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로㉚] 국제보건 분야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다 – 이훈상 국제보건개발파트너스 대표
[아프로㉚] 국제보건 분야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다 – 이훈상 국제보건개발파트너스 대표
  • 이훈상(국제보건개발파트너스 대표)
  • 승인 2022.03.31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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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PRO’는 국내 아프리카 전문가들의 모임이다. 외교부 한·아프리카재단에서는 이들의 활동을 소개한 책을 두 권 펴냈다. ‘Af-PRO, 한국과 아프리카를 잇다’는 제목의 단행본들이다. 한·아프리카재단의 허락을 받아, 이 책의 내용을 연재한다.[편집자주]

르완다 mHealth 사업 조사
르완다 mHealth 사업 조사

더 많은 사람들의 생활환경을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을 찾기 위해 학부에서 경제학과 공공정책학을 전공한 이훈상 대표는 스무살 때 세상에 선한 영향을 미치기 위해 홀연히 아프리카 가나로 봉사활동을 떠났다. 또 진로를 고민할 무렵 기아에 허덕이는 북한 아이들의 사진을 보고 소아과 의사가 되어 그들을 돕겠다는 마음으로 의대에 편입했다. 이훈상 대표는 북한에서 봉사할 수 있는 방법을 찾다가 세계보건기구(World Health Organization: WHO)의 인턴십 제도에 지원했고, 그 과정에서 아프리카의 여러 국가들이 북한보다 더 열악한 상황에 처해 있음을 깨달았다. 그때부터 아프리카와 국제보건이라는 새로운 이슈로 시야를 확대했으며, 질병관리본부를 거쳐 한국국제협력단(Korea International Cooperation Agency: KOICA)의 보건전문관을 역임하며 그 뜻을 이루어 나갔다.

KOICA 가나 사무소에 자진하여 지원한 이훈상 대표는 지금까지 해오던 개발사업 방식을 과감히 버리고 현지 주도적인 방향으로 사업을 이끌었다. 여러 우려에도 불구하고 가나 보건청이 주도한 사업은 성공적으로 안착했을 뿐 아니라 기존의 사업 방식으로는 기대하기 힘들었을 광범위한 지역을 아우르는 성과까지 냈다. 현재 연세대학교 보건대학원 객원교수이자 국제보건개발파트너스(Global Health and Development Partners: GHDP) 대표로서 국제보건 전문가로 활동하는 그는 코로나19로 인해 전 세계가 하나로 연결돼 있음이 드러났다며, 아프리카 문제가 곧 우리의 문제가 될 수 있기에 그들이 처한 상황을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한다.

고민의 깊이만큼 성장하다

의사인 아버지는 내게 의대에 지원할 것을 권했다. 하지만 나는 사회과학에 더 관심이 많았다. 사회 구조를 들여다보고 분석하는 체계적인 공부를 하고 싶었고, 그중에서도 정부 체제 하에 실제로 이뤄지는 정책들이 궁금해 공공정책학을 선택했다. 하지만 학과의 다른 친구들과 달리 좀처럼 또렷한 목표를 세우지 못했다. 앞으로 어떤 공부에 더 열중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한 나는 1학년을 마친 후, 고민을 잠시 내려놓고 봉사활동을 떠났다. 가나에 파견된 한국인 국제협력의사를 돕는 일이었다. 그 의사분은 학교에서 수업 교재로 쓰던 슬라이드 영사기 프로젝터용 슬라이드 필름을 가져왔다.

말라위 모자보건 사업 조사
말라위 모자보건 사업 조사

그 필름은 한국에서나 내가 공부하던 미국에서나 더 이상 교재로 활용되지 않았지만, 그 속에는 온갖 질병의 증상을 촬영한 엑스레이 사진이 들어 있어 매우 가치가 높았다. 가나 의료진들이 다양한 질병을 이해하는 데 분명 도움이 될 귀한 자료였으나, 문제는 사진에 딸린 부연 설명이 한글로 쓰여 있었던 것이다. 나는 가나에 3개월 동안 머물며 필름에 쓰인 방대한 양의 한글을 영어로 번역하는 일을 했다. 멀리 가나까지 온 김에 더 보고 싶은 것이 있느냐는 국제협력의사분의 질문에 직접 현장에서도 활동하고 싶다고 답했다. 그때만 해도 공중보건이 무엇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물론 의료 용어에도 익숙하지 않았다.

