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조의 맛과 멋을 소개하고 창작을 북돋우기 위해 연재물로 소개한다. 고시조와 현대시조 각기 한편씩이다. 한국시조협회 협찬이다.[편집자주]
* 고시조
다정가
- 이조년
이화(梨花)에 월백(月白)하고 은한(銀漢)은 삼경(三更)인데
일지 춘심(一枝春心)을 자규(子規)야 알랴마는
다정(多情)도 병(病)인 양 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
이조년(李兆年, 1269∼1343)은 고려 말의 명신이자 학자이다. 이 시조는 ‘하얗게 피어난 배꽃에 밝은 달이 비치어 꽃은 더욱 희어 보이고, 우러러 은하수의 위치를 살피니 한밤중인데,/ 이 배꽃가지에 서려있는 임을 그리는 마음의 봄뜻을 어찌 소쩍새 따위가 알랴마는/ 내 이렇듯 자연을 향한 다정다감함이 무슨 병과 같아서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구나!’ 하는 시조로 인간의 자연을 향한 공감을 바탕으로 쓴 이 작품은 봄날 밤의 애상적인 정취가 잘 표현되어 있다.
* 현대시조
심부름
- 서우승
미래사 가는 길에 내생(來生)만한 꽃을 만나
스치는 눈인사에 절이 한 채 생겨나서
심부름 까마득 잊고 소풍(逍風) 속에 노닌다.
서우승(徐愚昇, 1946-2008)은 통영시에서 태어나 1973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문단에 나온 시인이다. 꽃철에는 심부름도 소풍이다. 특히 '미래사'로 가니 놀라운 소풍이다. 미래로 심부름 나서는 소풍길이다. 어쩌면 우리 삶도 이승으로 잠시 나온 심부름, 멀리 보면 한때의 찬란한 소풍이 아니겠는가. 삶을 소풍으로 생각하는 그 유유자적하는 모습을 보이는 이 시조는 존재의 달관으로 세속을 초탈하는 모습이다. 미래사 가는 길은 인생길의 비유다. 그 길에서 ‘내생만한 꽃’을 만나 존재의 허무와 슬픔을 딛고 달관으로 만난 ‘새로운 삶’이라는 ‘절 한 채’를 만난다. 고도의 상징과 은유적 표현이 깃든 선문답 같은 시조로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 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