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방] 라이프치히 촛불시위가 동구권 붕괴 불렀다...한인회도 평화희망음악회 개최
[탐방] 라이프치히 촛불시위가 동구권 붕괴 불렀다...한인회도 평화희망음악회 개최
  • 이종환 기자
  • 승인 2022.04.01 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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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10회째 맞아...바흐가 봉직한 성토마스교회, 쾨테가 다닌 라이프치히 대학 등 명소 많아
라이프니츠 대학
라이프치히 대학

(라이프치히=월드코리안신문) 이종환 기자= “촛불시위가 시작된 곳이 바로 이 교회입니다.”

최경하 라이프치히한인회장이 니콜라이교회 앞에서 설명을 시작했다. 니콜라이교회는 라이프치히 중앙역에서 걸어서 채 10분도 걸리지 않는 곳에 자리잡고 있었다.

“니콜라이교회에서는 1980년대 초부터 월요기도회를 가졌어요. 이 기도회가 반정부 성격을 띠게 되자 동독 당국이 강경진압을 했고, 이에 시민들이 들고 일어났습니다.”

최경하 회장이 오페라 출연을 위해 분장하고 있다
최경하 회장이 오페라 출연을 위해 분장하고 있다

이 촛불시위가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리고, 동독과 동유럽 공산권 붕괴라는 큰 파장으로 이어졌다는 게 최회장의 설명이었다.

라이프치히를 찾은 것은 3월26일 토요일이었다. 베를린에서 고속철도(ICE)를 타니 불과 1시간 20분만에 라이프치히 중앙역에 도착했다. 고속철도는 중간에 비텐베르크라는 역에 한번 정차했는데, 그곳이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이 시작된 곳이라는 얘기를 나중에 들었다.

당초 법학을 공부했던 마르틴 루터는 천둥소리에 놀라 신부가 되기로 서약했고, 신부 서품후 수도원에 머물면서 비텐베르크 대학에서 신학교수로도 지내고 있었다. 그즈음 로마교황청이 바티칸 성당 건축 자금 충당을 위해 면죄부 판매에 열을 올리자, 루터는 95개조 반박문을 내걸며 종교개혁에 시동을 걸었다.

마르틴 루터의 이 울림은 거대한 메아리로 퍼져서 기독교는 구교와 신교로 갈리고, 서로 전쟁까지 치르며 유럽사회를 재편하게 된다. 최경하 회장은 “구텐베르크의 인쇄술 덕분에 이 95개조 반박문이 주변으로 빠르게 퍼져나갔다”면서 “촛불혁명을 일으킨 라이프치히의 니콜라이 교회도 루터교회”라고 소개했다.

니콜라이교회를 떠나 찾아간 곳은 라이프치히 오페라단과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가 있는 광장이었다. 최회장은 음악으로 유명한 이 광장에서 시민들의 큰 시위가 뒤따랐고, 그것이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리는 직접적인 동력이 되었다고 강조했다.

광장에는 1409년에 문을 연 라이프치히 대학으로도 이어져 있었다. 나치정권은 이 대학을 졸업한 유태인들의 학위를 취소하는 우행을 저질렀고, 동독정권은 이 대학의 오랜 교회건물을 종교시설이라면서 허물어버리기도 했다.

광장에서 대학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대리석으로 만든 쾨테와 라이프니츠, 레싱 세 사람의 흉상이 서 있었다. 이 대학이 배출한 최고의 인물로 평가되는 사람들인 듯했다. 최경하 회장은 메르켈 전 수상도 이 대학출신이라고 설명했다.

니콜라이 교회
니콜라이 교회

대학을 빠져나와서는 괴테가 학생시절 자주 갔다는 맥주집으로 향했다. 대학에서 불과 200m 거리였다. 도중에 옛 시청청사와 청사 뒤의 넓은 광장도 보였다. 라이프치히의 중심이었다. 마침 토요일이어서인지 광장은 관광객들로 붐볐다.

“괴테가 맥주를 마시면서 파우스트를 구상했던 곳입니다.”

