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로㉙] 여행으로 아프리카 대륙의 편견을 깨다- 윤준성 트래블두 대표
[아프로㉙] 여행으로 아프리카 대륙의 편견을 깨다- 윤준성 트래블두 대표
  • 윤준성(트래블두 대표)
  • 승인 2022.03.17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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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PRO’는 국내 아프리카 전문가들의 모임이다. 외교부 한·아프리카재단에서는 이들의 활동을 소개한 책을 두 권 펴냈다. ‘Af-PRO, 한국과 아프리카를 잇다’는 제목의 단행본들이다. 한·아프리카재단의 허락을 받아, 이 책의 내용을 연재한다.[편집자주]

일간지 사진기자 출신의 윤준성 ‘트래블두(Travel Do)’ 대표는 서른이 되기 전 아프리카 여행을 꿈꿨다. TV 프로그램 <동물의 왕국>을 보며 유년 시절부터 꿈꿨던 야생 동물을 직접 보고 이를 카메라에 담고 싶었기 때문이다. 다소 무모하지만 꿈을 이루기 위해 직장을 그만두고 아프리카 여행길에 오른 윤준성 대표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10년 동안 아프리카 여러 국가들을 자주 오갔다. 열 손가락이 부족할 정도로 아프리카 여행 경험이 차곡차곡 쌓였다.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었음에도 아프리카 대륙이 여행지로서 지닌 매력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고군분투한 그는 끝내 그 활동을 업으로 삼기로 했다. 그 결과 윤준성 대표는 선풍적인 인기를 끈 tvN 예능 <꽃보다 청춘 아프리카>편에 소개되어 큰 관심을 받은 가이드북 <동·남 아프리카 여행백서(박예원 작가 공저)>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아프리카 여행을 구체적으로 꿈꾸게 했는가 하면, 아프리카 여행 컨설팅 회사 트래블두를 설립해 실질적으로 아프리카 여행의 길잡이가 되어주고 있다. 그는 여러 경험을 통해 아프리카 대륙을 향한 그릇된 인식을 개선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여행이라고 굳게 믿는다.

젊은 날의 버킷리스트

사회에 일찍 나왔다. 대학생 기자로 활동하다가 공석이 생겨 자연스럽게 취직했다. 어린 나이에 일간지 사진기자가 되어 삼촌, 아버지뻘 되는 선배들과 경쟁하는 일은 만만치 않았다. 정치부에서 연예부로, 연예부에서 스포츠부로 옮겨 다녔다. 현재를 즐기지 못하고 미래도 그리지 못한 채 쳇바퀴 돌 듯 무한 반복되는 일상에 지쳐갔다. 이대로 안되겠다 싶어서 목표를 세웠다. 서른이 되기 전 아프리카 대륙 혹은 쿠바, 알래스카 중 한 곳은 꼭 가리라고 다짐했다. 언뜻 공통점이 없어 보이는 이 세 곳은 사진가로서 내가 꼭 카메라에 담아보고 싶은 지역이었다. 

탄자니아
탄자니아

회사를 그만둘 준비를 하며 생각에 잠겼다. 어디를 갈까. 일단 알래스카는 물가가 너무 높았다. 자연 환경이 특수하다 보니 경비행기를 타야 하는 등 경비도 만만치 않아 보였다. 빠르게 쿠바로 시선을 돌렸다. 그런데 하필 그때 아이티 대지진이 일어나 미주대륙 전체가 어수선했다. 유일하게 남은 선택지는 아프리카라는 광활한 대륙이었다. 때마침 남아프리카공화국(남아공)에서 월드컵이 열리기 직전이었다. 스포츠부 사진기자이기도 했지만 스포츠 중에서도 축구를 특히 좋아했기에 남아공을 중심으로 아프리카 국가들을 둘러보기로 결심했다. 

