건 등도 빈번했다. 하지만, 그들이 서구유학 등으로 습득한 고도의 예술적 감각, 미학, 철학, 무대기술, 극작술, 연기술 등을 아낌없이 조선연극인들에게 전수해준 것은 훗날 한국현대문화발전에 이바지한 바가 컸다.

최승희, 임화, 안영일, 박영인(쿠니 마사미), 배구자(무용가), 조택원, 김동원 등등이 그들과 교류하면서 많은 영양을 흡수했다. 사상적으로 좌파에 물들여져 있었기에, 그들 중 상당수는 북한으로 갔지만, 조택원, 김동원 등 한국에서 활약하신 분들도 계신다. 필자는 서울에 와서, ‘한국현대무용의 아버지’ 조택원의 따님을 만났고, ‘영원한 햄릿’ 김동원을 뵙고 인터뷰를 진행한 적이 있다. 또한, 북한에서 그들의 흔적을 찾아보려고 통일부에 북한방문을 신청해 승인을 받은 바 있었지만, 여러 상황상 실현하지 못했다.

원래, 필자의 연구동기는 그러한 교류가 한국문화발전에 공헌하고, 조선해방을 도와줬던 것을 그들의 양심에서 나온 것으로 알고 감사하며 빚을 갚고 싶어서였다. 그런데, 필자가 무라야마 연구를 두꺼운 책 한 권 정도 분량으로 축적해갔을 무렵, 일본에서 한 일본인평론가가 필지에게 전자메일을 보내왔다. 필자가 일본어로 발표한 한 논문을 읽었는데, 필자를 만나고 싶다는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동경 출장 시에 그를 만나서 토론했다. 그에 의하면, 무라야마가 뛰어난 문화운동가였음은 맞지만, 그 활동의 돈줄, 배경에 관해서 생각해본 적이 있느냐? 했다. 즉, 당시 좌파 운동에는 소련의 자금이 흘러 들어가고 있었는데, 그런 사실을 전제하지 않으면 핵심을 놓친다는 것이다. 과연, 무라야마는 일본공산당원으로 활동했고, 복잡한 국제정세가 얽혀있었음은 심증이 간다.

그래서 필자는 두꺼운 무라야마 연구서를 출판도 하지 않고 접어버렸다. 핵심이 빠졌기 때문인데, 그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무라야마 자신도 말년에 깨달았던 것 같다. 그의 말년의 걸작인, 대하소설 시리즈, <시노비노 모노(닌자)>의 숨은 주제이다. 즉, 닌자들이 자기 조직을 위해 안군, 적군으로 나뉘어 싸우는데, 각각의 우두머리들은 서로 내통하고 있다는 아이러니 속에 죽어나가는 닌자들의 얘기가 펼쳐진다. 좌파우파로 갈라지고 서로 싸우고 있지만, 결국 ‘우두머리는 하나’라는 진리에 도달한 것이다.

그런 통찰에서일까, 무라야마가 좌파연극, 신극에만 몰두한 게 아니고, 전전에 기획했었던 일본어 <춘향전> 기획을 한일국교정상화 후에 실현시키기도 했다. 참고로, 무라야마의 회상에는, 정치판에 뛰어든 조택원이 공산당원인 자신과 연락 끊었음을 아쉬워하는 대목도 있다. 문화교류 가운데, 냉전시대의 문화단절의 한 토막이다.

이러한 단절은 지금도 남아있는 것 같다. 모두에 언급한 한일연극교류센터와 함께 오랫동안 문화교류를 지속해오고 있는 한일문화교류회가 있다. 전자가 현대희곡 작가 소개에 주력했다면, 후자는 한일의 전통문화까지 포함한 법고창신 식 교류방식을 모색해왔다. 현대희곡들이 진보적 성격이 짙은 데(단, 한국은 전통문화를 활용한 작품들이 많다) 비해, 전통문화는 보수적이다. 그래서 그런지, 두 단체가 무대공연을 합작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후자는 학술심포지엄도 곁들여서 하면서, 일본 전통무용의 원조 격인 백제인 미마지(600~641)부터 내려오는 카부키, 노, 라쿠고 등 다양한 일본 전통문화의 한국 소개도 하고, 제천의식을 지내고 음주가무를 좋아한 고구려부터 내려오는 한국의 전통문화를 바탕으로 한 신작 무용 등도 일본에 소개했듯, 전통을 현대에 되살리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데, 일부 호사가들의 모임처럼 돼 있어, 크게 홍보도 안 돼있음은 아쉽다(단, 일본 섹시 스타여배우, 마츠자카 케이코가 주연하여 신라 사신, 만엽집 등의 얘기를 담아낸 작품은 서울의 국립극장에서 상연됐고, 관객도 많고 훌륭한 무대였다).

물론, 드라마 <주몽> <태왕사신기> <선덕여왕>등 TV의 힘이 크지만, 한류의 근대의 원류의 하나인 무라야마의 일본어 <춘향전>이 지금 다시 무대화되면, 한일간에서 전통과 현대가 서로 소통하는 작품들 중 하나가 될까? 그 작품은 원작 같은 해피엔딩이 아닌 비극이다. 그가 서양연극이론과 일본전통극에 정통한 나머지, 또 당시 한국사회상에 빗대어 도출되어진 결과물이다. 1970년대 일본 공연에서 평가 받지 못했지만, 그 특이한 <춘향전>을 재음미해보고 싶기도 하다.

왜냐하면, 한일 전통문화의 조화의 무대화일 수도 있고, 서양연극의 시원인 희랍연극이 시민생활의 공중적 의견교환의 전시장, 경기장이자, 신에게 인간의 운명을 묻는 신성한 기도소였다고 할 때, 극악무도한 권력자에 의해 투옥되는 우리 성춘향이를 암행어사 이도령이 구해내지 못한다는 것은 현대한국사회의 부조리를 신에게 힐문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며칠 뒤면, 새로운 한국대통령이 탄생되는데, 무모한 권력의 폭주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미에서, 또 한일간, 나아가 남북간 교류, 전통과 현대, 보수와 진보의 소통의 한 시도가 될까?

암튼, 우리나라의 제천의식, 탈춤, 나례, 사물놀이, 승무, 이야기(구비문학), 다도 등의 부활, 계승과 이미 잘 보전돼있는 일본 전통문화와의 교류 등, 한일고대사, 고조선 등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필자도 구상 중)를 제작하는 등등, 할 일은 얼마든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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