최회장이 이렇게 말하며, ‘아우어바흐 켈러’라는 유서깊은 식당으로 안내했다. 식당은 지하 1층에 자리잡고 있었다. 지상에는 파우스트의 장면을 담은 동상 두 개도 세워져 있어, 관광객을 위한 포토존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바흐가 만년을 보내면서 작곡도 하고 지휘도 했던 성토마스교회를 찾은 것은 그 바로 다음이었다.

“베토벤의 유명한 말이 있어요. 그는 Bach(실개천)가 아니라 Meer(바다)라고 불려야 한다(Nicht Bach, sondern Meer sollte er heißen)는 말입니다. 이 한마디로 바흐의 위대한 업적을 평가한 것입니다.”

최회장은 이렇게 말하면서, “교회 안에는 바흐의 무덤도 있다. 바흐가 유명해지면서 나중에 교회로 옮겨놓았다”고 설명했다.

바흐는 성토마스교회에서 어린이합창단도 지휘했다. 성토마스교회 어린이합창단은 지금도 유명해, 국내외에서 어린이들이 와서 합창도 하고, 학교 공부도 엄격하게 한다고 했다.

교회 입구에는 바흐의 동상도 서 있고, 교회 맞은 편으로는 바흐 박물관도 조성돼 있었다. 박물관에는 바흐 당시의 현악기와 관악기, 클라비어 같은 악기들과 함께 바흐가 쓴 악보도 전시돼 있었다.

바흐 박물관에는 바흐시절의 악기들이 전시돼 있다.

“바흐가 작곡한 노래를 좀 듣고 가지요.”

의자가 있는 음향실에서 발도 쉴겸 이어폰으로 바흐의 음악을 함께 즐겼다. 바흐가 작곡한 음악들이 오르간곡 협주곡 등으로 분류돼 있어, 쉽게 찾아 들을 수 있었다.

“라이프치히에는 바흐 뿐만 아니라 멘델스존과 슈만도 있어요. 아마 그곳까지 둘러보려면 오늘 베를린으로 돌아가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최회장은 “또 한 군데 갈 곳이 있다”면서, 시 외곽에 있는 라이프치히 전승기념비로 서둘러 안내했다. 프랑스 나폴레옹과의 전투에서 승리를 기념한 전승기념비였다.  기념비는 90여m 높이의 거대한 화강함 구조물로, 전쟁 승리 100년을 기념해 1913년에 만들어졌다. 

1813년 10월 16일부터 19일까지 3일간 나폴레옹군을 맞아 치러진 이 전투는 나폴레옹측 부대 20만명, 이에 맞선 프로이센-러시아연합군 38만명이 맞붙어 양측에서 10만명의 사상자를 낸 죽음의 전투였다. 이때문에 기념비 앞으로 조성된 커다란 호수에는 '전사한 군인들의 눈물의 호수'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고 한다.

최경하 회장이 라이프치히에 정착한 것은 2000년부터다.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유학을 마친 최회장은 독일로 건너와 지금 라이프치히 외곽의 캠니츠극장에서 오페라 합창단 소속 성악가로 활동하고 있다. 부인도 성악가로 오레라단에서 함께 뛰고 있다고 한다.

“라이프치히에는 한인수가 300-400명입니다. 유학생들이 많아요.”

최회장은 “지난해  코로나 상황에서도 제9회 라이프치히 통일희망 음악회를 열었다"면서, "올해는 10회째를 맞아 크게 열 계획”이라고 밝혔다. 라이프치히 통일희망음악회는 한반도의 분단과 통일에 대한 희망을 현지인들에게 알리기 위해 2012년부터 시작한 음악회다.

처음에는 클래식 중심으로 재능기부를 받아 진행했으나, 횟수를 거듭하면서 K-pop도 소개하는 ‘한국문화 축제의 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한다. 최회장은 “지난해에는 조현옥 주독대사도 음악회에 참여했다”면서, “민주평통 베를린지회 공동주최 및 후원으로 진행하고 있으며, 행사때면 베를린 동포사회에서 버스를 대절해 내려와 응원해준다”고 소개를 했다.

그는 “올해 10주년 음악회도 10월 혹은 11월에 열 것”이라면서 “재능기부로 참여하는 출연자들에게 교통비라도 제공하기 위해 스폰서를 찾는 중”이라고 덧붙였다.

바흐가 만년에 봉직했던 성토마스교회 앞에 바흐 동상이 서 있다.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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