나는 겁이 없는 편이다. 남아공에 가며 남들이 품었을 괜한 걱정을 나는 하지 않았다. 대신 치기 어린 마음으로 ‘어떻게 털릴지’를 거듭 상상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정말 무지했던 것 같다. 우선 아프리카에 가면 무조건 도둑을 맞는다는 허무맹랑한 생각을 전제로 깔고 있었으며, 설상가상으로 도둑맞는 과정을 내심 심각하게 그리기도 했다. 참고로 지난 10년간 아프리카 대륙을 빈번히 오가며 불미스러운 일을 딱 한 번 겪었는데, 그것도 내가 부주의해서 벌어진 일이었다. 

그 이야기는 차차 하고, 처음 내가 세운 계획은 한 달 동안 남아공에서 출발해 나미비아, 보츠와나, 잠비아, 탄자니아, 케냐로 갔다가 다시 남아공으로 돌아와 월드컵 경기를 관람하는 것이었다. 나미비아, 보츠와나, 탄자니아에서는 사파리를 즐길 참이었다. 유년 시절 TV 프로그램 <동물의 왕국>을 보며 꿈꿨던 야생을 실제로 보고 카메라에 담을 생각에 가슴이 벅찼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나미비아에서는 기대만큼 다양한 동물을 보지 못했다. 한풀 꺾일 법한 기대감이 보츠와나에서 서서히 충족되더니 탄자니아에 위치한 세렝게티 국립공원(Serengeti National Park)에서 폭발했다.

케이프타운
케이프타운

세렝게티 국립공원을 둘러보려면 무조건 투어 프로그램을 신청해야 했다. 나는 세렝게티에서 보낸 시간이 무척 만족스러워 3박4일의 투어 일정이 끝나자마자 다른 프로그램을 신청해 다시 세렝게티에 들어갔다. 우리와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야생 동물의 삶을 들여다보는 일은 묘한 감동을 안겼다. 그들의 모습을 보며 고대에 야생을 영위했을 인류가 어떻게 지금과 같은 문명사회를 구축했는지 상상해보는 일은 꽤나 흥미로웠다. 

동시에 반대로 그 안에서 취약하여 도태되는 동물을 보며 현재 동물과 인간이 처한 처지가 전혀 다르면서도 한편으로는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명화로 인해 편리한 삶을 살지만 여전히 약육강식의 법칙이 성립되는 가운데 사회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한 내 처지가 처량하게 느껴졌다. 나는 야생 동물이 구속되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해방감이 들었다. 사진가로서 손 뻗으면 닿을 거리에서 그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생생하게 담을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었다. 그때 처음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귀한 경험을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다고.

남아공이 안겨준 전화위복의 기회

탄자니아에서 야생의 삶을 엿보며 상상의 나래를 펼친 나는 예정대로 축구를 관람하기 위해 케냐를 거쳐 남아공으로 돌아왔다. 케냐에서 남아공 요하네스버그(Johannesburg)로 이동할 때 멋모르고 저렴한 항공권을 구입했다가 경유를 세 번이나 하는 최악의 경험을 해야 했다. 지칠 대로 지친 채 한밤중에 요하네스버그 공항에 떨어진 나는 순간 판단력이 흐려져 외국인 홀로 밤중 탑승을 피해야 할 미니버스에 냉큼 올라탔고 버스비가 있느냐는 운전사 무리의 질문에 아무 생각 없이 월드컵 티켓을 살 돈을 꺼내 보였다. 돈을 다시 주머니에 집어넣으며 순간 내가 지금 무슨 짓을 자초했는지를 깨달았다. 상황은 예상대로 전개됐다. 

탄자니아
탄자니아

요하네스버그는 아프리카에서도 가장 범죄율이 높기로 유명하다. 그 도시에서 한밤중에 검증되지 않은 교통수단에 올라타 돈다발을 흔들었으니 이것은 명백한 내 불찰이었다. 그래도 불행 중 다행인 것은 그들 일행이 카메라 가방을 알아보지 못해 고가의 카메라 장비는 지킬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 사건이 내가 10년간 아프리카 국가들을 드나들며 유일하게 겪은 불미스러운 일이었다. 문자 그대로 빈털터리가 된 나는 당장 생존을 걱정해야 했다. 불현듯 지인이 코카콜라 응원단으로 요하네스버그에 와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무작정 코카콜라 응원단이 머무르는 숙소로 향했다. 수중에 돈이 한 푼도 없었던 나는 관계자에게 애걸복걸했다. 여독이 쌓인 몰골이 그날따라 내린 비로 더 처참해 보였을 터. 관계자는 나를 들여보내줬다.