당시 내가 머물던 지역에는 기생충 질환이 빈번히 발생했다. 1960년대 아코솜보댐(Akosombo Dam) 건설로 전력 생산능력이 향상됨에 따라 경제는 부흥했으나, 하류의 유속이 느려지면서 기생충이 번식하는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엄밀히 말해 이는 환경재난에 해당했다. 나는 지역보건국 보건팀 관계자들이 방역 작업하는 데 따라다녔다. 봉사활동을 다녀오면 생각이 명료해질 줄 알았으나 오히려 더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적어도 다른 친구들처럼 일반회사에 들어가 평생 컴퓨터 앞에 앉아 있을 자신이 없다는 사실만은 명료해졌다. 장래를 고민하는 나날이 이어지던 무렵 북한에 큰 홍수가 났다. 전 세계 매체에서 대서특필할 정도로 큰 재난이었다.

같은 학교를 다니는 교포 친구들이 북한을 돕는 자선 행사를 열었다. 나는 그때 행사 홍보를 위한 포스터 속 사진을 여전히 잊을 수 없다. 북한 아이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이었는데, 사람이 그 이상 마르고 병약해 보일 수 없었다. 북한 아이들의 참담한 모습에 큰 충격을 받은 나는 당장 그들을 위해 무엇이라도 해야 할 것 같은 사명감에 사로잡혔다. 모금보다 더 직접적으로 그들을 도울 길을 찾아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아버지가 권했던 의대에 들어가 소아과 의사가 된다면 북한에서 저 아이들을 치료할 수 있지 않을까. 때마침 고등학교 동창 중 한국에 있는 의대에 편입한 친구가 떠올랐다. 나는 그가 밟은 수순을 따라 미국에서 학부를 졸업하자마자 편입을 준비하여 연세대학교 의대에 들어갔다.

가나 GHSA 현지조사
가나 GHSA 현지조사

국제보건의 중요성에 눈뜨다

의사가 되는 길은 멀고도 험난했다. 설상가상으로 막상 의사가 되도 내가 간절히 원한 대로 북한에 가서 아이들을 치료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였다. 졸업이 가까워질수록 초조했다. 특히 대학을 졸업한 후 편입한 상태였기에 남들보다 4년이 늦었다는 강박도 있었다. 그때부터 뜻을 이룰 방법을 찾느라 분주했다. 그러던 중 평양에 WHO 사무소가 있다는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됐다. 때마침 외부에서 한 달 반 동안 실습할 기회도 주어졌다. 나는 주저 없이 WHO 평양 사무소에 인턴십을 희망한다는 내용의 이메일을 보냈다. 돌이켜 생각하면 정말 무모했던 듯싶다. 놀랍게도 답장이 오긴 했다. 평양 사무소에는 인턴십 제도가 없으니 다른 사무소로 연락을 해보라는 내용이었다.

아쉬웠지만 크게 낙담하지 않았다. 평양에 사무소가 있으니 WHO에 들어가면 북한에 파견될 수도 있다는 희망이 생겼기 때문이다. WHO, 궁극적으로는 북한에 한발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나는 WHO 서태평양지구의 지역아동보건사무소에서 인턴십을 했다. 도착한 날 담당자가 내게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물었다. 나는 아동보건과 관련한 정책을 최대한 많이 보고 경험하고 싶다고 답했고, 담당자는 우선 자료부터 읽으라며 논문을 잔뜩 주고 갔다. 논문에는 5세 이하 아동의 사망률이 전 세계 국가별로 기록돼 있었다. 북한이 전 세계에서 가장 열악한 상황에 놓였다고 믿고 있었던 나는 당연히 북한의 수치부터 찾았다. 출생아 1천 명당 50명. 한국보다 10배 높은 수치였다.

