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조평규 연달그룹 부회장을 만나던 날
[후기] 조평규 연달그룹 부회장을 만나던 날
  • 이종환 기자
  • 승인 2011.07.31 20:0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의 지하철에서는 분실할 수가 없다"

 
“내선인가요, 아니면 외선?”
“?”
“몇호차, 몇번인지…”
“?”

서울 2호선 삼성역 지하철 역무실에서 담당자가 친절하게 물었으나 답이 막혔다.
2호선 지하철을 수없이 탔지만, 내선인가 외선인가를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더욱이나 내가 앉았던 차량이 몇번째 차량인지도 알리가 없었다. 어느쯤에서 내렸는지조차 감감하니까 말이다.

며칠 전의 일이다.
방배역 인근에서 일을 마치고 서둘러 삼성역으로 왔다. 비가 오던 날이었다.
인터뷰때 무엇을 물으면 좋을까?  저녁 식사는 무엇으로 하면 좋을까?
이런 생각도 하면서 왔다.

하지만 내릴때까지 가장 신경을 쓴 것은 갤럭시 탭으로 다운로드를 받는 일이었다.
대사 지문이 나오는 ‘오페라의 유령’을 다운로드 받자고 돈은 지불했는데, 도대체 잘 되지 않았던 것이다.
다운로드를 누르자 안내문이 나와 사람을 헷갈리게 만들었다.

3D로 다운로드 받으면, 돈이 많이 청구될 수 있다는 ‘위협’이었다. 3D가 뭔가? 이미 가입해 있는데 돈이 더 나오는 것일까? 안내대로 와이파이로 받는게 맞을까? 이런 고민을 하면서 캘럭시 탭을 통해 ‘오페라의 유령’과 씨름을 하다가 삼성역에 닿은 것이다.

급한 김에 손에 잡히는 대로 들고 내렸다. 한 손에는 갤럭시 탭, 한 손에는 우산, 신문을 담은 쇼핑백. 그리고 정신없이 지갑을 꺼내, 교통카드로 게이트를 체크하고 났을 때 뭔가 허전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뭘까?가방이었다. 늘 들고 다니던 가방. 그것을 지하철 앉은 자리 선반위에 올려놓고 그냥 내린 것이다.

“뭣이 들어있나요?” “여권이 들었어요. 그리고 카메라 겸용 비디오카메라… 그리고 몇백달러의 지폐"

답은 이렇게 했지만, 곰곰히 생각하니 여러가지가 들어있었다. 중국 자동차운전면허증, 일본 선불교통카드 '패스모', 미국 선불전화카드, 공항면세점에서만 주로 사용했던 롯데신용카드, 대한항공과 아시아나의 마일리지 카드….

그리고 또 있었다. 늘 새것처럼 간직하고 있는 몽블랑 만년필. 루비 달린 600달러 넘는 값비싼 펜이다. 기분 좋을 때 꺼내 쓰겠다고 가방 깊숙이 넣어서 늘 갖고 다니는 펜이었다. 그것 말고도 자질 구레한 것이 많았다.

잃어버렸을 때 문제가 많았다. 새로 사자면 200-300만원은 되는 가방내의 물건도 물건이지만, 가장 큰 문제는 번거러움이었다. 당장 여권을 새로 해야한다. 분실신고를 하고, 사진을 구하고, 복수비자(중국)도 받아놓아야 한다. 지난 3월에 받았지만, 여권을 잃어버리면 다시 받을 수밖에.

여권 번호가 바뀌니까 미국 전자입국신청도 다시해야 할 것이다. 전자여권으로 미국 입국 신청을 하는데는 4만원인가를 내야 한다. 그렇게 입국신청을 해놓으면, 1년인가 2년인가를 그냥 들락거릴 수 있다.그런데 여권번호가 바뀌면 다시 신청해야할 것이 틀림없다.