정식 멤버는 아니지만 그날부터 응원단에 합류한 나는 특기를 살려 사진 촬영하는 데 열중했다. 한 축구협회 관계자의 눈에 그런 내 모습이 인상적으로 비쳤는지 그는 내게 정식으로 평가전을 촬영해보겠느냐고 제안했다.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내 가치를 인정받는 일인 동시에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이다. 열과 성을 다해 촬영했고 그 덕에 일정 내내 응원단과 함께 합숙하며 지낼 수 있었고 심지어 귀국한 후 대한축구협회에서 일하게 되는 뜻밖의 기회를 얻기도 했다. 경비를 번 나는 한국에 돌아갈 이유가 없었다. 원래 계획했던 여행 기간을 한 달에서 석 달로 연장했다. 

하루 있을 계획이던 지역에서 일주일을 머물렀고, 여행을 통해 만난 친구들이 내 계획에 없던 지역을 간다고 하면 따라 나섰다. 여담이지만 그 과정에서 절대 고쳐지지 않을 것 같았던 영어 울렁증이 많이 극복되었다.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나는 출국 심사 중 붙잡혔다. 알고 보니 남아공이 한국인에게 허용한 무비자 체류 기간은 한 달이었다. 그런데 왜 나는 그 사실을 몰랐는가 하면, 당시 서점에서 유일하게 발견한 아프리카 가이드북에 ‘3개월 무비자’라고 나와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안 사실인데 그 가이드북은 일본에서 발간한 책의 번역본으로 가장 중요한 기본 정보마저도 우리 실정에 맞게 편집되지 않았던 것이다. 억울했다. 귀국한 후 벌금을 지불하겠다고 사정한 끝에 귀국길에 오른 나는 이 일을 통해 아프리카 가이드북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남아공 월드컵
남아공 월드컵

남아공에서 도둑을 만난 일이 전화위복의 기회가 되어 한국축구협회에서 일하게 된 나는 그때부터 돈을 모으면 무조건 아프리카 대륙으로 여행을 떠났다. 정말 순수한 여행자의 마음으로 아프리카 대륙을 네 차례 다녀왔다. 그중 두 번째 아프리카를 찾았을 때는 이집트와 모로코를 목적지로 삼았다. 그런데 하필이면 내가 갔을 때 이집트에서 ‘아랍의 봄’ 시위의 물결이 번지고 있었다. 시위는 점점 격해지더니 폭력 사태로 번졌고 여행객들은 급히 이집트를 빠져나가는 분위기였다. 나도 빨리 안전한 곳으로 옮겨야 했다. 그런데 이때 내 속에 잠들어 있던 사진기자로서의 본능이 꿈틀거렸다. 시위 현장의 한복판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실시간으로 카메라에 담고 싶은 욕망을 잠재울 수가 없었다. 

군인들이 저지하자 종군기자라고 둘러댄 채 현장을 파고들어 쉴 새 없이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아프리카 여러 국가에서 말 그대로 사진을 셀 수 없이 많이 찍었지만, 아랍의 봄 시위 현장을 담은 사진만큼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없다. 그때 찍은 사진은 지금 봐도 가슴 깊숙한 곳에 내재된 무엇인가가 꿈틀거리는 기분이 든다. 나는 아프리카에서 돌아올 때마다 그 여행길에서 촬영한 사진을 추려 전시회를 열었다. <당신이 몰랐던 아프리카>라는 제목 아래 야생 동물 혹은 풍경 사진을 주로 전시했다. 전시회를 통해 사람들에게 아프리카 대륙에 빈곤, 기아, 전쟁 외에도 이렇듯 멋진 순간들이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주고 싶었다. 한편, 개인적으로 아랍의 봄 사진이 인상 깊었기 때문에 두 번째 여행을 다녀온 후 이를 주제로 전시를 열고 싶었으나 여러 외부적인 요인으로 인해 무산됐다. 야생 동물이나 풍경 사진보다 작가로서 더 애착을 느끼는 사진이었던 만큼 전시하지 못한 점이 지금까지 아쉬움으로 남아 있다.