하지만 나는 곧바로 나의 눈을 의심케 하는 다른 무언가를 발견했다. 르완다 120명, 소말리아 200명이라는 수치를 본 것이다. 모성사망률도 출산 10만 건당 북한이 11건인 한편, 말라위는 400건에 달했다. 북한이 열악하다면, 르완다, 소말리아, 말라위 등의 나라에는 어떤 수식어를 붙여야 하나. 상상을 뛰어넘는 숫자 앞에서 내 머릿속이 아득해졌다. 그때 처음으로 북한 이외의 국가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국제보건이라는 개념을 곰곰이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특히 더 속상한 일은 사망 원인의 상당수가 설사나 감기로 인한 폐렴 등 충분히 치료가 가능한 병이었다는 사실이다. 국제보건의 중요성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가나 CHPS와 사업 런칭
가나 CHPS와 사업 런칭

소아과 의사가 되어 북한 아이들을 치료하겠다는 마음으로 의대에 편입한 나는 점점 다른 개발도상국 특히, 아프리카국가들과 국제보건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국제보건 분야에서 임상의가 할 수 있는 영역은 오히려 작았다. 나는 의대를 졸업한 후 과감하게 임상을 포기하고 보건정책분야에서 경력을 쌓기 위해 질병관리본부 예방접종관리과 책임연구원으로 취직했다. 질병관리본부의 체계를 어느 정도 익히자 국제보건을 보다 심도 있게 공부할 필요를 느꼈다. 다시 학생 신분으로 돌아가 존스홉킨스 보건대학원(Johns Hopkins Bloomberg School of Public Health)에서 석사 과정을 밟았다. 졸업 후 한국으로 다시 돌아와 KOICA의 보건전문관으로 발탁됐을 때는 먼 길을 돌아왔지만 끝내 막연했던 꿈을 구체화할 기회를 얻은 기분이었다.

나는 KOICA의 내부 전문가로서 보건 사업을 검토하고 구상하며 관련 기술을 지원하는 한편, 직접 수행도 하는 역할을 맡았다. 동시에 KOICA가 지원하는 국제기구나 NGO의 사업을 검토하고 평가했으며, 해외의 개발원조기관과의 파트너십, 국내 민간기업과의 사회공헌 파트너십을 형성하는 데 일조했다. 동시다발적으로 여러 역할을 겸해야 했지만, 그동안 다양한 분야를 공부하며 축적한 지식을 초석 삼아 새로운 경험을 구축할 수 있는 뜻깊은 기회로 여기며 기꺼이 임했다. KOICA가 보건사업에 관여하고 있는 국가로 출장 가는 일도 잦았다. 그러던 중 2014년 가나 출장이 잡혔다. 거의 18년 만에 가나 땅을 다시 밟는 셈이었다. 자연스럽게 학부 1학년 때의 경험이 떠올랐다. 학부 시절이나 출장 당시에나 나는 아프리카가 몇 개국으로 이뤄졌는지도 몰랐을 뿐 아니라 막연하게 아프리카를 하나의 나라로 인식했다.

아프리카대륙에 내재된 역량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으며, 우리가 그곳에서 봉사하고 돕는 모습만 상상하며 가나로 향했다. 그러나 운이 좋게도 출장 당시 그 지역의 공공보건과 방역을 담당하던 현지 책임자와 함께 생활하며 그릇된 인식을 바로잡을 수 있었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이어서 둘이 마주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긴긴 밤을 보내곤 했다. 그때 그분이 들려준 이야기 중 가장 인상 깊었던 말은 ‘아프리카는 국가가 아니다(Africa is not a country)’였다. 그 순간 머릿속에서 깨달음의 종소리가 울리는 듯했다. 그 말에 감명을 받은 내게 그는 매일 밤 아프리카대륙에 얼마나 다양한 나라와 문화가 있는지 들려줬다. 그의 말과 행동을 통해 나는 가나의 의료진과 의료 담당자들이 자국의 보건을 위해 얼마나 치열하게 고민하고 노력하는지를 알 수 있었다.

가나 CHPS
가나 CHPS

한번은 지역 보건소를 찾았을 때의 일이다. 지역의 여성들이 한데 모여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때는 무슨 일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해 의아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여성들은 산전 관리의 날에 출산과 관련하여 산모들이 알아야 할 상식에 음률을 입혀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중이었다. 내가 KOICA에 갓 합류했을 때 KOICA는 가나의 어퍼이스트(Upper East) 지역에 새로운 보건사업을 추진하기 위한 논의를 한창 추진 중이었다. 가나가 갖춘 여건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나는 내가 꿈꿔온 형태의 사업을 그곳에서 전개할 수 있으리라 확신이 들었다. 그리하여 자진하여 가나사무소에 근무할 것을 희망했다.