롯데카드도 마찬가지다. 자주 쓰지는 않지만, 공항면세점에서는 도움이 된다.  집사람과 딸의 주문을 조금은 받아줘야, 잦은 해외출장으로 인한 면박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잠깐 기다려 보세요”
담당자가 연락을 한다. 앞에 있는 역의 담당자한테 연락을 해서 열차가 도착하거든 살펴보라는 것이다.
몇군데 연락을 하는 것같았으나, 이 담당자는 한군데 연락을 받고는 곧 자리를 비웠다.

“없다는군요. 그런데 저는 나가야 되거든요. 순환선 열차여서 다시 여기에 도착합니다. 기다려서 그때 열차 선반을 살펴보세요”
낙심이었다. 불길했다. 왜 없다는 말일까? 대충 찾아봤기 때문이 아닐까?

2호선 열차가 한바퀴 도는 데 1시간 반 정도가 걸린다는 것도 그때 알았다.
어떤 열차는 다른 곳으로 빠지기도 하지만, 내가 탄 열차는 돌아서 다시 삼성역으로 온다고 했다.

30여분을 기다리다가 역무실을 빠져나왔다. 있어봐야 도움될 것도 없었다.
분실신고는 끝났고, 대장에도 올렸다. 찾으면 연락이 온다고 했다. 이틀이 걸릴 수도 있다고 했다. 분실대장에는 그날 삼성역에서 분실한 것으로 보이는 것만여러건이 기록돼 있었다.

당연히 있다고 생각한 것이 갑자기 없어졌을 때 그 중요함을 새삼 깨닫게 되는 모양이었다. 가방은 늘 함께 있었다. 지금까지 가방을 잃어버린 적이 없었다. 그런데 그날 그냥 두고 내린 것이다. 분실했던 시간은 오후 5시37분쯤이었다. 그 기차가 서울을 한바퀴 돌아서 다시 삼성역으로 오는 것은 오후 7시3분이었다. 담당자는 친절하게도, “혹 앞선 열차일 수도 있으니까 앞차도 타서 점검해보세요”라고 말했다.

역무실을 빠져나와 뭘할까 하다가 퍼뜩 깨달았다. 기다리지 말고 반대편으로 거슬러 가보자. 도는 열차니까 마중을 가서 맞아보자. 그러면 빨리 찾고, 분실될 기회도 적어질 것아닌가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전화를 거듭해 메트로 분실센터에 열차번호를 불러주고, 그 열차가 그때 어디를 지나고 있는지를 물었다.그 사이에 열차는 열심히 달려서 합정역을 지나고 있었다. 나는 서울대 역으로까지 되돌아 가서 열차를 기다렸다.

이윽고 앞차가 도착했다.  ‘죄송하다’는 말을 연발하면서 열차안을 뒤졌다. 열차는 퇴근하는 샐러리맨과 인파들로 가득차 있었다. 가운데 길을 헤치고 나가기가 어려웠다.

밀치고 지나가는 나를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했을까? 그동안 종종 밀치면서 열차 통로를 다닌 사람들을 본적이 있었다. 그들도 나처럼 가방을 찾으러 다닌 사람들이었을까? 깊이 생각할 겨를도 없이 힘겹게 돌았으나 찾는 가방은 없었다.

그러면 역무실에서 말한 그대로 다음 열차겠군. 이렇게 생각하면서 나는 다시 내렸다. 낙성대역이었다.강감찬 장군이 태어난 곳이 낙성대다. 별이 떨어져 장군으로 태어났다는 전설이 있는 곳이다. 거기서 다음 열차에 올랐다. 이 열차에도 내 가방이 없으면 정말로 분실한 것이 된다.

마침 이 열차는 사람들이 적었다. 등산 다닐 때 동아일보 출신 지공거사님들한테 들은 말이 떠올랐다. ‘지공거사’는 ‘지하철 공짜인 65세 이상 어른’을 일컫는다.  지하철 열차에 손님이 한번은 많고 한번은 적다는 것이다. 멀리서 오는 차는 손님이 많고, 가까운 역에서 출발한 것은 적다는 것이다.
 