TV에 등장한 나의 책, 나의 아프리카 여행 가이드북

아프리카 국가들을 여행하는 횟수가 늘수록 국내 실정에 맞는 여행 가이드북이 부재하다는 사실이 아쉬웠다. 당시만 해도 나는 아프리카와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었으나 우리나라 사람들이 아프리카의 가치를 몰라본다는 사실이 무척 서운하고 안타까웠다. 서점 진열대에 아프리카 관련 책들이 나열돼 있기라도 하면 사람들이 아프리카 대륙을 여행지로 인식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서점에 갈 때마다 매번 아프리카 가이드북이 나왔는지 살폈으나 좀처럼 그런 경우는 없었다. 그리하여 스스로 책을 내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국내에 아프리카 여행 시장이 없다시피 하다보니 출판사들은 아프리카 가이드북 출간에 관심이 없었다. 예전에 사진 촬영 기술과 관련하여 책을 몇 번 낸 적이 있는 나는 모든 인맥을 동원하여 출판사를 섭외하고 설득했고, 결국 한 출판사와 아프리카 가이드북을 계약했다. 

동남아프리카 여행백서
동남아프리카 여행백서

그런데 내가 그토록 주창해서 낸 책은 좀처럼 팔리지 않았다. 한 달에 다섯 권 팔릴까 말까 했다. 책이 완성되었을 당시 에볼라바이러스로 인해 인쇄소에서 인쇄가 밀리게 되었고 서점에서도 흔쾌히 받아주질 않아 진열이 어려웠는데, 그럼에도 끝까지 노력하신 출판사 사장님께 미안한 마음이 앞섰다. 나라도 100권씩 사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할 즈음 뜻밖의 상황이 전개됐다.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주연 배우들의 아프리카 여행기를 담은 예능 <꽃보다 청춘 아프리카>에 내가 쓴 가이드북 <동·남 아프리카 여행백서(박예원 작가 공저)>가 등장한 것. 주인공들이 아프리카 대륙을 여행하는 내내 내가 쓴 책이 길잡이 역할을 했다. 대중은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한 달에 다섯 권 팔리던 책이 500권씩 팔리기 시작했다. 덕분에 3쇄까지 찍을 수 있었다. 책이 많이 팔려 더 이상 출판사 사장님에게 미안한 감정을 가지지 않아도 되어서 좋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아프리카 여행을 구체화하는 데 일조한 듯하여 보람을 느꼈다. 더불어 이 가이드북은 내가 아프리카 관련 활동을 해나가는데 큰 디딤돌이 되기도 했다. 

나는 대중들이 아프리카에 관심을 기울이고 인식을 바로잡는 방법 중 여행만큼 효과적인 것이 없다고 여긴다. 이러한 생각은 아내를 보며 더 확고해졌다. 아내는 내 주변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아프리카에 관심이 없었고 아프리카 여행을 꺼렸다. 나는 아내를 겨우 설득하여 남아공, 탄자니아, 세이셸 코스로 신혼여행을 떠났다. 처음에는 못마땅해 하던 아내가 끝내는 나보다 더 아프리카에 애정을 갖기 시작했다. 특히 내 아내처럼 미식을 즐기는 사람에게 세계적 명성의 와인과 건강한 식재료로 조리한 음식이 넘쳐나는 남아공은 최적의 여행지가 아닐 수 없다. 

멸종보호동물초상화작업
멸종보호동물초상화작업

나는 아내가 신혼여행을 다녀온 후 사람들에게 강한 어조로 남아공과 탄자니아, 세이셸이 얼마나 좋았는지를 거듭 설명하는 모습을 보며 여행이 인식을 변화시키는 데 얼마나 효과적인지 재차 확인했다. 그래서 아프리카 여행 전문 컨설팅 회사 ‘트래블두’를 차렸다. 처음에는 좋은 취지에서 무료로 상담하고 여행 계획을 세워줬다. 그러나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해서 그런지 몇몇 사람들이 그 가치를 더 몰라주는 듯했다. 자원 봉사하는 마음으로 여행을 도와줬건만 현지에서 문제가 생기면 오히려 내게 연락해 책임지라며 따졌다. 물론 낯선 곳에서 뜻밖의 상황을 마주하면 많이 당황스럽긴 하겠지만 나로서는 억울할 따름이었다. 나도 컨설턴트로서 책임감을 다질 겸 유료 서비스로 전환했다. 