현지 주도형 사업을 이끌다

과거의 경험을 통해 가나에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있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가나 의료진들의 역량과 잠재력, 그리고 그들이 안고 있는 고민과 노력의 깊이에 누구보다 공감했다. 그들의 보이지 않는 가치를 잘 이끌어내는 것이 내 역할처럼 여겨졌다. 그런데 현장을 둘러보니 한편으로는 지난 18년 동안 큰 변화가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나는 어느 국가에나 적용되는 똑같은 구조의 보건사업이 아닌, 가나가 지닌 역량을 충분히 끌어낼 수 있는, 가나에 최적화된 체계를 구축하고자 했다. 우선 우리의 가장 긴밀한 파트너인 가나 보건청 사람들의 이야기를 최대한 많이 들으려고 노력했다.

그들이 애초에 무엇을 하려고 했는지, 추구하고자 하는 개념은 무엇인지를 묻고 또 물었다. 우리가 하는 활동은 백지에 그림을 그리는 행위가 아니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리하여 기술력 부족과 자본 부족, 그리고 동력 부족 중 무엇 때문에 그들이 목표로 삼은 결과에 도달하지 못했는지 다각도로 확인하고, 그 부분을 우리가 충당하는 방향으로 사업을 구상했다. 동시에 가나에서 우리보다 경험이 많은 국제보건기관의 담당자를 만나 열린 자세로 조언을 구했다. 그 과정에서 뜻밖의 수확이 있었다.

미국 콜롬비아대학교(Columbia University) 보건대학팀이 어퍼이스트 지역에서 지난 8년 동안 이어온 지역보건연구사업이 때마침 만료되어 철수할 계획이라는 소식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일궈온 사업을 우리가 이어주기를 바랐다. 결론적으로 콜롬비아대학교의 사업 중 일부를 우리 사업에 끌어들여 반영했고, 더불어 콜롬비아대학교가 세 개 지역에서 수행하던 사업을 13개 지역으로 규모를 대폭 확장하는 데 성공했다. 우리 입장에서는 이미 연구를 통해 검증된 사업을 수행하니 시행착오를 줄이는 등 성과를 빨리 낼 수 있어 좋았으며, 지역 입장에서는 자신들에게 이점이 되는 사업이 지속가능해져 반색했다.

가나에서 가장 심혈을 기울인 사업은 내가 오랫동안 관심을 기울여온 지역사회기반 모자보건 프로젝트다. 가나에는 이미 제법 잘 구동하는 지역 기반의 보건체계가 존재했다. CHPS(칩스, Community-Based Health Planning and Services: CHPS)라고 부르는 이 체계는 1990년대 형성되어 2000년대 초 가나 전국으로 확산됐다. 우리는 전혀 새로운 체계를 만들기보다 기존의 체계를 바탕으로 지역사회 기반의 모자보건 사업을 펼치되, 이를 한 단계 발전시킨다는 개념으로 KOICA 가나 지역사회기반 1차보건의료 향상 사업이라는 공식적인 명칭과 함께 ‘CHPS+(칩스플러스) 사업’이라는 별칭을 붙였다. 내 기준에서 가장 이상적이고도 기존 다양한 사업들의 사례들을 잘 반영한 형태의 사업으로 만들어보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시간과 노력을 이 CHPS+ 사업에 할애했다.

일반적으로 국제개발원조 분야의 보건 사업은 KOICA가 예산을 집행하면 한국의 사업수행기관이 선정되어 이를 위탁받아 직접 사업을 수행한다. 반면, CHPS+는 가나 보건청이 KOICA로부터 예산을 받아 직접 집행하는 수원국시스템 활용 방식을 취한다. 전자의 사업 구조를 후자로 변경하는 일은 활자 상으로는 쉽게 느껴질 수 있지만, 실제로는 무척 힘든 결정이다. 왜냐하면 사업이 무사히 진행될지, 예산 증빙은 잘 이행될지, 사업에 기대한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 전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자의 방식이어야만 사업이 더 지속가능하리라고 확신했기에 본부를 설득하여 후자에 가까운 방식을 취했다.

우간다 UNICEF 회의
우간다 UNICEF 회의

최종 사업 모델은 최대한 가나 보건청이 자발적이고 주도적으로 사업을 진행하되, 한국인 전문가 두 명을 파견하여 집행한 예산을 기록하고 보고하는 과정을 도와주는 구조였다. 처음에는 현지 관계자들이 한국인 두 명이 관여하는 것을 불편해했으나, 시간이 지나자 오히려 더 반겼다. 보고서를 작성하는 과정 등이 훨씬 더 수월해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현지에서 한국인 파견 전문가가 사업 집행과 관리를 지원하고 함께 사업을 추진해나가는데 있어서 큰 만족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또한 사업을 평가하는 기준을 설계할 때도 가나 보건대학원의 전문가를 투입하는 등 가나 측에서 주도하도록 독려했다. 나는 옆에서 보다 더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을 조언할 뿐이었다.

