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기고] 피할 수 없는 비극
[해외기고] 피할 수 없는 비극
  • 황현숙(칼럼니스트)
  • 승인 2022.03.29 11: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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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과 3월에는 큰 사건들이 한 번에 터져서 몹시 심란한 상태가 됐다. 아직도 수습 중인 대홍수의 후유증과 민간인들의 거주지에 대공 미사일을 쏘아대는 러시아 폭군의 전쟁 그리고 검게 타버린 잔재 속에서 망연자실한 이재민의 상실감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언제쯤 현재 완료형으로 나아갈 수 있을지 우려만 더해진다.

퀸즐랜드에서 시작된 대홍수는 시드니까지 휩쓸고 가며 수많은 이재민을 만들었다. 2011년 1월에 이미 대홍수 피해를 보았던 브리즈번의 몇몇 지역이 십일 년 만에 똑같은 침수재난을 당한 것이다. 필자는 2011년 일월의 대홍수 때에 강물이 넘쳐서 시티 중심가로 거세게 밀려 들어오는 진흙탕 물을 보며 공포에 질렸었다.

그 당시에 처참하게 수몰된 가옥들과 물속에 잠긴 강변로의 가게들을 보면서 눈물을 흘렸던 일과 복구 작업을 돕겠다고 새벽부터 자원봉사를 나갔던 딸이 온몸에 진흙을 둘러쓴 채 한밤중에 돌아와서 몹시 놀랐던 일이 아직도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긴 시간 동안 서서히 파괴되어 온 자연이 아프다고 이렇듯 아우성을 치는데 어떻게 치유해야 할지 물음표만 생긴다.

나는 호주 사람들의 마인드 컨트롤이 참으로 경이롭다고 생각한다. 텔레비전 방송국의 기자가 물에 잠긴 집 앞에서 수해 피해자들과 인터뷰를 할 때나 혹은 배를 타고 피난을 가는 와중에도 얼굴에 미소를 띠고 응답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런 어려운 상황에서도 웃음을 지을 수 있는 여유로움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오는지 궁금해진다.

한국인의 정서라면 그런 상황에서 눈물을 흘리며 몹시 애통해하는 모습이 먼저 연상되기 때문이다. 도시의 빠른 복구를 바라지만 강물에 떠밀려온 쓰레기더미를 보면 또 다른 걱정이 생긴다. 강변에 있는 보타닉가든에 나가면 먼지가 풀풀 날리는 마른 진흙과 각종 쓰레기가 강둑에 쌓여있어서 가슴이 먹먹해지고 답답한 심정이 된다. 노란 작업복을 입은 시청 관리인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지만 언제쯤 예전의 모습으로 복구될 수 있을는지 안타까운 심정이 된다.

한국 울진에서 시작한 화재가 강원도 지역으로까지 불길이 번져서 엄청난 피해가 발생했다는 소식에 또 한 번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경상북도 울진군의 야산에서 원인 불명의 이유로 발생한 산불은 동 시간대에 발생하였던 산불들의 피해를 합치면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큰 규모와 피해를 남긴 산불이 된다는 기사를 보았다. 축구장 3만 개를 만들 수 있고 서울시 크기의 1/3에 해당하는 정도의 면적이 완전히 소실됐다고 한다.

산림청은 최초 발화 지점에서 차량이 3대 지나간 후 산불이 발생했기 때문에 담뱃불로 인한 실화로 추정 중이라고 하니, 한 사람의 작은 실수가 엄청난 후 폭풍의 피해를 만든 셈이다. 13일 동안 이어진 산불의 피해는 엄청난 재산피해와 동원된 인력과 장비를 단지 숫자로만 나타낼 수는 없을 것이다. 주민들의 삶을 파괴한 그 억울함과 정신적인 고통은 과연 무엇으로 보상받을 수 있을까.

고통 속에서도 기적은 일어나는가 보다. 소를 50여 마리 키우던 한 농가에서 불길이 크게 번지자 농가 주인은 축사에 있던 소들에게 “ 너희들 여기 있으면 다 죽어, 빨리 다른 곳으로 도망가”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 소들을 어른 소와 송아지가 섞여 있었는데 어둠 속으로 멀리 달려갔었다.

다음날 소 주인은 검게 재로 변한 집 앞에 서 있는데 축사에서 소 울음소리가 들려와서 가보니 50여 마리의 소와 송아지가 한 마리도 빠짐없이 모두 살아서 축사에 돌아와 있었다고 한다. 이런 일은 정말 기적이라는 말 외에는 달리 표현할 수가 없다며 기사를 전하는 기자의 목소리도 떨리고 있었다.

또 하나의 몸서리쳐지는 사건은 우크라이나를 공격한 러시아의 만행이다. 먼 나라의 일이건만 이곳저곳에 걸리는 경제 문제가 관련되어 있으니 결코 남의 나라 일만은 아닌 듯싶다. 나를 분노케 한 일은 일반 민간인의 아파트와 어린이 병원을 공습한 사건이다. 정치지도자들의 욕심은 죄 없는 일반민간인들과 순수한 어린이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작곡가 차이콥스키와 문학가 도스토옙스키를 배출했으며, 북유럽의 곡창지대로 ‘유럽의 빵 바구니’라고 불리는 나라이다. 뉴스 화면을 통해서 아름다운 건물이 처참하게 파괴된 휑한 거리의 모습을 보면서 한 나라의 문화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이 들었다.

최근에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TIME)은 ‘젤렌스키 대통령이 어떻게 우크라이나를 지켜내고 세계를 단합시켰나’라는 제목의 특집기사를 실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유럽의회에서 “삶이 죽음을 이길 것이며, 빛이 어둠을 이길 것”이라며 유럽 각국의 협력을 촉구하는 연설을 했었다.

그 연설 후에 언론은 그를 “찰리 채플린이 윈스턴 처칠로 변모한 것 같았다”는 평가를 했다. 코미디언 출신인 그를 희극배우 ‘찰리 채플린’으로 표현했다가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었던 영국 총리 윈스턴 처칠에 비유했던 것이다. 미국이 제공한 망명 비행기를 거절하고 국민과 함께 하는 그를 인간적으로는 인정하지만, 전쟁이 날 만큼 외교 안보 정치를 제대로 했는지도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라고 여겨진다.

그리고 러시아의 침공은 세계인의 비난을 받아야 마땅한 일이며 당장 멈춰야 한다. ‘우크라이나의 비극은 약육강식의 무정부 질서가 국제정치의 본질임을 여실히 보여준다’는 외교안보 전문학자의 의견에 동의하며 “피할 수 있었던, 피하지 못한 비극”이라는 말에 절대적으로 공감한다. 나라 간에 엉켜있는 힘겨루기라는 실타래를 평화적으로 풀고, 한 번에 터진 이 모든 불행한 일들이 빨리 제대로 정리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심정이다.

황현숙(칼럼니스트)
황현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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