지금까지 정말 다양한 사람들에게 각자가 원하는 바를 반영하여 서로 다른 일정을 제안했다. 그중 나는 한 노부부를 잊을 수 없다. 은퇴하고 세계여행을 갈 계획인데 그 출발점으로 아프리카를 고려하고 있다며 나를 찾아왔다. 두 분이 지나온 세월을 충분히 보상받을 수 있도록 나는 럭셔리 기차 여행과 골프, 휴양을 엮어 가장 근사한 일정을 제안했다. 내 진심이 전달된 덕일까. 그분들은 다음 목적지인 유럽에서의 일정들을 모두 취소하고 아프리카에 계속 머무르기를 원했다. 나는 뛸 듯이 기뻐하며 그분들이 남은 일정 동안에도 아프리카 대륙의 매력을 충분히 발견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여행 계획을 세워줬다. 

세이셸
세이셸

트래블두를 통해 아프리카 여행을 다녀오는 사람들이 점점 늘면서 큰돈은 아니지만 금전적으로 이득이 조금씩 생기는 동시에 아프리카 대륙을 향한 올바른 인식을 갖도록 하는 데 기여하는 듯하여 큰 보람을 느낀다. 사실 금전적인 이득보다는 개인적인 만족감이 더 크다. 아프리카 대륙이 내게 안겨준 이점은 이뿐이 아니다. 사진가로서 입지를 다지는 데 있어 야생 동물 사진이 큰 역할을 했다. 동물을 촬영하는 분야에서만큼은 확실히 역량을 인정받았다. 실제로 남아공 크루거 국립공원(Kruger National Park) 내 위치한 동물보호구역은 개인의 드론 비행을 금지하고 있어 별도의 승인이 필요한데, 나는 정식으로 촬영 허가를 받았다. 국내 사진작가 중 이 촬영 허가를 받은 사람은 매우 드문 걸로 알고 있다. 그래서인지 캐논 아카데미 학생들이 내 이름은 몰라도 ‘아프리카 선생님’은 안다. 

소셜미디어를 보면 아프리카 국가들을 다녀온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 하지만 아프리카 여행 경험은 쌓이는데 콘텐츠는 여전히 부족한 실정이다. 나는 아프리카를 다녀온 사람들의 목소리를 한데 모으면 그것만으로도 이미 훌륭한 콘텐츠가 탄생하리라고 본다. 그래서 소셜미디어를 통해 아프리카 여행 경험이 있는 사람들에게 연락해 그들의 여행담을 토크 콘서트 형식으로 끌어내고 이를 영상으로 담는 작업을 하고 있다. 막상 영상을 유투브를 통해 공개하려고 하니 새로운 고민거리가 떠올랐다. 어떻게 하면 더 효과적으로 영상을 대중에게 노출시킬 수 있을까. 영상을 공개하기 이전에 그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는 일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여러 갈래로 고민하는 중이다. 

여력이 된다면 아프리카 여행과 라이프스타일을 전문으로 다루는 잡지를 정기적으로 출간하고 싶기도 하다. 아프리카가 여행지로서 충분히 매력 있다는 사실을 지속하여 노출하고 알릴 필요가 있다. 또 어려서부터 아프리카 대륙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가지도록 교육하는 동화책이 나오기를 바란다. 나도 나름대로 일조하기 위해 아프리카 여행 드로잉북을 기획하여 출간을 앞두고 있다. 한편, 내 경험을 바탕으로 아프리카 신혼여행 가이드북을 준비 중이기도 하다. 내게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준 아프리카에 보답하는 방법은 작가로서 아프리카의 진면모를 알릴 수 있는 다양한 콘텐츠를 만드는 길이 아닐까. 나는 오늘도 그 길 위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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