궁극적으로 CHPS+ 사업은 가나 사람들의 지혜와 사고방식을 녹여냈고 가나 정부의 정책을 기반으로 설계됐으며 그들 스스로 집행하는 사업이다. 당사자들이 사업의 주체이자 최종 결정권자이다 보니 사업의 진행이 한층 원활해졌다. 나아가 사업에 애착을 가지고 스스로 키워나가는 선순환의 결과를 가져왔다. 마침내 CHPS+ 사업은 주 전체를 대상으로 포괄적인 보건의료체계 강화를 이루어내는 사업으로 안착하는데 성과를 보이기 시작했다. 사업은 가나의 어퍼이스트주의 전체 13개 군(district)의 150만명 인구를 대상으로 하며, 주립병원 1곳, 지역 병원 7곳, 보건소 48곳, 보건지소 120곳, 그리고 보건지소에 속한 마을 500여 곳을 포함하는 규모다.

광범위한 지역을 아우르는 한편, 보건의료인력과 주보건청 및 군보건국(District Health Office)의 보건의료체계 관리운영 역량을 강화하고 이와 함께 마을보건봉사자와 마을보건위원회를 포함한 지역사회 주민의 참여 증진까지 이루어내며 그 속의 작은 구석까지 손길이 닿는 구조라고 볼 수 있겠다. 처음에는 KOICA 본부에서 지역 주도적인 체제를 우려하는 바가 많았지만, 지금은 크게 만족한다. 나아가 한국도 이러한 유형의 사업을 할 수 있다는 용기와 자부심을 갖는 계기가 됐다.

가나 UER 주 보건청장 면담
가나 UER 주 보건청장 면담

CHPS+ 사업이 지역 사회에 단단히 뿌리를 내린 채 성장하고 있다면, 글로벌안보구상사업은 현재 진행형이다. 이 사업의 목표는 역학조사인력을 양성하고 실험실 진단검사체계를 형성하는 것이다. 우선적으로 역학조사인력을 양성하는 과정에서 예기치 않게 코로나19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이러한 대유행 사태는 누구도 예측하거나 빗겨갈 수 없는 비극이지만, 나는 이 사업을 조금 더 일찍 추진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사무치게 후회스럽다. 실험실 진단검사체계까지 무사히 갖췄다면 가나가 지금의 사태에 보다 더 잘 대응했을 터. 나는 가나의 상황이 궁금하고 염려되어 인터넷을 통해 가나 방송을 종종 들여다본다.

그나마 우리 사업의 일환으로 교육받은 역학조사인력이 코로나19 대응체계 전문가로 현장역학조사와 확진자 추적조사를 수행하는 모습이 방송에 등장하는 모습에 작은 위안을 가져본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진정세가 보이면 지역검사실 네 곳에 진단검사역량을 구축하는 2단계 사업에 돌입하기를 누구보다 바라고 있다. 2014년 에볼라가 유행했을 때 우리는 이를 남의 문제로 간주했다. 그런데 오늘날 코로나19는 그들과 우리의 문제가 별개가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언제든지 우리의 문제가 그들의 문제 혹은 그들의 문제가 우리의 문제로 번질 수 있다. 코로나19는 우리 사회의 가장 취약한 곳으로 파고든다.

우리는 국내에서도 콜센터나 유통회사 물류센터 직원들이 그렇게나 열악한 환경에서 일한다는 사실을 코로나19로 인해 처음 알게 됐다. 콜센터와 물류센터에 역학조사를 철저히 하는 일 못지않게 사회 곳곳 취약한 계층의 생활여건과 근무여건을 개선하는 일을 고민하는 것이 우리 모두가 이 위기를 극복하는 방법이다. 같은 의미에서 지구 전체가 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글로벌 공동체의 가장 취약한 연결고리라고도 할 수 있는 아프리카대륙의 상황을 진심으로 걱정하고 그들의 삶이 향상될 수 있도록 지원과 관심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이것이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우리 모두가 상생하는 일에 진지하게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에티오피아 가족계획사업 현지조사
에티오피아 가족계획사업 현지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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