아마 이는 3호선을 설명한 것이리라. 3호선은 멀리 대화에서 오는 것과 가까운 구파발에서 오는 것이 있다. 북한산 등산을 마치고 경복궁역에서 지하철에 오르는 날이면 이런 법칙은 진리임을 느낀다. 2호선도 그럴까? 절대 아니라고 생각했으면서도,  지공거사의 말이 옳군 하면서 나는 열차를 돌았다. 승객이 적었던 것이다.

"아 저거…."  비슷한 가방이 보였다. 샘소나이트라는 상표도 눈에 들어왔다. 한시간 정도 내 곁을 떠나서인지 약간은 낯선 느낌이었다. 선반위의 가방에 손을 대 좀더 자세히 보려고 하자 좌석의 50대가 이상한 듯 쳐다봤다.

“혹시 내 가방인가 해서요…”
나는 서둘러 사죄하고는 이상하게 보는 눈길들을 뒤로 하고 바로 떠났다. 사정을 설명하자면 시간이 걸린다. 설명할 시간이 없었다. 그 눈길들도 내 같은 상황이 돼보면 이해하리라.

그리고 다음칸 다음칸…
마침내 선반 한켠에 익숙은 가방이 시야에 들어왔다. 혹시나 해서 재확인까지 했지만, 첫눈에 내 가방임을 확신했다.

이 가방이 지하철 선반에 얹쳐서 돈 게 불과 1시간. 이 짧은 ‘부재’가 내게는 엄청난 느낌으로 다가왔었다. 불안, 초조, 기대…나아가 하나님 부처님께 기도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참고로 필자는 다신론이다. 다 믿는다.

끝은 그리스 연극의 최고봉과는 달리 해피엔딩. 약속시간에 늦은 것 말고는 다 좋았다. 시간도 허비했고, 가슴도 졸였으나 가방을 다시 만나 무척 기뻤다. 가방은 나를 떠나지 않았으나 가방이 떠난 것처럼 생각해 가슴 졸인게 얼마였던가.선반위의 가방을 손으로 내리들면서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게 이 뜻일까 생각했다? 

이날 저녁 약속을 했던 사람은 북경 연달그룹 조평규 부회장이었다.조평규 부회장은 내가 사정을 설명하자 가방이 먼저라면서 나를 격려했다. 기다릴테니 급한 일부터 보라는 것이다. 낙성대역을 지나서 가방을 찾자마자  찾았다고 맨먼저 알린 곳도 조부회장한테였다.

인터컨티넨탈 호텔에 도착하자, 조부회장 부부가 홀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좋은 사람 만나는 날이다 보니 나쁜 일이 생길 수가 없네요” 하자, 조부회장이 말을 받았다.“대한민국이 좋은 나라예요. 지하철에서 잃어버릴 수가 없어요”

이 말에 문득 유명한 신경숙의 소설 “엄마를 잘 부탁해”가 머리를 스쳤다. 요새는 영미권 독자들까지 울리고 있는 소설이다.  서울역 지하철에서 잃어버린 '엄마' 이야기를 담았다.

 "형철아, 그리고 누이들아, 제발 엄마 찾아라... 5060 오빠 언니들 울지 않게 말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송파구 올림픽로35가길 11(한신잠실코아오피스텔) 1214호
  • 대표전화 : 070-7803-5353 / 02-6160-5353
  • 팩스 : 070-4009-2903
  • 명칭 : 월드코리안신문(주)
  • 제호 : 월드코리안뉴스
  • 등록번호 : 서울특별시 다 10036
  • 등록일 : 2010-06-30
  • 발행일 : 2010-06-30
  • 발행·편집인 : 이종환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석호
  • 파인데일리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월드코리안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k@worldkorean.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